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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친구 돕던 착한 취준생의 극단선택 "보이스피싱에 속아"

중앙일보 2020.02.12 11:45
보이스피싱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보이스피싱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서울지검 검사와 수사관이라고 사칭한 남성들에게 속아 수백만원을 뜯긴 20대 취업 준비생이 뒤늦게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속은 것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우리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숨진 취준생은 대학 시절 희소병을 앓던 친구를 극진히 도와 학보사와 방송에서 미담 주인공으로 다룬 것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전북 순창 사는 20대, 모르는 전화 받아
검사·수사관 요구에 은행서 420만원 찾아
"전화꺼지면 체포" 협박에 11시간 통화
서울서 돈 넘겨…사기 깨닫고 극단 선택
유족 "착한 아들 죽음 내몰아" 수사 의뢰

전북 순창경찰서는 12일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그를 속이고 수백만원을 빼돌린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용의자가 특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순창에 사는 김모(28)씨는 지난달 20일 집을 나서면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담당 검사가 누군지 아셔야 하니까 제 소개 잠깐 할게요. 여기는 서울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 팀장을 맡은 김민수 검사예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남성은 "당신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돼 일단 돈을 찾아야 한다. 수사가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김씨를 속였다. 김씨는 수사관이라는 또 다른 남성과 번갈아 가며 통화했다.
 
대구경찰청이 운영하는 '치안 1번가'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 간접체험 서비스. [사진 대구경찰청]

대구경찰청이 운영하는 '치안 1번가'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 간접체험 서비스. [사진 대구경찰청]

이들은 e메일을 통해 조작된 검찰 출입증과 명함까지 찍은 사진을 보내 김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전화는 끊지 못하게 했다. "본인 전화 꺼지면 바로 수배되고 체포영장 나가면 2년 이하 징역 처벌을 받는다" "지금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 몇 프로예요? 충전하시면서 조사받으세요"라고 협박했다. 또 "3일 동안 조사를 받으셔야 하므로 간단한 세면도구 챙겨오셔야겠죠. 본인의 혐의점이 발견된다면 구속된 상태에서 최대 법정 9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는다)"고 했다.
 
겁을 먹은 김씨는 결국 정읍의 한 은행에서 현금 420만원을 찾았다. 사기단은 인출한 액수가 맞는지 인증 사진도 요구했다. 김씨는 KTX를 타고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돈을 가져다 놓았다. 이 과정에서 "지금 주변에 제3자 소리가 왜 계속 들려요? 자, 준비됐어요? 질문 사항 있어요? 입장할게요. 자, 입장하시고 걸어가세요. 자연스럽게…"라는 사기단 지시를 따랐다.
 
김씨는 이들이 시키는 대로 인근 카페에서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사기단은 김씨의 돈을 챙겨 달아났다. 김씨가 이들과 통화한 시간은 무려 11시간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더는 김씨 전화를 받지 않았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김씨는 혼자서 괴로워하다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2018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자료: 금감원]

2018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자료: 금감원]

김씨 부모는 "아들이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누구보다 착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기단을 하루빨리 잡아줄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당초 단순 변사 사건으로만 알았던 경찰은 장례식 이후 김씨 휴대전화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정황을 발견한 유족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숨진 김씨는 대학 시절 희소병인 '샤르코 마리 투스병'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친구를 돕던 미담의 주인공으로 확인됐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벗을 잃은 김씨 친구도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김씨 부모는 주위에 "세상이 무섭다. 다른 나라로 이민 갈까"라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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