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든 생명 현상은 이타적 활동”

중앙선데이 2020.02.15 00:20 673호 21면 지면보기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DNA 결정론 인간 집착일 뿐
질병과 죽음 또한 자연의 과정

유선경·홍창성 지음
운주사
 
연기법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설이다. 그래서 “연기(緣起)를 보면 곧 법(法)을 보는 것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연기는 글자 그대로의 뜻대로 ‘연(緣)하여 기(起)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 인과와 인연화합이 제법의 실상이라고 본다. 연기법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여럿의 원인들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만물이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만물이 무상(無常)하고, 그러므로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없다고 본다. 특히 연기법이 강조하는 것은 이 우주 세계의 일체만유가 상관적이고 상의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는 생명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불교의 연기와 공(空)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설명한다. 현재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유선경·홍창성 부부가 대한불교진흥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불교문화’에 실었던 에세이 원고들을 보완해서 묶었다.
 
“수없이 많은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생명체는 무상하다. 무상한 생명체 안 그 어디에도 생명체를 그 생명체이게끔 해 주는 고정불변한 본질적 속성은 없다.”  
 
인간의 오만이 다른 동물종들의 고통을 부른다. 뭇 생명들의 작용 없이 인간 홀로 생존할 수는 없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인간의 오만이 다른 동물종들의 고통을 부른다. 뭇 생명들의 작용 없이 인간 홀로 생존할 수는 없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그러므로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DNA 분자의 다발이 사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고, 그 스스로를 고유한 DNA 분자의 다발로 규정하는 본질적 속성은 없다고 지적한다. 두루미와 여우가 각각 다른 종(種)이라고 바라보는 시각 또한 동일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집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각각의 종에 속하는 생명체들이 모두 서로 ‘동일한 무엇’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하나의 종으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이 작업은 실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려는 오랜 습관과 정리 정돈에 대한 애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유전자 결정론에 근거한 종의 분류가 생명 세계를 있는 그대로 가진 속성에 따라 분류한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환원의 문제에 대해서도 연기와 공의 관점이 유의미한 해석을 제공한다고 바라본다. 예를 들어 나비의 날개를 환원한다고 할 때에는 나비의 날개를 구성하는 구조적인 속성들인 관맥, 관맥으로 지탱되는 두 개의 키틴질 막, 수천 개의 각층과 미세한 털 등으로 분해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환원해서 나비의 날개가 분해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람직한 미시구조적 환원은 나비의 날개를 환원함으로써 이 구조적 속성들의 배열과 상호관계를 이해하게 되는 데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병듦과 죽음 또한 우리에게 실존적인 거대한 문제이지만 자연계의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덜 비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붓다의 가르침인 무상과 공을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고정불변한 최적이나 최상의 생명체와 생명현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든 생명 현상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생명과학이 확인해주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은 모두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 기여하는 일종의 이타적 행동으로, 자비행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이 책의 논점은 요즘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태준 시인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