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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40여일 미국투어…곽신애가 꼽은 최고 순간 5

중앙일보 2020.02.12 17:50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와 봉준호 감독(앞쪽부터). '기생충'으로 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한국영화뿐 아니라 아카데미 새 역사를 썼다. [로이터=연합]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와 봉준호 감독(앞쪽부터). '기생충'으로 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한국영화뿐 아니라 아카데미 새 역사를 썼다. [로이터=연합]

“비행기를 탔습니다. 생애 최장 해외출장, 최대 캐리어 크기, 경험해본 적 없는 일정들…. 잘 다녀오겠습니다.”

 
지난달 2일 영화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51)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이날 시작된 그의 여정은 아카데미 4관왕의 새 역사를 쓰며 마무리됐다. 12일 오전 송강호ㆍ조여정 등 ‘기생충’ 출연ㆍ제작진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금의환향한 그가 중앙일보에 40일간의 미국투어 중 가장 잊지 못할 다섯 순간을 꼽아줬다. 그 순간들의 생생한 흥분과 감동을 곽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재구성했다.

한국영화 첫 아카데미 4관왕까지
40일간 미국투어 결정적 순간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기생충'이 4개 부문에서 받은 6개 트로피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기생충'이 4개 부문에서 받은 6개 트로피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한편, 이날 귀국 현장에서 배우 송강호는 “여러분의 끊임없는 성원과 응원이 있어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도 좋은 한국영화를 통해 한국의 뛰어난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다음 주 중 귀국해 오는 19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정리=나원정ㆍ민경원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1월 3일(현지시간), 첫 파티서 ‘성덕’ 되다

오늘은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주최하는 AFI 시상식에 참석했다. 미국 출장 와서 참여한 첫 행사다. 지난 한 해 최고의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각 10편씩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미국에서 제작한 작품이 대상인 시상식인데 ‘기생충’은 특별상을 받았다. 비영어 영화가 특별상을 받은 건 ‘아티스트’(프랑스) ‘로마’(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란다. 우리 영화의 위상을 느꼈다. 
 
"송강호 팬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 3일(현지시간) '기생충' 미국 배급사인 네온은 자사 트위터 계정에 이런 멘트와 함께 사진을 게시했다. [연합뉴스]

"송강호 팬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 3일(현지시간) '기생충' 미국 배급사인 네온은 자사 트위터 계정에 이런 멘트와 함께 사진을 게시했다. [연합뉴스]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 배우 팬이라며 테이블로 찾아왔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내 눈앞에 있다니! 영화 ‘판의 미로’ ‘찐팬(진짜 팬)’인 내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사진을 찍다니! 이정도면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1월 5일, 골든글로브상 진짜 받다니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유력하다고 듣긴 했는데 진짜 받다니! 한국영화 최초 수상이라 더욱 뜻깊다. 생방송 되는 북미 시상식 첫 경험이었다. 
 
지난달 5일(현지 시간)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기생충' 팀의 기념 사진.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5일(현지 시간)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기생충' 팀의 기념 사진.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다음 날, LA를 뒤로 하고 뉴욕에 갔다. 뉴욕은 2010년 9월에 처음 와보고 10년 만의 방문이다. 뭔가 반갑고 뭉클하다. 
 
그즈음 ‘영화를 몇 년이나 더 직업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상태였다가 어찌어찌 바른손 입사를 확정하고 새 출발 전 큰맘 먹고 10일간 나 홀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1995년 영화 잡지 ‘키노’ 기자로 시작해 홍보대행사 바른생활, 제작사 청년필름ㆍ신씨네 등을 거치며 이미 적잖은 시간이 흐른 때였다.
 
이후 나름 열심히 치열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10년이 흘렀다. 다행히 여전히 영화를 하고 있고 여기 이렇게 출장을 와 있다. 감사한 일이다.(곽 대표의 오빠는 ‘친구’의 곽경택 감독, 남편은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다.)
 

#1월 11일, 내 사랑 LA랑 오늘부터 '1일'

LA비평가협회 시상식이 남우조연상(송강호)‧감독상‧작품상을 거침없이 몰아줬다. 송 배우(송강호) 수상 멘트 때 가장 빅 웃음이 터졌다. 송 배우는 “20년 전 봉준호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티모시 샬라메처럼 날씬했는데 지금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님 같다”고 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어 “미국 관객들은 제가 잘생긴 배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국에선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한다. 다들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한다”며 “모든 한국 배우가 나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송강호) 3관왕을 차지한 LA비평가협회에서 촬영한 시상식 책자. 표지에 '기생충'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페이스북 캡처]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송강호) 3관왕을 차지한 LA비평가협회에서 촬영한 시상식 책자. 표지에 '기생충'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페이스북 캡처]

이날 시상식에서는 우리 테이블이 가장 앞, 중앙에 배치된 것도 모자라 공식 팸플릿 표지도 우리 영화였다. 애정이 팍팍 느껴진 나머지 나도 수상 소감에 “오늘부터 LA를 사랑하기로, 오늘부터 1일!”이라 말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프랑스 영화) 셀린 시아마 감독이 “‘기생충’은 외국어영화상 말고, 다른 상도 받아야 한다. 오스카도 타야 한다”며 “네가 여자 프로듀서여서 자랑스럽다”고 막 흥분된 어조로 축하와 격려를 해줬다.  
 

#1월 19일, 배우들 '케미'에 기립박수 뭉클

세상에! 맙소사! 우리 배우들이 미국배우조합(SAG) 앙상블 캐스트상을 받았다! 비영어 영화 최초!   
말 그대로 배우 간 ‘케미(호흡)’가 좋아야 주는 상이다. 모처럼 우리 배우들이 5명이나 참석했다. 이선균ㆍ최우식ㆍ박소담ㆍ이정은 배우가 와주니 봉 감독님과 송 배우님도 든든해 보였다.  
 
‘기생충’이 불리자 우리 테이블에선 절반이 펑펑 울고, 봉 감독과 나는 두 팔 들고 소리소리 지르고. 어떻게 이런 일이 다 벌어지는지. 모두 너무너무 자랑스럽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배우조합 시상식에서 비영어 영화 최초 앙상블상을 거머쥔 '기생충' 배우들. 인터뷰 중인 모습을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배우조합 시상식에서 비영어 영화 최초 앙상블상을 거머쥔 '기생충' 배우들. 인터뷰 중인 모습을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후보에 오른 5편 중 1편으로 우리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는데 객석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더니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팀에 투표한 배우가 많았던 것 아닐까. 좋고 축하하는 마음에 자동 기립한 게 아닐까.  
 
시상식 시즌 동안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주목 못 받아 아쉬웠던 마음이 일거에 해소됐다. 기립박수와 환호도 너무 뭉클. 오스카 레이스의 어떤 계기가 된 느낌이다.  
 

#2월 9일, 생애 가장 '빡센' 1주일 완주!

곽신애 대표와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LA=뉴스1]

곽신애 대표와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 참석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LA=뉴스1]

오스카 작품상(봉준호‧곽신애)을 받았다. 감독상(봉준호)‧각본상(봉준호‧한진원)‧국제영화상까지 4개 부문, 트로피가 6개다. 지난달 후보 오찬 행사 후에 ‘후보 증명서’ 받은 게 엊그제 같다. 그때 통역 성재씨(샤론 최)가 “아시아 여성 중 유일한 후보셔요” 해서 뭔가 벅찬 기분이었는데!  
 
너무 기쁘다. 수상 소감에서 밝힌 대로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그리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기분”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용기 있는 결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작품상은 본디 영화 크레딧에 올린 모든 분에게 주는 상이 아니던가. 막판엔 시차 부적응과 체력 고갈로 생애 가장 '빡센' 1주일을 보냈지만 ‘즐겁게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이룬 셈이다.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에 호명된 순간 무대에 오른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 왼쪽 아래 곽신애 대표가 시상자 제인 폰다에게 받은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AFP=연합]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에 호명된 순간 무대에 오른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 왼쪽 아래 곽신애 대표가 시상자 제인 폰다에게 받은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AFP=연합]

 
참, 혹시라도 작품상을 받게 되면 다음 순서로 CJ 이미경 부회장님 소감을 듣기로 우리 팀끼리 미리 정해둔 터였다. 생방송이라 언제 커트 될지 몰라 짧게 하고 넘기기로. 감독님은 이미 세 차례 수상으로 소감 소진 상태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 스태프, 바른손, CJ, 네온 등등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경사 속에 실제 내용을 잘 모르는 외부 시선이나 평가로 인해, 우리 팀 누구도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장장 6개월에 걸친 오스카 레이스에 가장 먼저 뛰어든 봉 감독을 비롯해 함께해준 모든 분께 감사를 표한다.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기생충'으로 받은 작품상 트로피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기생충'으로 받은 작품상 트로피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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