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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51명 감염시켰다···역사에 악명 떨친 '수퍼 전파자'

중앙일보 2020.02.16 05:00
감염병이 기승을 부릴 때 사람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현상이 있다. 바로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s)’의 등장이다. 슈퍼 전파자는 전염병 확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국의 스티브 월시(53)는 공식적으로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최초의 슈퍼 전파자다. 그는 혼자서 영국인 11명을 감염시켰다. 월시는 지난 6일 신종 코로나 확진을 받은 후 닷새 만인 11일 완치됐다. 그러면서 “나는 완전히 회복했지만 마음은 (나로 인해) 감염된 모든 사람과 함께 하겠다”며 미안해했다고 전해진다. 슈퍼 전파자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어떤 이유로 슈퍼 전파자가 되는 것일까. 
 

신종 코로나, 한명이 평균 2~3명에 옮겨
평균보다 많이 감염시키면 ‘슈퍼 전파자’
“환자 20%가 80% 감염시키는 파레토법칙”
메르스 때 폐 상하면 바이러스 과다 배출
면역 체계와 관련돼 상반된 주장 존재
“어린이·요리사·의료진도 가능성 높아”

‘슈퍼 전파자’란 누구 

 
슈퍼 전파자는 공식적인 의학 용어는 아니다. 따라서 ‘몇 명 이상을 감염시켜야 슈퍼 전파자’란 명확한 정의는 없는 상태다. 다만 통상적으로 평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환자를 일컫는다. 10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환자 한 명이 감염시킬 수 있는 평균 인원은 2~3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의 경우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염병을 옮기면 슈퍼 전파자가 되는 셈이다.  
 
싱가포르 콘퍼런스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후 현재까지 11명에게 전파한 영국 ‘슈퍼 전파자’ 스티브 월시. 그는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현지 언론에 자신의 얼굴과 신원, 동선을 공개하고 자신을 만난 사람은 빨리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전했다. [뉴스1]

싱가포르 콘퍼런스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후 현재까지 11명에게 전파한 영국 ‘슈퍼 전파자’ 스티브 월시. 그는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현지 언론에 자신의 얼굴과 신원, 동선을 공개하고 자신을 만난 사람은 빨리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전했다. [뉴스1]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의가 없을 뿐이지 슈퍼 전파자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현상”이라면서 “신종 코로나를 11명에게 옮긴 영국인 월시의 경우 슈퍼 전파자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1일 영국 인디펜던트는 감염병 유행 현상 가운데 하나인 ‘80대 20 법칙’(파레토법칙)을 소개했다. 감염자의 20%가 나머지 80%를 전염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감염자 5명 중 1명이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슈퍼 전파자가 되나  

 
감염병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우선 ‘바이러스 초유출자’(virus super shedders)가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몸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바이러스를 방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마크 울하우스 에든버러대 감염병역학과 교수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많은 양의 바이러스를 방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옮길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메르스 사태’ 당시 나타났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경우 국내 환자 186명 가운데 83%가 5명의 슈퍼 전파자에게 감염됐다. 당시 국내 연구진의 분석 결과 슈퍼 전파자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폐렴 증상, 즉 폐가 많이 상해 있었고 확진과 격리가 다른 환자들에 비해 늦어 많은 이들과 접촉한 경우였다. 
 
영국 브라이튼의 한 병원 직원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자 이 병원은 문을 닫았다. [AFP=연합뉴스]

영국 브라이튼의 한 병원 직원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자 이 병원은 문을 닫았다. [AFP=연합뉴스]

 
10일 가디언에 따르면 면역 체계와 관련된 상반된 이론도 있다. 일각에선 면역성이 약한 사람이 바이러스를 억제하지 못하고 배출한다고 추정한다. 반면 면역성이 강한 사람이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다가 병을 전파시킨다는 반론도 있다. 신종 코로나 슈퍼 전파자인 월시는 무증상 감염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영국 런던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 [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영국 런던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 [EPA=연합뉴스]

 
일상 습관과 접촉 빈도도 슈퍼 전파자를 낳는 원인이 된다고 과학 전문 매체 IFL사이언스가 11일 보도했다. 영국인 월시의 경우 지난달 20일 싱가포르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감염된 후 프랑스의 한 스키 리조트로 휴가를 갔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지역 사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어린이’도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플 경우 여러 어른들이 돌봐주다가 전염될 수 있어서다. 많은 환자를 만나는 의료 종사자나 불특정 다수가 먹을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 역시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고 IFL사이언스는 전했다.  
 

역대 슈퍼 전파자의 파급력은 얼마나 될까  

 
슈퍼 전파자는 과거 감염병 확산의 분수령이 됐다. 10일 BBC에 따르면 2015년 메르스 당시 한 병원에서 총 82명이 감염된 경우가 있었다. 2014년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전염병 사태 때는 대부분의 환자(61%)가 극소수의 환자(3%)로부터 감염됐다. 나탈리 맥더모트 킹스칼리지런던 박사는 “2014년 6월 단 한 번의 장례식에서 100명이 연쇄적으로 감염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95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선 2명이 50명을 에볼라에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핀란드 한 고교의 한 학생은 다른 학생 22명에게 홍역을 옮겼다.  
 
1909년 뉴욕아메리칸 신문에 실린 메리 맬런을 다룬 기사와 삽화. '장티푸스 메리'로 알려진 그는 총 51명을 장티푸스에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1909년 뉴욕아메리칸 신문에 실린 메리 맬런을 다룬 기사와 삽화. '장티푸스 메리'로 알려진 그는 총 51명을 장티푸스에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슈퍼 전파자는 ‘장티푸스 메리’로 알려진 메리 맬런(1869~1938년)이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 가정집 등에서 요리사로 일한 그는 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였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음식을 만들어 총 51명을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이탈리아 매체 쿼티디안 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요리사임에도 손을 씻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미국 당국에 의해 강제 격리됐다가, 세탁소에서 일하기로 약속하고 풀려났다. 하지만 가명으로 사람들을 속인 채 다시 요리사로 활동했고, 결국 다시 강제 격리됐다.  
 

신종 코로나의 슈퍼 전파자는 어떻게 막을까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의 슈퍼 전파자가 되는 원인을 먼저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르스의 경우 무증상 감염자는 있었지만, 무증상 전파자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즉, 증상이 있어야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는 무증상 전파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인 월시 역시 무증상 상태에서 11명을 감염시켰다.  
 
국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김남중 교수는 “슈퍼 전파자를 막는 데 있어 메르스의 경우 유증상자를 격리하는 방법이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의 경우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단계에서도 바이러스가 많이 나와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신종 코로나의 방역이 더욱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은 중국 당국이 환자들의 세부 사항을 국제사회에 공개해 슈퍼 전파자의 특징 등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슈퍼 전파자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특정 ‘사람’이 병을 옮긴다는 낙인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울하우스 교수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슈퍼 전파자’라는 말보다 ‘슈퍼 전파자 사건’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개인적 특성·바이러스의 특성·접촉 이력 등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관리자인 실비 브리안드 박사 역시 슈퍼 전파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오명을 쓰게 될까 우려했다. 그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슈퍼 전파자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상황이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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