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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⑦ 절명시(絶命詩)

중앙일보 2020.02.13 00:09 종합 27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절명시(絶命詩)
-성삼문 (1418-1456)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 청구영언


충신이란 무엇인가?
 
성삼문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音韻)을 배워오고, 명의 사신을 따라가서 음운을 연구했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아버지 성승과 이개, 하위지, 유응부, 박팽년, 유성원 등과 함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낙형(烙刑·달군 인두로 살을 지짐)을 당한 뒤에 거열형(車裂刑·사지를 찢어 죽임)된 시신은 각지에 나뉘어졌다. 그의 남계(男系) 친족은 젖먹이까지 모두 죽여 멸문되었고, 여자들은 계유정난 공신들에게 종으로 주어졌다. 당시 출가해 살아남은 여식의 후손에 의해 외손봉사(外孫奉祀)되었다.
 
이 시조는 집현전에서 세종의 사랑을 받을 때 부른 노래(唱)란 설도 있다. 날씨도 더웠던 음력 6월, 처형장으로 향하며 읊었다는 한시 한 수가 전한다.
 
擊鼓催人命(북을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는데)
回首日欲死(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는 지려 하는구나)
黃泉無一店(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오늘 밤은 어느 집에서 묵어갈까)
 
사육신 가운데 기적적으로 대를 이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순천박씨 충정공파이다.
 
유자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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