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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선] 감사원이 개봉할 ‘원전 판도라 상자’

중앙일보 2020.02.17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막 오를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열흘가량 남았다. 원래 지난해 연말에 하려다 두 달을 미뤘다. 그 사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 코로나19,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 공개 거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석권,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여당이 고발한 사건 등등에 밀려 파묻히긴 했다. 하지만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 만한 사안이다.
 

월성 1호기 폐쇄한 한수원 이사회
회의록 곳곳에 ‘답정너’ 의혹 서려
감사원 감사, 이달 말 국회 보고

개막할 행사의 주관 기관은 감사원이다. 내용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 원전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 결과다.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이 타당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국회가 감사를 요구했다. 국회법에 따라 감사원은 3개월 시한인 지난해 연말 국회에 보고해야 했으나 연장을 요청했다. 그러곤 연장 최대 기간인 2개월을 꽉 채웠다. 이달 말까지 반드시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감사원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이다. 지난주 한수원 고위층들을 불렀다. 일부는 10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이사회 소집 절차부터 이상했다. 원전을 계속 돌렸을 때와 즉시 멈췄을 때의 손익을 비교해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다. 2018년 6월 15일 열린 회의는 바로 전날에야 이사들에게 소집을 통보했다. 50쪽에 이르는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는 이사들에게 사전 배포하지 않았다. 이사들은 경제적인 측면을 면밀히 검토할 겨를이 없었다. 이사회 당일에도 달랑 2쪽짜리 요약본만 제시했다. 그 상태에서 조기폐쇄를 의결했다.
 
회의록을 들춰보면 의구심이 더 짙어진다. 이사회 초반에 한수원 측이 설명을 이어갔다. 내용은 이렇다. “정부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방침을 결정했다. 한수원은 공기업으로서 정부 정책 이행을 위해 월성 1호기 운영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중략) … (정부의) 협조 요청 공문은 법률상 행정지도로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실상의 구속력은 있다고 판단된다. … (조기폐쇄) 결의 시 민사상 책임 여부는 …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판단된다. … 형사상 배임죄도 성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이지 않다. 민·형사상 책임 여부를 거론하기에 앞서 경제성 평가부터 꼼꼼히 짚는 게 순서 아닐까. 손익관계를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다. “이용률이 54.4% 미만이면 손실이 난다. … 경제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정도다. 그러고선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 폐쇄해도 여러분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투의 논지만 늘어놨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 냄새가 폴폴 풍긴다.
 
이뿐 아니다. 감사원이 연장 감사를 하는 사이에 의혹이 증폭됐다. 보고서 최종본의 내용이 초안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물론 초안과 최종본은 다른 게 당연하다. 그런데 ‘하필’이다. 핵심 변수들이 싹 조정됐다. 월성 1호기를 계속 돌렸을 때의 경제성이 더 나빠지는 쪽으로다. 초안에서 70%였던 평균 가동률은 최종본에서 60%로 떨어졌고, 가동 기간 내내 ㎾h당 60.8원으로 가정했던 전력판매단가는 48.8원까지 하락한다고 변경 추정했다. 한마디로 ‘전기를 덜 만들어 더 싸게 파는 것’으로 시나리오가 바뀌었다. 긍정적인 경제성이 나올 리 만무하다.
 
‘손익분기 가동률’도 고개를 모로 기울게 한다. 이건 초안과 최종본 모두 똑같이 전력판매가가 하락한다는 가정 아래 계산했다. 그런데 결과가 다르다. 초안은 51.5%, 최종본은 54.4%다. 최종본에서 뭔가 가동 비용을 더 크게 잡았다는 의미다. 이익을 제일 크게 좌우하는 가동률과 판매가는 떨어지고, 가동 비용은 더 들고. ‘퍼펙트 스톰’이다. 왜 이렇게 수치를 바꿨을까.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보고서를 만든 회계법인이 만났다고 한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경제성 평가 기준을 바꾸라고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 규명을 국회가 요구해 감사원이 맡았다.
 
일부 감사원을 못 미더워하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감사원이 대통령에게 수시 보고하는 건수가 부쩍 늘어서다. 더구나 탈원전은 이 정부의 도그마 아니던가. 감사원은 과거 4대강 감사를 네 차례 하면서 그때그때 정권 입맛에 맞춰 감사 결과를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번은 그런 오명을 씻을 기회이기도 하다. 정권 반대편에 서는 결과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감사 결과를 놓고 ‘합리적 의혹’이 제기되지 않으면 된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갖는’(감사원법 제2조 1항) 기관이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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