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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오른쪽,돌리고… 어떻게 그 복잡한 걸 다 외울까?

중앙일보 2020.02.14 07:00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22)

 
댄스스포츠는 한발을 내 딛는 ‘스텝(Step)’으로 시작해서 몇 가지 스텝으로 이뤄지는 ‘휘겨(Figure)’, 그리고 휘겨를 연결해서 안무를 짜는 ‘루틴(Routine)’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텝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는 잘못 된 용어의 사용이다. 대부분 휘겨나 루틴을 물어 보는 것이다. 영어 배울 때와 비교하면 단어는 하나지만, 숙어는 단어의 관용적 연결이다. 단어와 숙어를 적당히 섞어야 한 문장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댄스도 스텝은 기본이고 휘겨는 영어의 숙어처럼 몇 가지 스텝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왈츠에서 대중화 된 한 루틴을 예로 보면, 내추럴 스핀 턴(Natural Spin Turn)-샤쎄(Chasse)-퀵 오픈 리버스(Quick Open Reverse)-오버스웨이(Over Sway)식으로 연결된다. 각각의 휘겨는 따로 스텝이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토막을 연결하면 루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휘겨 다음에는 아무 휘겨나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적합하게 권장되는 휘겨들이 있어 댄스를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몸이 그렇게 움직인다. 위치에 따라서도 어떤 휘겨가 쓰일 것인가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이런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가사를 몰라서 모니터 자막 없이는 노래를 못한다는 사람, 대사를 못 외워서 연극을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뭔가를 외워야 하는 분야가 있다. 나도 노래 가사를 제대로 아는 노래는 몇 곡 되지 않는다. 연극 보다 쉬운 시를 한 편 암송하라고 해도 머리에 쥐가 난다.
 
댄스스포츠는 한발을 내 딛는 ‘스텝(Step)’으로 시작해서 몇 가지 스텝으로 이뤄지는 ‘휘겨(Figure)’, 그리고 휘겨를 연결해서 안무를 짜는 ‘루틴(Routine)’으로 되어 있다. 휘겨 다음에는 적합하게 권장되는 휘겨들이 있는데 이런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사진 Pixabay]

댄스스포츠는 한발을 내 딛는 ‘스텝(Step)’으로 시작해서 몇 가지 스텝으로 이뤄지는 ‘휘겨(Figure)’, 그리고 휘겨를 연결해서 안무를 짜는 ‘루틴(Routine)’으로 되어 있다. 휘겨 다음에는 적합하게 권장되는 휘겨들이 있는데 이런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사진 Pixabay]

 
댄스도 그렇다. 루틴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음악 한 곡을 못 끝내는 사람도 많다. 자이브는 시중에 나와 있는 휘겨가 100가지가 넘는다. 파티에서는 남자가 알아서 그중 몇 가지를 파트너에 맞게 리드해서 구사하지만, 단체반에서 한창 배울 때는 같이 해야 하니 순서대로 하자면 보통 일이 아니다. 파트너와 눈을 맞추며 춤을 춰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 옆 사람을 보느라고 고개가 돌아간다.
 
왈츠 같은 스탠더드 댄스는 플로어를 돌면서 추는 춤이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회전하고 나면 다음 루틴을 잊어 버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춤을 추다가 멈추게 된다.
 
스탠더드 5종목으로 출전한 경기댄스는 오히려 쉬웠다. 연습량이 많으니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경기 시간이 2분 내외 이기 때문에 왈츠, 폭스트로트는 한 바퀴 반 정도, 탱고, 퀵스텝은 두 바퀴 정도, 비에니즈 왈츠는 두세바퀴를 돌아도 루틴이 단순하니 문제가 안 되었다. 춤이 종목이 달라도 결국은 통하다 보니 일부 겹치는 휘겨가 있으나 종목별로 리듬이 다르니 헷갈릴 것도 없다.
 
경기장에 가면 반드시 리허설을 해야하지만 플로어에서 연습할 시간 없이 경기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 루틴을 그려 보는 것이다. [사진 Pixabay]

경기장에 가면 반드시 리허설을 해야하지만 플로어에서 연습할 시간 없이 경기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 루틴을 그려 보는 것이다. [사진 Pixabay]

 
그래도 경기장에 가면 리허설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매번 밤에 지하실 연습장에서 연습한 것과 오전에 대회장에 가면 밝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 아래 처음 가 보는 플로어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대회장이 체육관이 아닌 호텔 그랜드볼룸일 수도 있다. 일단 장소가 바뀌면 얼떨떨하다. 방향부터 연습 장소처럼 잡아야한다. 대부분 오른쪽 모서리부터 시작하는데 어떤 여성 파트너는 반대편에서 시작해야한다며 방향 감각에 대한 차이가 있어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둘이 방향 합의가 되지 않으면 춤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여성 파트너가 고집 부리면 어쩔 수 없이 반대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
 
플로어 공간을 경기 시작과 함께 연습할 수 없게 되면, 그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 루틴을 그려 보는 것이다. 스탠더드 5종목에 출전한다면 왈츠 추기 전에는 왈츠만 집중해서 생각하고, 다음 춤으로 탱고라면 플로어에서의 이동 중에도 탱고만 집중해서 생각하는 방법이 좋다. 그만큼 집중해야 한다. 특히 리드를 담당해야 하는 남자는 그래야 한다.
 
세계적인 일본 여자 프로 당구 선수가 있다. 그 선수는 공격 실패 후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아 있을 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한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일단 실패한 자기 공격 방식에 대해 빨리 복기 해보고 즉시 문제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배열의 공이 놓였을 때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또, 상대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의 동요가 있을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방식에만 몰두하는 자기 최면 방식이다.
 
어느 동호회 댄스파티에 갔는데 회장이 이것저것 하는 일이 바빴다. 시범 댄스까지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명이 주변은 꺼지고 플로어에만 비치며 막상 시범댄스를 시작하려고 준비 동작까지 했는데 출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음악은 흐르는데도 너무 오래 그냥 있었다. 여성 파트너가 그 회장을 끌고 나가며 춤은 췄는데 끌려다니는 수준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도해 봤지만, 마찬가지로 죽을 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루틴이 하나도 생각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너무 긴장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춤 추기 전에 마인드 컨트롤 과정을 안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너무 많은 일을 다 개입하다 보니 마인드 컨트롤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지점에 오면 몸이 어느 방향으로 회전해야 하고 그 방향에서는 또 어떤 휘겨를 구사해야 하는지 자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한 연습이 필요하다. [사진 Pxhere]

어느 지점에 오면 몸이 어느 방향으로 회전해야 하고 그 방향에서는 또 어떤 휘겨를 구사해야 하는지 자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한 연습이 필요하다. [사진 Pxhere]

 
TV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가사를 까 먹는 출연자들이 있다. 집중해서 노래 가사를 떠올려야 하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추거나 관객들의 호응을 받겠다고 딴 짓을 하다가 정작 노래 가사를 까먹는 것이다.
 
결국 해결 방법은 무한한 연습이다. 어느 지점에 오면 몸이 어느 방향으로 회전해야 하고 그 방향에서는 또 어떤 휘겨를 구사해야 하는지 자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심지어 플로어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이 생겨 방향이 바뀌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다른 휘겨를 구사해서 위기 탈출을 할 줄 알아야 감점을 당하지 않는다.
 
댄스를 좀 한다는 사람 정도라면 머리에 여러 가지 루틴이 입력되어 있다. 학원에서 초급반을 가르칠 때 쓰는 루틴부터, 중급반, 고급반, 연구반 루틴이 다르다.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첫 한 바퀴 플로어를 돌 때 루틴과 두 번째 바퀴의 루틴이 다르다. 각 클래스 별로도 루틴이 다르다. 경기 루틴은 또 다르다. 경기장에 맞춰 루틴을 짜다 보니 루틴이 몇 가지나 되는 경우도 있다. 시범 댄스 루틴으로 따로 연습한 것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루틴은 잘 쓰면 순발력을 발휘해서 플로어에서도 다양하게 구사하며 도움이 되지만, 여러 루틴이 섞이면서 오히려 혼선이 생기는 수도 있다. 학원에서는 잘 되는데 경기 대회만 나가면 헷갈린다는 사람도 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란 명언이 있다. 학원에서 할 때는 실전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실전에서 연습 때의 버릇이 나오는 것이다.
 
내 경우에, 시를 한 편 암송하는 방법은 주머니에 복사본을 넣고 다니면서 걸으며 암송해 본다. 가만히 있을 때보다 걸을 때가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연구가 있다. 하모니카 연주를 위해 계명을 외울 때도 그런 방법으로 먼저 외운다. 모니터 없이 노래를 해야 할 자리가 있으면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가사를 외운다. 댄스 배울 때도 그랬다. 폭스트로트의 특수한 풋워크를 익힐 때 걸으면서 익혔다. 발바닥의 어느 부분부터 딛느냐를 익히는 것이므로 남들은 봐도 잘 모른다. 그렇게 노력해야 뭔가를 이룬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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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필진

[강신영의 쉘 위 댄스] 댄스 동호인으로 시작해 30년간 댄스계에 몸담았다.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외면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댄스스포츠 세계는 문화, 역사, 건강, 사교,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알수록 흥미롭다. 30년 댄스 인생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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