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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였나…클림트 도난당한 미술관 관장 일기장에는

중앙일보 2020.02.12 20:41
갤러리에서 사라졌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왼쪽)이 22년 만에 갤러리 외벽 속 공간에서 발견됐다. [AP=연합뉴스]

갤러리에서 사라졌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왼쪽)이 22년 만에 갤러리 외벽 속 공간에서 발견됐다. [A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화’ 도난 미스터리에 미술관이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피아첸차의 리치 오디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줄로만 알았던 이 그림은 지난해 12월 이 미술관 외벽 구멍에서 23년 만에 발견됐다. 
 
그림이 발견된 뒤 두 명의 남성이 나타나 “우리가 23년 전 그림을 훔쳤다가 수년 전에 다시 돌려줬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그림이 왜 미술관 외벽 내에 감춰져 있었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았다. 
 

전 미술관 관장 일기장엔 “쇼 계획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은 이탈리아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미술관 전 관장인 스테파노 푸가차의 아내 로셀라 티아디나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가차 전 관장은 1997년 2월 클림트의 작품이 도난당했을 때 미술관 관리직을 맡았다. 매체는 이탈리아 검찰이 2009년 숨진 푸가차 전 관장을 대신해 그의 아내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에서 사라졌다 23년 만에 발견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AP=연합뉴스]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에서 사라졌다 23년 만에 발견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AP=연합뉴스]

 
이탈리아 검찰은 푸가차 전 관장의 일기를 근거로 이번 사건과 그를 연결시켰다. 그의 일기는 지난 2016년 12월 BBC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일기에는 1997년 ‘클림트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 성공을 위해 일종의 ‘쇼’를 계획했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적혔다.
 
푸가차 전 관장은 “이번 전시회가 전례없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 약간의 ‘악명’을 부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클림트 그림을 도난당했다가 ‘쇼’가 시작되기 전에 다시 나타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썼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지금 ‘그 여인’은 영원히 사라졌다. 내가 그런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푸가차 전 관장이 지목한 ‘그 여인’은 클림트의 그림 ‘여인의 초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23년 전 훔쳤지만 4년 전 돌려줬다는 도둑들  

이탈리아 검찰은 그림이 발견되고, 절도범이라고 자백한 이들이 등장한만큼 푸가차 전 관장의 일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97년 그림을 훔쳤지만 4년 전 “피아첸차 도시에 대한 선물로 그림을 돌려줬다”는 절도범들의 자백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절도범들의 변호인에 따르면 이들은 ‘이 그림이 보관돼 있었던 곳’이라며 어느 자택 주소를 경찰에 넘겼다. 다만 이 변호인은 “그 후(이들이 그림을 돌려준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했다.
클림트 그림이 발견된 미술관 외벽 구멍. [AP=연합뉴스]

클림트 그림이 발견된 미술관 외벽 구멍. [AP=연합뉴스]

 
오랜 시간 이 사건을 추적해온 피아첸차 지역의 에르마노 마리아나 기자도 “절도범들의 진술이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3년 전 절도범들을 만났다는 마리아나 기자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도난 이후 그림이 내내 건물 외벽 구멍에 있었다면 아마도 손상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정말 미스터리”라면서 “푸가차의 아내가 절도와 관련된 뭔가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푸가차가 범행에 연루돼 있다면 그의 아내 집에 도난품(여인의 초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누가 왜 숨겼나…미스터리 풀릴까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화’ 도난 미스터리는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줄 알았던 그림이 23년 만에 미술관 외벽 속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사건 당시 미술관 내 침입 흔적이 전혀 없어 경찰은 그림과 범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경찰은 범인이 미술관 천장에서 낚싯줄을 이용해 그림을 끌어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범인은 당시 액자를 미술관 지붕에 남겨둔 채 그림만 빼 사라졌다.
 
경찰이 찾지 못한 그림은 지난해 12월 미술관 정원사가 담쟁이덩굴을 정리하던 중 외벽 안쪽에서 발견했다. 그림은 검은 쓰레기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미술관 측은 이 그림이 1997년 2월 사라진 클림트의 작품이라고 봤고, 감정을 통해 진품이라고 확인됐다.
 
이탈리아 미술작품 복원가인 안나 셀레리가 도난 23년만에 되찾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을 설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 미술작품 복원가인 안나 셀레리가 도난 23년만에 되찾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을 설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림은 회수됐지만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아 갖은 추측이 쏟아졌다. 그러던 중 지난달 21일 절도범이라고 자백한 두 남성이 나타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23년 전 그림을 훔친 것 맞지만 4년 전 이미 그림을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절도범들이 등장한 시점이 그림이 발견된 직후라는 점에서 작품 가치를 높이려는 미술관 내부 관계자의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그림은 클림트가 1916∼1918년 완성한 여러 여인 초상화 중 하나로 갈색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술계는 시가로 6000만∼1억 유로(약 773억∼1288억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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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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