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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패러디한 BJH 티셔츠…배급사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중앙일보 2020.02.13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북미 배급사 네온이 아카데미 수상 이후 공식 트위터에 리트윗한 봉준호 초상화. ‘기생충’의 미국 포스터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그렉 러스가 ‘봉의 역사적인 밤(Bong’s historic night)’을 축하하며 공개한 것이다. [네온 트위터 캡처]

북미 배급사 네온이 아카데미 수상 이후 공식 트위터에 리트윗한 봉준호 초상화. ‘기생충’의 미국 포스터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그렉 러스가 ‘봉의 역사적인 밤(Bong’s historic night)’을 축하하며 공개한 것이다. [네온 트위터 캡처]

“하룻밤에 4개의 오스카(아카데미상의 애칭)를 탄 사람은 1954년 월트 디즈니 이후 처음이다.”
 

할리우드 골리앗 제친 ‘기생충’ 전략
오스카 수상 뒤엔 북미 배급사 네온
‘괴물’로 봉준호 덕후 된 톰 퀸 대표
극장 3곳 먼저 올려 매진, 관심 증폭
제시카송 등 미국 젊은층 파고들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9일(현지 시간), 북미 배급사 네온은 트위터에 쏟아진 이런 감탄들을 발 빠르게 공유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기생충’의 기네스 등극 소식도 흥분하며 전했다. 이날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 역대 최다 아카데미 수상 공동기록 보유자로 세계기네스협회에 인증됐다. 1984년 스웨덴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 2001년 대만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함께다. 비영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것도 아카데미 92년 역사에서 ‘기생충’이 처음이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시상식 이튿날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 4위에 올랐다. 10일 하루 동안 50만1222달러(약 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날보다 15.6%, 전주보다 213.3% 늘어난 액수다. 지금까지 북미 수입은 약 3600만 달러(약 424억원) 수준이지만 이번 주말 상영관 수가 현재 1060개에서 2배 이상 확대될 예정이라 최종 매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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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이런 쾌거에는 배급사 네온의 영리한 홍보 전략이 한몫했다. 시상식 직후 LA타임스는 “뉴욕 인디 영화의 선두주자 네온은 이번 작품상 부문에서 골리앗들 틈의 다윗이었다”며 “2년 반 전 설립된 직원 28명 규모의 이 배급사는 소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유니버설 픽쳐스의 ‘1917’, 넷플릭스의 ‘아이리시맨’ 등 자본이 넉넉한 거인들을 쳐부쉈다”고 보도했다.
  
① 매진 이끈 초소규모 개봉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이 특별 제작한 ‘봉준호, 하나의 장르’ 포스터. ‘기생충’부터 전작들의 이미지를 담았다. [네온 트위터 캡처]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이 특별 제작한 ‘봉준호, 하나의 장르’ 포스터. ‘기생충’부터 전작들의 이미지를 담았다. [네온 트위터 캡처]

2018년 10월 미국필름마켓(AFM)에서 ‘기생충’의 미국 배급권을 따낸 네온은 2019년 5월 칸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부터 오스카를 노렸다. “죽으려면 무턱대고 대규모 개봉하라. 그 즉시 마케팅에 수백만 달러를 써야 한다”는 게 톰 퀸 네온 대표의 지론. 그는 인디 영화의 제한적 배급 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인디 배급 업계 오랜 베테랑인 퀸 대표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2017년 네온을 팀 리그와 공동 창립한 바로 그해 그는 ‘아이, 토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배출했다. 2월 시상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봉하려는 여느 경쟁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캠페인 시즌 초반인 10월을 택해 주목도를 높였다. 황금종려상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다. 또 뉴욕과 LA 단 3개 극장에 개봉한 전략은 매진사례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작품상 부문에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를 후보에 올린 넷플릭스가 오스카 캠페인에만 60여 명 전담팀과 천문학적 홍보비를 쓴 데 비해 네온은 규모로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다. NYT는 “네온은 대형 스튜디오들과 달리 언론에 문을 활짝 열어젖혀 취재진까지 ‘기생충’의 전도사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② 놀이같은 SNS 홍보
 
네온이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한 방탄소년단(BTS) 패러디 봉준호(BJH) 티셔츠. [네온 트위터 캡처]

네온이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한 방탄소년단(BTS) 패러디 봉준호(BJH) 티셔츠. [네온 트위터 캡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용법도 탁월했다. 시상식 등 공식행사 때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모습을 미공개 사진까지 공들여 공개했다. 방탄소년단(BTS) 로고를 패러디한 봉준호(BJH) 티셔츠, ‘제시카송’, 봉 감독의 팬덤 ‘봉하이브(#BongHive)’ 소식 등도 재기발랄하게 전했다.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는 이런 전략이 “Z세대, 밀레니얼 등 젊은 관객층을 사로잡았다”며 “아카데미 후보작이 통상 높은 연령층에 지지받는 것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 기사에서 퀸 대표는 “‘기생충’은 외국영화를 본 적 없는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생충’을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③ 봉준호가 브랜드다
 
최근엔 ‘봉준호가 하나의 장르(@genreofone)’란 슬로건을 내세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괴물’ ‘마더’ ‘옥자’ 등 전작들의 아트 포스터와 함께 각 영화 관련 스토리텔링도 풀어냈다. ‘기생충’의 배급사가 아니라 봉준호란 브랜드를 관리하는 할리우드 에이전시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전략의 배경엔 봉 감독에 대한 퀸 대표의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는 해외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14살까지 유럽에서 살았다. 대학시절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며 벨기에 컬트 범죄 코미디 ‘개를 문 사나이’(1992) 등 개성 강한 영화에 심취했던 그가 봉 감독에게 끌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06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처음 본 ‘괴물’에 매료된 이후 와인스타인컴퍼니 산하 인디 배급사 등을 거치며 봉 감독의 장편영화 7편 중 5편을 북미에 소개했다.  
 
"‘기생충’ 대본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봉 감독의 최고 성취가 될 거란 사실에 사로잡혔다”는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 날 미국 잡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어젯밤에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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