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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5위 굴욕…4년 전 중도포기 젭 부시 전철 밟나

중앙일보 2020.02.13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1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에서 유세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1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에서 유세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위기에 몰렸다. 11일(현지시간) 치러진 민주당의 2차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을 앞서며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의 패배를 설욕했다. 두 사람이 선두 다툼을 벌이는 사이 바이든은 득표율 5위로 밀렸다. 샌더스 25.8%, 부티지지 24.5%에 이어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19.8%,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9.3%였다. 바이든은 그 다음인 8.4%로, 아이오와 코커스의 4위에서 한 계단 미끄러졌다.

미국 민주당 뉴햄프셔 경선 샌더스 1위
역대 최저 25.8% 득표, 부티지지 24.5%
바이든, 개표 전 다음 경선지로 떠나
“1·2차 백인만 투표” 흑인에 러브콜
미 언론 “바이든 폭망” 재기 부정적

 
뉴햄프셔 경선의 최대 사건은 바이든이 5위 추락을 예상한 듯 예정됐던 개표 관전 행사(프라이머리 나이트)에 불참하고 4차 경선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떠난 일이었다. 대신 여동생 발레리에게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라고 넘겼다.

 
바이든은 11일 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주도 컬럼비아에서 유세 시작 파티를 열고 “(현재까지) 2개 주만 투표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가장 헌신적인 민주당 유권자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빠르게 성장하는 라틴계 공동체로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아이오와·뉴햄프셔는 백인이 주류여서) 아프리카계 유권자의 99.9%가 투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라고도 했다. 40만명에 달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흑인 표심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뉴햄프셔 경선 결과

뉴햄프셔 경선 결과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패배할 경우 선거를 포기할 거냐”는 취재진의 질문엔 “(1992년) 빌 클린턴은 초반 아홉 군데 경선에서 모두 지고 아이오와 한 군데에서만 이기고도 결국 후보로 지명됐다”고 방어막을 쳤다. 하지만 바이든은 4년 전 공화당 경선 때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방불케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당초 미국 보수 진영의 정치 명문가인 부시 집안에서 아버지와 형에 이어 세 번째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부시였지만 1차 아이오와, 2차 뉴햄프셔 경선에서 참패한 뒤 결국 2016년 2월 경선 레이스를 포기했다.  
 
바이든은 당초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국정을 분담하며 얻은 오바마의 후광과, 광범위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민주당 후보들 중 선두 그룹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초반 승부처인 아이오와, 뉴햄프셔 경선에서 잇따라 밀리며 ‘부시 전철’을 밟을 상황에 몰렸다.

 
폭스뉴스는 바이든이 1·2차 경선에서 각각 4위와 5위로 추락한 것을 놓고 “바이든의 폭망”으로 표현했다. CNN도 “바이든이 뉴햄프셔 지지자를 바람 맞히고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도망쳤다”고 평했다.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재기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민주당의 뉴햄프셔 경선에선 선두를 차지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AFP=연합뉴스]

이날 민주당의 뉴햄프셔 경선에선 선두를 차지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AFP=연합뉴스]

뉴햄프셔에서 선두로 나선 샌더스는 이날 승리 연설에서 “이곳에서의 승리는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오늘 밤의 승리, 아이오와 일반 투표 승리와 함께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갈 것이고 우리는 이들 주에서도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는 또 “나는 억만장자와 억만장자의 돈을 받는 후보들과 싸우는 사람”이라며 2위 부티지지 공격을 빼놓지 않았다.

 
샌더스는 선두로 나섰지만 25.8% 득표율은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4년 전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22%포인트 이상 많은 60.1%로 압승한 것과 비교해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민주당 역대 뉴햄프셔 경선 승자 가운데 종전 기록인 1976년 지미 카터(29%)보다 낮은 역대 최저 득표율이다. 샌더스는 전체 24명의 뉴햄프셔 대의원도 부티지지와 9명씩 동수를 확보했다. 클로버샤가 나머지 6명을 가졌다. 나머지는 후보는 유효 득표율 15% 미달로 대의원 배분에서 제외됐다.

 
피트 부티지지 전 시장은 박빙 2위로 샌더스를 뒤쫓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피트 부티지지 전 시장은 박빙 2위로 샌더스를 뒤쫓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부티지지는 샌더스를 정조준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혁명이냐, 현상 유지냐는 식의 양극화된 비전 속에서 설 자리가 없다”며 “나를 따르든, 아니면 떠나라는 식의 정치는 트럼프가 재선하는 길”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란 꼬리표뿐 아니라 접근법 때문에 본선에서 트럼프를 이기기 매우 어렵다 했다”고 말했다.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 이념과 급진적 정책을 문제 삼은 것이다.

 
샌더스-부티지지 2강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바이든 몰락의 최대 수혜자는 두 사람이 아닌 의외의 인사다. 77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다. 초반 경선을 건너뛴 블룸버그는 전날 공개된 퀴니팩대학 전국 여론조사에서 샌더스(25%)와 바이든(17%)에 이어 15%의 지지율을 얻어 3위로 부상했다. 부티지지는 10%로 워런(14%)에 이은 5위였다.

 
더힐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23%)-샌더스(20%)-블룸버그(16%) 순으로 3강 구도를 형성했다. 부티지지는 초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는 동성애자 대통령 후보인 데다 소도시 시장 경력밖에 없다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맨체스터 웹스터초등학교 투표소에서 만난 부티지지 지지자 도넬리 보일런은 “많은 사람이 워싱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고 그게 아웃사이더인 피트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반박했다.

 
맨체스터(뉴햄프셔)=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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