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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장꼬장했던 경제 관료 김학렬

중앙선데이 2020.02.15 00:20 673호 21면 지면보기
내 아버지의 꿈

내 아버지의 꿈

내 아버지의 꿈

김정수 지음

덴스토리
 
‘칠순 기자 아들이 전하는 40대 부총리 김학렬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4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김학렬 스토리를 경제 전문기자를 지낸 아들이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 시절, 사무관이었던 진념 전 부총리가 책 앞머리에 ‘행동으로 가르쳐준 경제관료의 모범’이라는 상찬을 올렸다.

 
김학렬의 별명은 이름 가운데 한자인 ‘鶴’의 일본어 발음인 ‘쓰루’였다. 고등고시 1회 행정과에 수석으로 합격해 재무부 사세국장(현재의 국세청장+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경제기획원 초대 예산국장을 지냈다.

 
‘왕초’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장기영 2대 부총리 밑에서 경제기획원 차관과 재무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 기획원을 출입하던 고(故)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의 인물평을 빌리면 보스 기질의 ‘왕초’와 꼬장꼬장한 서당 훈장 스타일의 ‘쓰루’는 갈등하고 반목했다. 쓰루가 최연소 재무장관을 지내다 석 달 만에 옷을 벗은 것도 그게 큰 이유였다.  
 
그 후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를 맡아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한국개발연구원(KDI) 건립을 진두지휘했다. 1972년 49세 때 췌장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2,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숫자에 강하고, 자존심 세며, 서류를 내던지고 욕설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은 험했지만 때론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면모를 다양한 일화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에게 보고하다가 하도 정신없이 깨져서 뒤돌아 나오려고 문을 연다는 게 캐비닛을 열었다는 관가의 유명한 일화는 이 책엔 나오지 않는다. 회고록인 만큼 실명이 많이 등장한다. 마음이 편치 않을 사람도 꽤 있겠다.  
 
대통령이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쓰루가 상정한 청와대 수석의 역할인데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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