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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은 밍바이라 했지만…SNS ‘부밍바이 저항’ 확산

중앙선데이 2020.02.15 00:22 673호 7면 지면보기

[코로나19 비상] 흔들리는 시진핑 리더십 

지난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진핑 국가주석의 얼굴이 그려진 간판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진핑 국가주석의 얼굴이 그려진 간판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不能(부넝, 못하겠다)! 不明白(부밍바이, 모르겠다)!”
 

‘위법 제재 알겠는가’ 경찰 훈계서에
가족 걱정한 리원량 ‘알겠다’ 서명
네티즌은 ‘모르겠다’ 인증샷 열풍

“톈안먼 사태보다 더 심각할 수도”
확진자 1만5000명 증가 통계 발표
“더 못 감춘다는 위기의식 때문” 관측

지난주부터 중국 네티즌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셀카 사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不能 不明白’라는 문구를 손글씨로 적어 인증하는 게시물이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꾹꾹 눌러쓴 종이를 들고 있는가 하면 아예 마스크에 글을 쓴 사람도 많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이들은 엄지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야유를 표시하기도 하고 도발적인 표정으로 가운뎃손가락을 추어올리기도 한다.
 
이들이 거부하는 게 무엇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위험성을 최초로 경고한 중국인 의사 리원량(李文亮·34)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월 3일 경찰은 리원량에게 위법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긴 훈계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화난(华南)시장에 7명의 사스 환자가 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내용의 문서였다.
 
리원량이 훈계서에 적은 문구는 2개. ‘能(넝, 할 수 있다)’과 ‘明白(밍바이, 알겠다)’ 였다. ‘能’은 ‘당신은 유언비어를 유포해 사회 질서를 해쳤다. 범법 행위를 중단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위법행위를 계속할 경우 법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알겠는가?’라는 물음에는 ‘明白’라고 답했다. 리원량은 “병원과 가족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 걱정돼 서명했다”고 뒷날 밝혔다.
 
‘不能(못하겠다)’ ‘不明白(모르겠다)’ 문구를 셀카로 찍어 SNS에 올리며 중국 정부에 항의의 뜻을 밝힌 중국 네티즌들. [유튜브 캡처]

‘不能(못하겠다)’ ‘不明白(모르겠다)’ 문구를 셀카로 찍어 SNS에 올리며 중국 정부에 항의의 뜻을 밝힌 중국 네티즌들. [유튜브 캡처]

경찰의 협박에 굴복해야 했던 단어 ‘能’, 그리고 ‘明白’. 이 단어는 공산당에 대한 저항의 뜻이 담긴 ‘不能(못하겠다)’, ‘不明白(모르겠다)’라는 단어로 재탄생했다. 리원량이 사망한 지난 7일 이후, 중국 네티즌들은 리원량을 추모하며 ‘이제는 행동할 때다’, ‘일어나 저항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이런 ‘불복종 운동’의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중국에서는 매일 7억 명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한다. 감염병으로 ‘유령도시’가 된 우한의 풍경은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됐다. 현지의 참상을 전하던 시민 기자 천추스(陳秋實·35)의 어머니는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유튜브에 “아들을 찾아달라”는 영상을 올렸다. 소식은 위챗(微信, 웨이신) 메신저를 타고 퍼졌다. 경찰은 뒤늦게 “천추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1인 병동에 격리 중”이라고 밝혔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 법학교수는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여론은 지금 슬픔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다”며 “(톈안먼 사태를 촉발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시진핑 주석의 실각을 상상할 수는 없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만들고 장쩌민(江澤民)이 확립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약 20년 만에 1인 중앙집권체제로 바꿔놓은 주인공이 시진핑이다. 대안 세력도 없다. 태자당(太子黨) 출신 시진핑은 그간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을 앞세워 부정부패 척결을 무기로 장쩌민의 상하이방(上海幫), 후진타오(胡錦濤)의 공청단(共靑團, 중국공산주의청년단)파를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리더십에 금이 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시 주석은 이를 만회하고자 지난 3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현 상황을 ‘국가 통치 체계와 능력에 대한 일대 시험’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10일에는 베이징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이 입원한 디탄(地壇) 의원을 찾아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는 모습을 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후베이성과 우한시의 공산당 서기는 동시에 경질됐다. 마치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를 연상시킨다. 사스 발생 초기 중국 당국은 국민의 불안감을 막는다는 이유로 사망자 수를 축소 발표하는 등 상황을 감추기 급급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위생부장을 면직시키고 취임한 지 3개월 된 베이징 시장을 교체했다. 그때 베이징 시장에 취임한 사람이 지금의 왕치산 부주석이다. 그는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천명하며 초토화된 베이징을 수습했다. 사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된 셈이다.
 
코로나19 확진 기준을 전격 변경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집계한 코로나19 사망자는 13일 0시 기준 총 1367명, 확진자는 5만9804명이었다. 하루 만에 확진자 수가 1만5000명 이상 늘어난 데 대해, 중국 정부가 그동안 숫자를 의도적으로 축소 발표해 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은폐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확진자 통계를 공개한 것은 상황을 감출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는 시 주석 집권 이후 최대 위기다. 생채기 난 리더십을 시 주석이 어떻게 수습해갈지 주목된다.
 
김경미 차이나랩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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