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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내 이름은 엔터테인먼트

중앙일보 2020.02.17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1980년대 중반 이역만리 미국 보스턴, 유학생 종강파티가 열렸다. 유학생과 가족들은 한 학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긴 여름 휴가에 들떠 있었다. 범생 고수들, 유아에서 대학까지 2등 기억은 없는 ‘공부의 신’ 무리는 저마다 잘난 지식을 뽐냈다. 그 때 커플이 입장했다. 뭇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삼성 가(家) 손녀라고 했다. 여학생들이 그를 맞았다. 미국학자들이 한국을 두고 ‘천민 자본주의’ 운운할 때였다. 잘난 범생들에겐 의당 냉소의 대상, 질투도 살짝 배긴 했었다.
 

문화산업에 냉소했던 범생들
오만과 편견, 뒤늦게야 반성
한국의 모순은 세계적 공감코드
일깨운 기생충은 자부심의 푯대

그녀가 ‘문화산업이 어쩌고’ 하는 순간 범생들의 표정은 완전히 냉소로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 ‘날라리’가 문화를 어찌 아는고. 문화란 제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양념같은 것. 당시 토요타, 소니, 히타치, 도시바가 세계를 재패한 비결은 일본 고유 문화에 숨겨진 노동자의 헌신 코드, 국가와 기업에 보답하려는 마음의 유전자, ‘기리’(義理)다. 일본 작업장에 가득 찬 저 보은(報恩) 열정을 발견한 순간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재빨리 금융으로 이동했다. 문화는 제조업에 투입하는 질료라는 범생들의 확고부동한 명제는 그녀의 ‘문화산업!’ 열변을 마당쇠의 골계쯤으로 여겼다.
 
대학 문화관에서 공짜 영화가 상영됐다. 한창 인기를 끌던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 우수에 찬 청년 제다이의 대사는 학부생의 집단 열창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저걸 다 외다니, 게다가 열광이라니. 한인 유학생의 관심은 그것보다 미국에 막 상륙한 현대자동차 엑셀에 꽂혀 있었다. 가난의 설움을 씻어주듯 달리는 엑셀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귀국 후에도 범생에게 문화는 자동차, 선박, 철강, 가전제품을 만드는 윤활유였을 뿐인데, 어느 날 거리에서 CGV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번듯하게 들어선 모습을 목격했다. ET로 유명해진 스필버그감독과 제휴한다는 말도 돌았다. 그곳에서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를 관람했다. 모두 CJ Entertainment란 세련된 로고가 붙었다. 문화가 돈을 버는 현장이었다. CJ CGV는 전국에 218개 상영관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몇 년 전 중국 청두에 100호점을 개설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이 됐다.
 
날라리의 논지가 맞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범생들은 독점자본의 문화계 진출을 은근히 경계했고, 유서깊은 극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걸 못내 아쉬워했으며, 충무로 영화인들이 큰손에 굽실대는 걸 통 크게 비난했다. 이제는 안다. 문화는 돈이 들고, 돈이 된다는 그 명제가 선견지명이었음을 말이다. 그것은 아마 조부 이병철 가(家)의 유전자였을 것이다. 정미소에서 시작해, 물산, 제당, 가전, 반도체, 통신, IT 최고 기업으로 상승하는 매 변곡점마다 번득이는 예지가 작용했다. 재벌의 부침을 우리는 무수히 목격했다. 조부DNA와 그녀의 탁월한 감각, 끈질긴 투자가 한국영화에 눈부신 영광을 선물했고 그녀를 아카데미상의 대모(代母)로 끌어올렸다.
 
봉준호도 외조부 박태원을 꼭 닮았다. 1930년대 모더니스트, 삽화 형태의 문장에 식민치하 청계천변 하층민의 삶과 애환을 스케치하듯 담아낸 작품이 『천변풍경』(1938년)이다. 청계천변 사람들 일상엔 일제(日帝)가 없다. 재봉소, 이발소, 다방, 식당, 노점, 점방, 술집 주인들이 엮는 일상풍경의 줌업 화면에는 연민과 억제된 한(恨)이 철철 넘친다. 능청스럽기도 하고 나름 계획도 있다. 하층민의 체념과 욕구가 투박한 언어와 행동에 분출되고 흩날린다. 봉준호의 친부(親父)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반지하 가족의 처연한 계획은 외조부의 스토리텔링이고, 그것을 부잣집 저택 공간에서 재현시키는 기법은 아버지의 회화적 디자인이다.
 
봉준호 자신은 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통에서 습득한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두 유전자를 서로 접목한 접착제였다. 2020년 한국의 가장 예민한 모순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한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영화 말미 피칠갑 장면이 어쩐지 거북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을 호명하는 순간 우리는 알아챘다. 한국인의 일상 속에 세계적 공감을 자아낼 보편 코드가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감독은 힘이 세다. 문화는 산업이자, 국경을 넘는 폭력과 증오를 녹이는 용광로다.
 
1920년대에서 발원하는 한국영화사, 수많은 배우들과 감독, 제작진들이 뜨고 진 열정의 외길에서 드디어 아카데미상이 탄생했다. 문화경영의 귀재 이미경과 이젠 거장 반열에 오른 봉준호가 쌓은 20여년 교감의 열매가 눈물겨운 한국영화사에 고품격의 명패를 헌정한 것이다. 과거에 엔터테인먼트는 오락, 여흥, 연예 같은 변방 직종을 일컬었지만, 문화와 감각의 시대엔 기예와 감성, 예술성을 뽐내는 최고의 직업이 됐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날라리의 창의적 놀이터에 범생들은 명함도 못 내민다. 차제에 과거의 오만과 좁은 식견을 반성할 겸 명함을 바꿔야 할까 보다. 내 이름은 엔터테인먼트.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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