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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언어장벽 문제 안 된다, 봉처럼 초이도

중앙일보 2020.02.14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캡틴을 맡은 어니 엘스(오른쪽)와 바이스 캡틴 최경주. 차기 대회 캡틴은 현 바이스 캡틴 중 선정될 것으로 엘스는 예상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캡틴을 맡은 어니 엘스(오른쪽)와 바이스 캡틴 최경주. 차기 대회 캡틴은 현 바이스 캡틴 중 선정될 것으로 엘스는 예상했다. [AP=연합뉴스]

스포츠 기자를 하면서 만났던 선수 중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셋을 꼽으라면 최경주, 서장훈, 이영표다. 그중에서도 최경주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기자의 우문에도 현답을 해주는 선수는 똑똑하고 인격도 고매해 보인다. 최경주가 그렇다. 한 번 질문에 기삿거리가 막 쏟아졌다. 말도 재미있게 했다.
 

내년 프레지던츠컵 캡틴 곧 선발
경력·나이·지명도 적당한 최경주
아카데미상 벽 허문 봉감독처럼
영어권 캡틴 관례 깨는 계기되길

“바다에 가서, 물을 막고, 김발을 만들고, 키워서, 빻고, 갈아서, 물에 타서, 모양 떠서, 물을 빼서, 널어서, 가지고 와서, 벗겨서, 접어서, 잘라서, 포장해서, 수협에 가야 한다. 건조대에 몇천 장 김이 널린다. 산더미 같다. 보는 순간 겁을 먹는다. 언제 다하나 싶어 한 마디씩 불평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사람들은 눈이 제일 게으르다. 그 불평 할 동안 벌써 열 개는 했겠다’라고 말씀하셨다.”
 
2021년 10월 프레지던츠컵(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주 샬럿)을 지휘할 캡틴을 곧 선발한다. 지난해 호주 대회 캡틴 어니 엘스(남아공)가 사임해서다. 타이거 우즈에게 당한 역전패 충격이 큰 듯하다. 차기 후보는 지난해 대회 바이스 캡틴 중에서 뽑을 것으로 보인다. 최경주와 마이크 위어(캐나다), 트레버 이멜만(남아공), 제프 오길비(호주)다.
 
위어는 제외해야 할 것 같다. 자국에서 열릴 차차기 대회 캡틴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이멜만은 그린재킷이 있지만, PGA 투어 2승에 불과하고 선수 생활이 길지 않다. 나이도 너무 젊다. 1979년생으로 41세다. 프레지던츠컵 캡틴은 50세 무렵에 하는 게 관례다. 오길비는 메이저 1승 등 PGA 투어 8승을 기록했다. 똑똑하고 성격도 좋아 선수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만 43세로 역시 어린 감이 있다.
 
최경주는 프레지던츠컵에 세 번 선수로, 두 번 바이스 캡틴으로 나갔다. 넷 중 경험이 가장 많다.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 PGA 투어 8승을 거뒀다.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한 메모리얼,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AT&T 내셔널에서도 우승했다. 미국에서도 팬들과 선수들이 그를 좋아한다. 나이도 딱 적당하다.
 
그런데도 최경주가 캡틴을 할 수 있을 거라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언어 장벽 때문이다. 캡틴은 각종 행사에 참여해 연설해야 하고, 선수들과 세밀한 작전을 협의해야 한다. 골프는 미국과 영국 중심이어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맡기 쉽지 않다.
 
한국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쓴 걸 보면 이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경주처럼 말을 재미있게 하는 선수가 언어 장벽 탓에 진가를 보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봉준호 감독을 돋보이게 한 샤론 최처럼 뛰어난 통역과 함께라면 어감 하나하나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 영화만 작품상을 타던 아카데미의 ‘전통’을 봉준호 감독이 깼다. 영어 사용국에서만 캡틴을 하던 프레지던츠컵 관례를 깨는 주인공은 최경주였으면 좋겠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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