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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서 쓰레기 줍던 노인, 알고보니 재산 물려준 자식이…

중앙일보 2020.02.12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42)

 
“아니 어떤 X이 내 보물 훔쳐갔어?내놔.”
 
오래전 노인복지시설에 봉사차 방문했을 때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비닐봉지 등 쓰레기를 자신의 보물이라고 잔뜩 모아놓고, 그것의 일부가 없어졌다고 내놓으라고 악을 쓰던 어르신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개인 정보보호 등의 이유로 제3자가 개인의 신상을 알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니 그의 과거를 세세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요양보호기관의 원장에 따르면 그는 가난한 젊은 시절의 고생을 이겨내고 인생후반부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 노후에 재산을 자식에게 모두 물려준 후 자식으로부터 구박을 받은 것이 정신질환으로 발전했단다. 그런데 이런 사례를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조금 지나친 예지만 자신만 잘살겠다고 악을 쓰던 사람의 인생후반부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은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 하는 데 그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Flickr]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은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 하는 데 그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Flickr]

 
소유적 삶과 실존적 삶이 생각난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무엇을 소유하려 탐하지 않으면서 존재 자체를 기뻐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실존양식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실존양식을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나눴다. 그리고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은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하는 데, 그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 주위를 보면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가지려고 투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반면 이웃과 나누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며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본성을 훈련과 교육, 느낌을 통해 승화시킨 삶의 자세를 유지한다.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삶을 만족하는 사람은 그가 사라지면 그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반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 필요라는 측면에서 지켜나가는 사람은 소유가 사라지더라도 존재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간다.
 
“더 벌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더 물려주려면요.” 인생후반부, 이제는 직장에 얽매여 스트레스받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보람찬 일을 찾아보라고 권하는 내게 직장 후배가 한 대답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지방의 재력가 집안 맏아들로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고, 국내 최고의 기업에서 부사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그런 대답을 하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유적 삶의 대표 격이다.
 
반면에 또 한 사람이 있다. 80대 중반의 그는 오랜 기간 서울시에서 고위공직자로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강남의 땅을 제법 많이 보유하고 있다가 처분해 상당한 부를 이뤘다. 지금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지속해서 기부해 기부천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항상 밝은 표정과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사는 사회의 전형으로 존경받고 있다. 실존적 존재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삶을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라지면 그의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반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 필요라는 측면에서 지켜나가는 사람은 소유가 사라지더라도 존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나간다. [사진 Pixabay]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삶을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라지면 그의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반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 필요라는 측면에서 지켜나가는 사람은 소유가 사라지더라도 존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나간다. [사진 Pixabay]

 
어떤 삶이 바람직하다거나 더 행복한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 수 있다. 행복과 보람은 상대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후반부 진정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세계 최대의 갑부 반열에 오른 록펠러는 55세에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마지막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그의 눈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나니”라는 성경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는 데 입원 수속 창구가 시끄러워 눈을 돌리니 입원비를 내지 못하면 입원할 수 없다는 병원 측과 가난한 환자와의 승강이를 목격하게 된다. 제발 딸을 살려달라는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를 지켜본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게 했다. 물론 누가 병원비를 지불했는지는 불문에 부치고. 얼마 후 자신이 도운 환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의 기쁨을 록펠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나눔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생각을 가진 이후로 놀랍게도 내 병이 사라졌습니다.” 록펠러는 그 뒤로 98세까지 살며 기부와 봉사의 삶을 살게 된다. 후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소유지향적 삶과 존재지향적 삶의 차이. 소유적 인간과 존재적 인간, 어느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를 말해 주는 사례다. 록펠러는 그 이후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위대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당장에 자신에게 좋은 것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주위에서 소유를 위한 삶이 미친 악영향과 존재를 위한 삶이 남긴 향기로운 자취를 많이 들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자신만의 부와 명예, 지위를 위해 소유의 삶을 고집할까? 부를 차지하면 권력에 가까워지고 권력을 잡으면 부를 이어갈 수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고 이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모두 그 착각에 빠진 것이다.
 
소유적 삶을 살 것인가, 존재적 삶을 살 것인가 중 존재적 삶을 강조하는 건 에리히 프롬과 내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워드 가드너의 표현대로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빨리 가려면 홀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마사이 속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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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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