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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존중과 신뢰없이 ‘돈’의 잣대 들이대는 K리그

중앙일보 2020.02.13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2009년 이후 10년 만에 K리그 복귀를 추진했던 기성용은 해외리그 이적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지난해 6월 프로축구 광주FC와 부천FC 경기를 관전하는 기성용. [뉴시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K리그 복귀를 추진했던 기성용은 해외리그 이적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지난해 6월 프로축구 광주FC와 부천FC 경기를 관전하는 기성용. [뉴시스]

“유럽에 갈 때마다 (기)성용이를 만나서 축구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현지 생활이나 프리미어리그 얘기를 듣고 싶은데, 성용이와 대화 주제는 거의 K리그와 (친정 팀인) FC서울이었죠. 경기 결과와 순위를 넘어 K리그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고 있더군요. 유럽에서 뛰는 게 맞나 싶었죠.” 기성용(31)과 형제처럼 지내는 한 지인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2009년 유럽에 진출한 이후에도 서울에 대한 성용이의 로열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K리그로 돌아가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고 버릇처럼 얘기했으니까요.”
 

상처받고 국내복귀 포기 기성용
길들이기성 연락에 상심과 분노
훗날 K리그서 볼수 있기를 기대

그런 기성용이 10년 만의 K리그 복귀를 포기했다. 11일 에이전트를 통해 “(최근 이적설이 나온) FC서울, 전북 현대 양 구단과 협상을 종료했다. 선의로 타진한 K리그 복귀 노력이 오히려 리그 전체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거취와 관련해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돈’ 얘기에 쏠렸다. “K리그 최고 대우(연봉 16억원·추정)를 원한다”는 기성용 에이전트의 요구와 서울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연봉 8억원 등 협상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중앙 미드필더를 찾던 K리그 ‘큰 손’ 전북은 “최고 대우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성용과 서울의 과거 계약에 따라 생기는 위약금(26억원·추정)에 부담을 느껴 협상이 중단됐다고 한다.
 
정말 문제는 ‘돈’이었을까. 기성용이 K리그 복귀의 뜻을 접은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성용의 최측근 인사는 “연봉이나 위약금 등 금전적인 부분은 에이전트와 구단 사이 이슈였을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K리그 컴백 의사를 전달한 후 친정 팀 서울의 반응을 확인한 뒤 성용이가 크게 낙담했다. 그 이후에는 협상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협상 초기 서울 구단의 주요 인사가 성용이에게 연락해 다분히 ‘길들이기’ 의도의 이야기를 쏟아낸 것으로 안다. 그 대화 직후 성용이는 ‘내가 왜 K리그에 돌아가려 했는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당사자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다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기성용은 11일 인스타그램에 “거짓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나는 진실로 당신에게 상처 줄 수 있다(Hurt me with a lie and I can hurt you with the truth). 나를 농락하지 말라. 내가 맞대응하면 당신도 불편할 것(Stop playing with me U ain’t gonna like when I play back)”이라고 썼다. 문장에서 기성용의 상실감과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다.
 
기성용의 K리그 컴백 무산은 신뢰·존중은 제쳐놓고 경제 논리부터 들이대는 축구계의 현실이 낳은 결과다. 그 누구도 “돌아와 봉사하고 싶다”는 선수 마음은 헤아리지 않았다. 연봉과 계약 기간 등 ‘숫자’만 생각했다. 기성용이 ‘숫자’를 생각했다면 애당초 K리그 컴백 자체가 난센스다.
 
기성용은 메이저리그 사커(MLS) 등 해외리그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이미 몇몇 팀이 ‘아시아의 베컴’으로 불리는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유럽축구 이적 전문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는 최근 자유계약선수(FA)를 따로 모아 소개하면서 그를 전체 2위로 평가했다. 시장가치를 405만 파운드(62억원)로 추산했다. 서른 줄에 갓 접어든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수다.
 
기성용 마음의 상처가 언제 아물지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쯤 K리그의 문을 다시 두드리기를 당부한다. 그때는 부디 K리그도 존중과 신뢰로 선수를 바라보기 바란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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