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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먼지에 1년반만에 숨졌다···‘60년대 광부병’ 규폐증 공포

중앙일보 2020.02.14 06:00
규조토를 사용해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세척하는 작업 현장. 그릇에 담긴 분말이 규조토다. [사진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규조토를 사용해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세척하는 작업 현장. 그릇에 담긴 분말이 규조토다. [사진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공장 작업장에서 모래 먼지를 마신 40대 여성이 급성 규폐증(硅肺症, silicosis)으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상생활 속에서도 발매트 등 규폐증의 원인 물질인 규조토 가루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시민들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병 1년 7개월 만에 사망

규폐증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X선 사진. 오른쪽으로 갈수록 결절(혹)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연세대 원주의대(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지, 2005년0]

규폐증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X선 사진. 오른쪽으로 갈수록 결절(혹)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연세대 원주의대(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지, 2005년0]

지난 2018년 4월 40대 후반의 여성 A 씨는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A 씨는 1994년 4월부터 인천에 위치한 주방용 스테인리스 스틸(스텐) 용기의 광택 가공 업체인 B사에서 일했다.
그는 연노란색 세라믹 분말을 스펀지에 묻혀 용기에 묻어있는 이물질과 기름때를 닦아내는 세척 작업을 맡았다.
 
2015년까지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던 A 씨는 2016년 9월 병원에서 과민성 폐렴 진단을 받았고, 진단 1년 7개월 만에 사망했다.
 
추가적인 조직 검사 소견과 영상 판독 결과, 그리고 작업환경 평가 결과 등으로 A 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규폐증으로 진단됐다.
2017년 6월 산재보험 급여 신청을 제출했던 A 씨는 사후에 산재 인정을 받았고, 장례비·위로금 등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1960~70년대에 광부들 사이에서 규폐증이 많이 발생했으며, 현재도 규폐증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없지 않지만, 급성 규폐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국내 첫 공식 보고다.
 
A씨가 급성 규폐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최근 발간된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관련 내용이 담긴 논문이 게재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논문은 김부욱 박사 등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연구팀과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가 작성했다.
 

기준치 넘는 규조토 가루에 노출  

규폐증 환자의 X선 사진.

규폐증 환자의 X선 사진.

연구팀은 A 씨의 진술서와 의무기록 등 자료를 검토한 데 이어, 2018년 말에서 2019년 초 사이에는 인천의 B사를 방문, 작업 현장 환경을 직접 조사를 진행했다.
 
논문에 따르면, A 씨는 생전에 "B 업체가 2015년 8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는데, 그 이후 국소 배기 장치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아 호흡 곤란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B사의 사업주는 "국소 배기장치를 포함한 각종 설비는 공장 이전 때 그대로 옮겨와 사용해 국소 배기 장치 성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장 조사 결과, 스테인리스스틸 용기 세척 과정에서 분말을 스펀지에 묻힐 때와 용기를 닦을 때 분말이 공기 중으로 날리는 것을 확인했다.
국소 배기장치가 있었지만, 후드가 없어 분말이 제대로 포집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따르면 국소 배기장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업 위치에서도 풍속이 초당 1.2m 이상 돼야 하지만, 현장에서 측정한 풍속은 초당 0.3m에 불과했다.
 
B 업체에서 사용한 분말은 '규조토' 분말로 이산화규소(SiO2)의 육각형 결정체인 석영이 12%, 이산화규소 다형체로 독성이 더 강한 크리스토바라이트(cristobalite)가 9% 함유돼 있었다.
규조토(珪藻土, Diatomite)는 단세포 미세 조류인 규조류의 외피가 바다나 호수 바닥에 퇴적돼 형성된 다공질의 흙이다. 
낙동강에서 채집된 규조류(돌말) 아울라코세리아(Aulacoseria ambigua)의 전자현미경 사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에서 채집된 규조류(돌말) 아울라코세리아(Aulacoseria ambigua)의 전자현미경 사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에서 채집된 규조류(돌말) 의 심벨라(Cymbella tumida)의 전자현미경 사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에서 채집된 규조류(돌말) 의 심벨라(Cymbella tumida)의 전자현미경 사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분말 세척 작업자가 노출된 총 분진 농도는 ㎥당 2만3479㎍(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에 노출됐고, 호흡성 분진(PM10) 농도도 1434㎍/㎥이나 됐다.
분진 중에서 석영 농도는 91㎍/㎥, 크리스토바라이트는 106㎍/㎥에 이르러 고용노동부 노출 기준인 50㎍/㎥를 크게 초과했다.
 
그런데도 분말 세척 작업자들은 일반 면 마스크만 적당히 걸친 채 작업을 진행해 분진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연구를 진행한 김 박사는 "분진이 초미세먼지처럼 작지 않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지 않아 같은 작업장 내 다른 근로자에게서는 건강 이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필요할 것"이라며 "비슷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적인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에는 B사와 같은 업종의 업체가 6~7곳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전국적으로는 업체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석재 가공, 발매트 세척 때 주의 

엔지니어드 스톤의 일종인 샤일스톤(silestone)

엔지니어드 스톤의 일종인 샤일스톤(silestone)

이웃 중국에서는 10여 년 전 광둥 성 후이저우의 한 보석 공장에서 보석 원석을 가공한 근로자 10여 명이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중국에서 한해에 2만4000명 이상이 규폐증으로 숨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호주 등지에 석재를 가공하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규폐증 사례가 늘고 있다.
차세대 인조대리석이라는 '엔지니어드 스톤'을 주방용 석재 상판으로 매끄럽게 가공하는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규조토 등을 압축해서 만든 석재를 가공하는 근로자의 10%가 규폐증을 앓는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는 화장실용 발 매트에도 규조토가 사용되고 있다.
규조토가 미세한 구멍이 많아 발에 묻은 물기를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규조토 발 매트를 세척할 때 사포로 문지르도록 하는데, 이 경우 자칫 규조토 가루가 날려 호흡기로 들어올 수 있다.
 
김부욱 박사는 "발 매트 세척 때 나오는 규조토 먼지 양으로는 급성 규폐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다"며 "엔지니어드 스톤 등을 가공하는 근로자들의 건강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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