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한 귀국 러시아인 144명, 영하 27도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중앙일보 2020.02.12 10:49
지난달 23일 중국 우한(武漢)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령을 내린 이후 세계 각국은 앞다퉈 전세기를 보내 자국민을 데려오고 있다. 한데 귀국 후 이들이 처한 환경이 천태만상으로 달라 눈길을 끈다.
 

일본은 호텔, 미국은 군 기지 수용
영국은 의료진이 임시 마련한 숙소
프랑스는 해변 낀 리조트 준비해
러시아는 시베리아 삼림 속 요양원
환자복 입혀 국민경위대가 감시 중

모델 출신인 나디는 지급된 환자복을 개조해 멋진 의상으로 만든 뒤 이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인터넷 공간에 올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모델 출신인 나디는 지급된 환자복을 개조해 멋진 의상으로 만든 뒤 이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인터넷 공간에 올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한국이 우한 교민을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등 교육 시설에 수용한 반면 일본은 호텔과 연구소, 미국은 군 기지, 영국은 의료진이 임시 마련한 숙소, 프랑스는 해변을 낀 리조트다.
 
재미있는 건 우한에서 귀국한 러시아인은 바로 영하 27도의 시베리아로 보내졌다는 점이다. 환구시보(環球時報)와 관찰자망(觀察者网) 등 중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5일 두 대의 러시아 군용기가 자국민 수송을 위해 우한에 도착했다.
 
영하 27도의 시베리아 삼림 속 요양원에 격리된 러시안 144명은 무료한 14일의 기간을 주로 인터넷 활동을 하며 보내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영하 27도의 시베리아 삼림 속 요양원에 격리된 러시안 144명은 무료한 14일의 기간을 주로 인터넷 활동을 하며 보내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우한에 거주하던 144명의 러시아인이 탑승했다. 군용기라 모두 딱딱한 의자에 마스크를 낀 채 앉았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려면 장막으로 가려 임시로 마련한 이동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우한에서 10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시베리아 서부에 위치한 도시 튜멘에서 약 30km 떨어진 삼림 속 요양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곳으로 사방엔 울타리가 쳐졌고 폐쇄회로 카메라까지 설치됐다.
 
러시아 국민경위대가 24시간 순찰을 돌았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144명 전원의 짐은 다른 곳에 맡겨졌고 옷도 모두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2인 1실 또는 3인 1실로 방을 배정받고 격리됐다.
 
시베리아 요양원에 격리됐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중국 환구망 캡처]

시베리아 요양원에 격리됐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중국 환구망 캡처]

 
이들은 방을 떠날 수 없고 다른 방의 사람과 접촉할 수 없으며 매일 의사가 와 체온과 혈중 산소함량을 체크한다. 격리 기간은 14일인데 만일 참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붙들리면 이날부터 다시 계산해서 14일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먹을 것도 부족함이 없고 시설도 지낼 만하지만 무료하다. 해서 인터넷 공간을 통한 활동이 활발하다. 먹방을 시작해 자신이 하루 세끼 먹는 걸 네티즌에게 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 중개업자는 격리된 방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하다.
 
모델 출신인 나디는 환자복을 개조해 멋진 의상으로 바꾼 뒤 이를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또 역시 모델인 폴은 플랭크 자세 등을 취하며 체형 관리에 애를 쓰는 상황을 전했다.
 
영하 27도의 시베리아 서부 삼림 속 요양원에 격리된 걸 나중에 손자들에게 무용담으로 전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영하 27도의 시베리아 서부 삼림 속 요양원에 격리된 걸 나중에 손자들에게 무용담으로 전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댄스 교사인 빅토리아 또한 매일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전하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이번 격리 생활로 인해 손녀와 손자에게 이야기해줄 무용담이 생겼다며 자랑하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온종일 인터넷에 접속해 이런저런 네티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 우한에서 나와 자국의 격리 시설에 수용된 다른 나라 사람과 연결되는 경우 또한 있다. 격리 생활이 비록 따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정부의 조치에 감사하는 입장이다.
 
러시아 또한 튜멘 주민으로부터 왜 이곳에 수용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다행인 건 우한에서 온 144명 중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