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HO “코비드-19” 이라는데···세계 떠도는 “中바이러스” 유령

중앙일보 2020.02.13 05:00
지난 4일 중국 후난성 창사 기차역에서 보호복을 입은 방역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후난성 창사 기차역에서 보호복을 입은 방역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비드-19(COVID-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드디어 이름을 얻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의 공식 명칭을 11일(현지시간) '코비드-19'로 발표하자 블룸버그통신은 이렇게 전했다. 지난달부터 줄곧 국제사회와 학계에서 '명칭 논쟁'에 휘말렸던 신종 코로나의 정식 이름이 생겼지만, 정작 WHO 발표 이후에도 공식 명칭 '코비드-19'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면서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우한 폐렴'에서 '2019-nCoV'

지난달 신종 코로나 발생 초기 이 감염증은 주로 '우한 폐렴' '우한 바이러스'로 불렸다. 최초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딴 명칭이었다. 그러나 "감염병의 피해자인 우한 시민들에게 낙인효과까지 덧씌운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WHO는 임시방편으로 '2019-엔코브(2019-nCoV)'라는 명칭을 권고했다. 지난 2015년 지역이나 사람의 이름 등을 감염병의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권고 지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질병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임시적 이름'으로 여겨졌다.
 
그 사이 세계 주요 언론은 '차이나 바이러스(China virus)'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Novel coronavirus)' 등의 표현을 써왔다. 한국의 경우 청와대의 요청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공통 명칭을 사용했다.    
 

◇세계는 아직 '코로나바이러스' '중국바이러스'

그러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이 '코비드-19'를 이 전염병의 공식 명칭으로 발표한 이후에도 신종 코로나를 '코비드-19'로 부르는 분위기는 형성되지 않고 있다.  
 
WHO가 신종 코로나의 공식 명칭을 '코비드-19'라고 발표한 뒤에도 로이터통신은 '차이나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보도하고 있다. [로이터 캡처]

WHO가 신종 코로나의 공식 명칭을 '코비드-19'라고 발표한 뒤에도 로이터통신은 '차이나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보도하고 있다. [로이터 캡처]

 
영국 공영 BBC는 '코비드-19'가 WHO가 정한 신종 코로나의 공식 명칭이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에도, 자국 내 슈퍼전파자 관련 뉴스에서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로이터통신의 경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면서 일부 기사에서는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도 WHO 발표 이후에도 '코로나바이러스 발생(Coronavirus outbreak)'이라는 코너명을 바꾸지 않은 채 계속해서 기존 사용하던 명칭을 사용했다. 
 
미국의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신종 코로나 관련 보도를 모아놓은 코너에도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미국의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신종 코로나 관련 보도를 모아놓은 코너에도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독일 슈피겔, 프랑스 르몽드 등 유럽의 주요 일간지도 WHO의 명칭 결정 이후에도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한국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WHO의 '코비드-19'가 아닌 '코로나19'로 별도의 명칭을 마련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영어식 이름이 긴 편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한글 표현을 별도로 정해 명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공식 명칭 발표 이후에도 WHO의 홈페이지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라는 명칭으로 소개돼 있다. [WHO 홈페이지 캡처]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공식 명칭 발표 이후에도 WHO의 홈페이지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라는 명칭으로 소개돼 있다. [WHO 홈페이지 캡처]

 
더욱이 WHO도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발표 하루가 지났지만, 홈페이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Novel coronavirus(2019-nCoV))이라는 과거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WHO 명칭 권고 무용지물?  

이에 따라 WHO의 공식 명칭 사용 권고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신종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지 20일 이상이 지나면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 명칭 사용에 집착하거나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소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이날 "미국 애리조나주 템페에 본사를 둔 오디오 케이블 제조사의 이름이 '코비드'"라며 "이 업체는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러나 전문가들은 편견 없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스이스턴대학의 공중보건법 전문가 웬디 파멧 교수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이름을 전염병 명칭에 넣게 되면 사람들은 마치 전염병이 특정 지역에 속한 특정 사람들의 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이럴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이를 신고하거나 보고하길 꺼려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놀드 몬토 미시건대학교 공중보건대학 역학 교수도 "질병을 명명할 때는 문화적 요소를 민감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만일 지역적 이름을 가진 질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타임지는 전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