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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데 무슨 자유고 고독일까…혼밥은 그저 혼밥일뿐

중앙일보 2020.02.17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2)

가구(家口), 식구(食口)에는 모두 입 구(口)자가 들어 있다.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2020년 대한민국은 끼니를 같이하는 식구의 입이 하나인 가정이 세 집에 하나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이 즐겁지 않다. 그런데 내 직업의 특성상 점심은 늘 ‘혼밥’이 일상이 됐다. 그런 나를 두고 가끔 친구들은 부러운 듯이 말하곤 한다. “너는 각 지역 ‘맛집’에 자주 갈 수 있겠네…. 일부러 맛집을 찾아서도 가는데 일하러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너무 좋겠다.”
 
경기도 이천시에 강의가 있어 집에서 새벽에 떠나 강의를 마친 날이었다. 빈속에 돌아오는 길. 길가에 ‘이천 쌀밥 〇〇한정식’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맛난 밥을 먹겠다는 강한 식욕은 남의 시선이나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게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몇 분이세요?”라고 종업원이 물었다. “혼자예요.” 쭈뼛쭈뼛 멋쩍은 듯이 말하는 나를 보고 종업원은 “2인상부터 주문이 가능한데….” 힘들게 말하는 손님을 그냥 내치기 불편했는지 “그냥 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오로지 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우선 생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혼밥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맛있는 것을 잘 먹으면서 돌아다니려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혼밥에도 급이 있다면서 혼밥의 등급을 분류하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밥 먹기, 학생식당 혹은 구내식당에서 밥 먹기,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메뉴 혼자 먹기, 분식집에서 혼자 먹기, 중국집 혹은 냉면집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혼자 먹기, 맛집에서 혼자 밥 먹기,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혼자 먹기,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혼자 먹기, 술집에 가서 혼술 하기, 혼자 쇼핑하기…. 난 아직도 술을 한잔 하고 싶을 때 혼자 고깃집에 가는 것이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다. 언젠가는 이것 또한 도전해 볼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모두 경쟁에 지쳐 있다. 혼밥, 혼술, 혼행 등을 즐기면서 내 방식대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선택하고, 혼자 될 자유를 누리는 듯하다. [사진 Pixabay]

현대인의 삶은 모두 경쟁에 지쳐 있다. 혼밥, 혼술, 혼행 등을 즐기면서 내 방식대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선택하고, 혼자 될 자유를 누리는 듯하다. [사진 Pixabay]

 
‘나 홀로’라는 단어에는 ‘휴식’ ‘자유’ ‘당당함’ ‘즐기다’ ‘강한’ ‘다양하다’ ‘좋다’ 등의 순으로 긍정적인 키워드가 따라붙는다. 이렇게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여행 가고 등이 일상이 돼버린 삶이 이젠 낯설지 않다.
 
현대인의 삶은 모두가 경쟁에 지쳐 있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얽히고 설킨 사회관계망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혼자이지만 진짜로는 혼자이지 못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사회관계망에서 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등을 즐기면서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것을 내 방식대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에 충실할 수 있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선택하고, 혼자 될 자유를 누리는 듯하다.
 
수많은 네트워킹의 과부하 속에서 나의 자유는 속박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나 홀로’ 말고,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나 홀로’가 있다. 거기에는 외로움, 쓸쓸함, 고독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나 혼자 산다’를 살아내는 인구는 600만 명에 육박한다. 40~50대에 가족 해체로 ‘나 홀로’족이 된 중장년층, 기러기 가족, 여성 가구주,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 독거청년….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자유를 즐기는 자발적 ‘나 홀로’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다.
 
통계적으로도 1인 가구의 빈곤율은 다인 가구의 빈곤율보다 네 배나 높다는 통계가 있다. ‘나 홀로’족의 주거 형태는 3분의 1 이상이 월세를 살고 있는 상황이다. 생활 공간인 주거는 인간이 누리는 기본값이어야 한다. 인류 공공의 자산인 부동산 축적으로 누군가는 1년 동안 몇십억원이란 부의 축적이 현실이 되는, 이 말도 안 되는 시점에 빈곤의 1인 가구 세대주는 반지하‧옥탑방을 누리기도 힘겹다.
 
40~50대에 가족 해체로 ‘나 홀로’족이 된 중장년층, 기러기 가족, 여성 가구주,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 독거청년....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자유를 즐기는 자발적 ‘나 홀로’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40~50대에 가족 해체로 ‘나 홀로’족이 된 중장년층, 기러기 가족, 여성 가구주,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 독거청년....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자유를 즐기는 자발적 ‘나 홀로’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고독사’라고 하면 홀로 사는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로 쓰였다. 물론 고독사는 노인이 단연코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기사를 본다. 가난한 나 홀로 노인은 병으로 치료받기에, 아주 덥고 추운 날씨를 견뎌내기에, 화재가 났을 때 빠져나오기에 너무나 취약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고독사 또한 자주 접할 수 있다. ‘나 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젊은 남성의 방에는 이력서와 구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부산에서 발견된 30대 여성의 방에는 혼자서 먹던 치킨과 단무지가 시신과 같이 남겨져 있었다.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간에 사회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되거나,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찾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자살 또한 고독사이지 않을까?
 
젊은 ‘나 홀로’족의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누가 감히 “너는 네 삶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어… 그러니 죽어 마땅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언제 밥 한번 먹자”, “ 조금만 힘내. 이제 좀 나아질 거야!” 하면서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나 홀로 ‘혼밥’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로 만들어진 외로운 투쟁의 시간이었다.
 
사람에 치여 혼자이고 싶어서 선택하는 ‘혼밥’의 세상. 원치 않아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혼밥’의 세상. 이래저래 ‘혼밥’은 뭔가 썩 편한 것은 아닌 듯하다. ‘혼밥’은 그저 혼밥일 뿐 거기에 더 특별한 자유 혹은 고독이 섞여 있지 않기를 바란다. 비자발적으로 혼자 남겨진 이들이 외로운 눈물의 ‘혼밥’이 되지 않도록 단단한 안전장치를 점검하고 마련할 때다.
 
‘나 혼자도 잘 먹고 잘 산다!’를 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 홀로’족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우리의 내일일 수 있기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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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원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필진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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