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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증축’ 리모델링, 막힌 재건축 탈출구 되기엔 역부족

중앙선데이 2020.02.15 00:21 673호 15면 지면보기
1992년 입주한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성지 아파트. 지하 2층 지상 15층짜리 2개동의 소규모 단지가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으로 2023년께 지하 3층 지상 18층 340가구로 탈바꿈한다. 3개층을 더 올려 42가구를 늘리고, 아파트 앞뒤를 늘려 84㎡(이하 전용면적)형은 103㎡형으로, 66㎡형은 80㎡형으로 키운다. 송파구청은 이런 내용의 ‘수직증축’ 계획을 지난달 22일 승인했다. 수직증축 계획이 승인을 받은 건 2014년 정부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법제화한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이다. 시장에선 “아파트 리모델링이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사업성이 낮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제2, 제3의 성지 아파트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송파 성지 아파트 첫 허용
강남·강북 중층 리모델링 추진
분당·일산 1기 신도시도 적극적

15년 이상, 안전진단 B등급 가능
최대 3개 층 더 올려 가구수 늘어

사업성 떨어져 현장선 지지부진
정부, 활성화 외치며 규제로 발목

법제화 후 6년 만에 첫 승인
 
아파트 리모델링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집주인이 모여 사업을 진행한다는 측면에서 재건축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아파트의 기본 골조를 유지하면서 늘리거나 고쳐 짓는다. 새로 짓는 게 아니어서 사업 문턱도 재건축에 비해 낮은 편이다. 재건축은 지은 지 30년이 넘어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 이상이면 할 수 있다. 안전진단에서 B등급(유지·보수)을 받아도 할 수 있다. 재건축은 E등급(불량)이거나 D등급(조건부 허용)이어야 한다. 정부도 재건축보단 아파트값 상승률이 높지 않은 만큼 투자(투기)보단 실거주가 목적이라고 보고 적극 장려한다. 안전성 논란이 있었던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수직증축은 최대 3개층(15층 이하는 2개층)을 더 올릴 수 있다. 층수를 올리면 가구 수를 쉽게 늘릴 수 있고, 늘어난 아파트를 일반에 분양해 건축비에 보탤 수 있다. 리모델링 사업의 채산성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 덕에 2014년 이후 리모델링은 재건축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한 중층(9~15층) 아파트나 정부의 재건축 규제로 사업성이 악화한 재건축 추진 단지가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현재 서울·수도권에서만 35개 아파트(2만2200여 가구)가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특히 분당·평촌·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리모델링에 적극적이다. 지은 지 25년이 넘어 많이 낡았지만 재건축을 하기엔 용적률 등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산본신도시 산본역 인근 우륵주공 7단지, 율곡주공 3단지, 세종주공 6단지가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군포시도 리모델링 지원을 위해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고양(일산신도시)·성남시(분당신도시)는 이미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해 적용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리모델링 사업 수주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브랜드 홍보를 위해선 서울 주요 지역에 아파트를 공급해야 하는데 재건축·재개발은 규제에 막혀 있다”며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수익이 많지 않지만 주요 지역에 꾸준히 아파트 브랜드를 달 수 있는 만큼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은 그러나 재건축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지다 보니 지지부진한 편이다. 2014년 리모델링 사업을 끝낸 서울 청담동 ‘래미안 청담로이뷰’(옛 두산 아파트), ‘청담아이파크’(옛 청구 아파트) 이후 명맥이 끊겼다. 정부가 2013년 리모델링 사업을 통한 가구 수 증가 범위를 기존 가구 수 대비 10%에서 15%로 늘렸지만, 여전히 일부 주민은 ‘차라리 재건축을 하자’는 쪽이다. 수직증축이 아니면 가구 수를 늘리기 쉽지 않고, 내력벽(아파트의 하중을 받치거나 분산하는 벽) 때문에 평면 설계에도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채광·통풍을 극대화한 4베이(bay) 평면(아파트 전면에 ‘방·방·거실·방’ 배치)이 인기지만, 내력벽을 철거하지 않고는 베이 수를 늘리기 쉽지 않다.
  
절차 복잡하고 까다로운게 문제
 
수직증축은 아파트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문제다. 정부가 리모델링 사업을 권장하면서도 제도적 뒷받침엔 소홀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의 한 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이 초기 단계이다 정부가 과도한 안전 검증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이나 용산구 등지에선 일반분양 물량이 30가구를 넘으면 분양가 상한제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리모델링조합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활성화하기로 했으면 제도나 규제도 그에 맞춰 가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은 꺼지지 않고 있다. 비용·환경적인 면에서 재건축에 비해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엔 사업계획 승인 문턱을 낮춘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사업계획 승인을 위해선 조합원 100%의 동의를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75%가 동의하면 매도청구권을 행사해 승인을 받을 수 있다.  
 
개정안 덕에 리모델링 사업 속도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을 해도 수익성이 크지 않거나, 입지적 제한으로 재건축하기 어려운 아파트는 리모델링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시기를 놓쳐 노후화한 채로 방치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 좌우하는 ‘내력벽’ 철거 허용 계속 미뤄
“올 상반기에는 아마도…”. 리모델링 사업이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내력벽(아파트의 하중을 받치거나 분산하는 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토부는 원래 지난해 초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하반기로 허용 여부 결정을 미뤘고 하반기엔 다시 올해 초로 결정을 미뤘다. 관련 연구용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결정 연기의 이유다. 그러나 올 상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는 리모델링 사업을 좌우할 핵심 요소다. 내력벽을 철거하면 3베이(아파트 전면에 ‘방·거실·방’ 배치)는 물론 4베이 등 리모델링 사업으로도 신축 못지 않은 다양한 평면을 들일 수 있다. 재건축보다 비용과 시간을 훨씬 적게 들이면서도 재건축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리모델링 업계에선 2014년 가구 수를 쉽게 늘릴 수 있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법제화 이후 꾸준히 내력벽 철거 허용을 요구해왔다. 내력벽은 아파트 기본 골조여서 철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건축 기술로 얼마든지 보안할 수 있다는 게 리모델링 업계의 주장이다.
 
정부도 리모델링 활성화 차원에서 내력벽 철거를 허용하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정부는 2016년 돌연 내력벽 철거 여부를 좀 더 신중히 결정하겠다며 발을 뺐다. 그해 8월 국토부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은 안전성 검토 연구용역을 완료한 3년 후 다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용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허용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관심이 크긴 하지만 2014년 이후 아파트 리모델링 명맥이 끊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집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서울 강남과 분당신도시 일대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4·15 총선 이전에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철거를 불허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와도 총선 이전에 결과를 내놓긴 부담스럽기 마찬가지다. 서울은 물론 리모델링을 통해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 중인 분당신도시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상반기 결정은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국토부가 연구용역 결과를 놓고 리모델링 관련 협회와 전문가 등 추가 협의를 거쳐 세부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2~3월에 연구용역이 끝난다고 해도 상반기 중으로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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