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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지난해 희생된 고래 1960마리…혼획 줄이기 서둘러야

중앙일보 2020.02.13 00:25 종합 23면 지면보기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전 세계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고래. 오대양에는 흰긴수염고래·밍크고래·범고래·쇠돌고래·상괭이 등 100종에 가까운 고래가 있고, 국내 연안에서도 35종이 발견된다. 고래는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해양 환경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미, 2022년부터 수입 규제 추진
상괭이 보호할 장치 개발했지만
어획량 감소 우려에 보급 지연
양보·지원으로 ‘눈총’ 벗어나야

고래를 보는 한국인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관광선에 올라 어렵게 목격한 고래 떼에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래 고기를 꾸준히 먹는다. 포경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데도 울산이나 경북 포항 등지의 음식점·시장에는 고래 고기가 팔린다. 바로 혼획(混獲, bycatch) 때문이다. 울진해양경찰서 관계자는 “바다에 설치하거나 던져놓은 그물·로프에 걸려 죽은 고래, 즉 혼획된 고래는 보호종이 아니면 해양경찰에서 작살 사용 등 불법 포획 여부에 대한 조사를 거쳐 경매에 부치고, 고래 고기를 유통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혼획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연안에서 혼획된 고래는 모두 1960마리다. 작은 토종 고래, 웃는 고래로 알려진 상괭이가 1430마리로 대부분이지만, 돌고래 374마리, 낫돌고래 71마리, 밍크고래 63마리도 있다.
 
지난해 전국 해양경찰서 중에서 서해 태안해경에 신고된 혼획이 1236마리(전체의 63%)로 가장 많았다. 태안해경 관계자는 “혼획된 고래 대부분이 상괭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괭이는 2005년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서 개체 수가 3만5000마리에 이르렀으나 2011년에는 1만3000여 마리로 급감했다.
 
지난해 6월 경북 포항시 죽도 수협위판장에서 수협 중매인들이 위판을 앞두고 혼획된 밍크고래의 선도를 확인하고 있다. 길이 5m, 둘레 2.55m인 이 밍크고래는 정치망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으며, 수협을 통해 3867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전국 연안에서는 모두 1960마리의 고래가 혼획됐다. [뉴스1]

지난해 6월 경북 포항시 죽도 수협위판장에서 수협 중매인들이 위판을 앞두고 혼획된 밍크고래의 선도를 확인하고 있다. 길이 5m, 둘레 2.55m인 이 밍크고래는 정치망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으며, 수협을 통해 3867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전국 연안에서는 모두 1960마리의 고래가 혼획됐다. [뉴스1]

상괭이 등 보호 대상 10종의 사체는 유통이 금지됐지만, 보호종이 아닌 밍크고래는 1억 원에도 팔린다. 어민 중에서는 “그물을 훼손하고,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골칫거리인데, 혼획 방지에 힘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해양수산부나 해경, 지방자치단체도 방치해왔다. 환경·동물보호단체에서는 외국보다 한국의 혼획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인들도 “고래잡이를 허용한다고 일본을 비판하지만, 일본에서는 혼획이 1년에 100여 건이고, 포경까지 합쳐도 한국에서 혼획되는 숫자에 훨씬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고래 고기 유통을 허용하는 혼획이 불법 포획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산과학원은 혼획된 고래에서 채취한 DNA의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둔다. DNA DB에 없는 고래 고기를 유통하다 적발되면 처벌하지만, 불법 포획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에도 4건이 적발돼 36명이 붙잡혔다.
 
혼획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17년 개정된 미국의 ‘해양 포유류보호법’에 따라 해양 포유류의 사망 또는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어업 기술로 포획한 수산물·수산가공품은 2022년 1월부터 미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된다. 연간 3000억 원의 손실이 우려된다.
 
고래

고래

고래 보호 운동을 하는 핫핑크 돌핀스의 조약골 대표는 “미국 기준을 적용하면, 상괭이 혼획은 연간 10마리, 밍크고래는 1~2마리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래 종류별 개체 수와 자연 사망률을 고려해, 자연 사망 숫자의 10% 이내로 혼획을 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수출 규제가 이뤄지더라도 국내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혼획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어구 개발과 보급, 어민에 대한 교육 강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 서해연구소 측은 “2017년부터 상괭이 탈출 장치 개발에 들어가 이제 거의 완료했다”며 “그물 내에 유도망과 탈출구를 경사지게 설치해 해양 포유류는 빠져나갈 수 있게 하고 물고기는 자루그물 끝에 모여 잡아들이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어민들은 방지 장치를 달 경우 어획량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한다. 실제로 어획량이 5%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게 수산과학원의 연구 결과다. 이와 관련해 수산과학원은 ‘갈등 조정 협의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상괭이 외에 다른 고래의 혼획을 막을 방법도 개발은 돼 있다. 발광 다이오드(LED) 전구나 고래가 싫어하는 음파를 발신하는 장치를 그물에 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정부가 혼획을 줄일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고, 해양 포유류 보호법도 제정해야 한다”며 “고래 35종 모두를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혼획 상한선(쿼터)을 정해 그 이상에 대해서는 경매를 불허하고, 상한선도 매년 낮춰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고래가 자주 다니는 해역에서, 또 고래가 회유하는 봄·가을에 고래 사체를 발견·신고할 경우에는 약간의 보상금만 지급하고 경매는 불허하는 식으로 혼획을 억제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제 사회의 뜨거운 눈총을 고려한다면 2000마리씩 죽이는 혼획을 더는 방치할 수는 없다. 어민의 양보, 그리고 정부의 꼼꼼한 지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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