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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선심성 사업 착수되자 여기저기 “우리 쪽에 길 내라”

중앙일보 2020.02.12 00:39 종합 26면 지면보기

예타 면제가 불붙인 지자체 갈등

지난해 1월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에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을 포함하자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에 대형 환영 현수막이 걸렸다. 이 사업은 현재 노선 안을 놓고 진주와 창원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에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을 포함하자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에 대형 환영 현수막이 걸렸다. 이 사업은 현재 노선 안을 놓고 진주와 창원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가평군 가평역 삼거리 인근,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도로변. 곳곳에 “국토부는 가평군 건의 노선을 수용하라” “가평군 건의 노선 수용 불가 시 제2경춘국도 결사반대!”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본 설계 확정을 앞둔 제2경춘국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이다. 갈등의 상대는 바로 옆 지자체인 강원도 춘천시다. 제2경춘국도의 노선을 놓고 가평군과 춘천시가 맞붙고 있기 때문이다.
 

가평~춘천, 제2경춘국도 노선 알력
경남에선 고속철로 지역사회 분열
“모호한 사업 기준이 낳은 부작용”

강원도 숙원 사업인 제2경춘국도는 지난해 1월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대상이 됐다. 그러나 사업 추진이 본격화되자 인근 지방자치단체 간 이해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일은 역시 예타 면제를 받은 남부내륙고속철 사업, 충북선 고속화 사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 간 갈등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가세하며 더 증폭될 태세다. 도로·철도 같은 인프라 유치를 둘러싸고 지자체의 갈등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중앙정부가 선심 쓰듯 결정한 예타 면제가 이런 갈등에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단 거리로” vs “패싱 안된다”
 
제2경춘국도는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교통량을 분산하고 수도권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됐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JCT에서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를 4차선 자동차 전용 도로로 잇는 사업이다. 착공 목표는 2022년. 국토부(원주국토관리청)가 마련한 기본 계획안은 가평군 남쪽을 지나 북한강 상류의 남이섬과 자라섬 사이를 통과하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자연경관 및 관광자원 훼손이라는 논란에 부딪혀 현재 대안 노선을 찾고 있다.
 
갈등은 대안 노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춘천시는 기존 안의 남쪽을 지나는 안을 제시했다. 노선이 직선에 가깝고 길이도 기존 안보다 3㎞가량 짧아져 최단거리·최단시간이라는 도로 신설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가평군은 오히려 기존 안 북쪽으로 해서 가평군 읍내를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춘천시 안대로라면 46번 국도 주변과 가평읍 내에 형성된 지역 상권이 다 죽는다는 것이다. 가평읍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강원도 인제군 일대 상권이 큰 타격을 받지 않았느냐”며 “강원도와 춘천시가 역지사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평군의 절박성은 주민들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열린 가평군민 궐기대회에서는 삭발식 및 상여 행진 등이 펼쳐졌다. 김성기 군수를 비롯한 지역 대표들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방문해 대책을 호소하기도 했다.
 
가평에서 반대 열기가 높아지자 느긋하던 춘천 지역 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가평군은 뛰는데 춘천은 뭐하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상민 춘천시 의원은 “춘천시가 제안한 노선으로 착공해야 기존 46번 국도와 이격거리를 둬 오히려 가평 남부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역공을 펼쳤다. 춘천이 지역구인 김진태 의원은 박순자 국회 국토위원장을 만나 “지역 간 갈등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제2경춘국도가 사업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평군과 춘천시 사이에 낀 국회와 교통부는 난처한 표정이다. 박순자 국토위원장과 원주국토관리청은 “해당 지자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최적의 노선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철도

철도

경남 갈라놓은 남부내륙고속철도
 
비슷한 상황은 경남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타 면제로 탄력을 받게 된 남부내륙고속철도(서부경남KTX)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다. 남부내륙고속철은 김천에서 거제 사이 190㎞를 잇는 사업으로, 사업비는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공약 1호’로 내세운 사업이기도 하다. 당초 김천~합천~진주~통영~거제 노선으로 알려져 있으나, 창원시가 지난해 12월 노선 변경을 주장하고 나오면서 파란이 일고 있다. 의령에서 서남쪽으로 휘어져 진주로 이어지는 노선을 직선화하자는 것이 창원시의 안이다. 진주 대신 함안군 군북면에 역을 설치하고, 진주와 창원은 경전선(慶全線)으로 잇자는 것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직선화를 하면 노선 길이를 10㎞가량 줄일 뿐만 아니라 경남 중부 지역까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주시는 “낙후된 경남 서부 지역을 활성화하자는 것이 예타 면제 취지인데, 창원시 요구는 도를 넘었다”며 맹비난하고 있다. 두 시의 시장(창원시 허성무 시장·민주당, 진주시 조규일 시장·한국당) 소속 당까지 달라 갈등은 감정싸움 국면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이다. 진주을 김재경 의원(한국당)은 “일각에서는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이 여당 소속이라 정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사실이라면 진주와 서부경남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도시 사이에서 답답해진 것은 노선이 지나는 다른 지자체들이다. 당초 2022년 착공해 2028년 완공 예정이던 사업이 늦어질까 봐서다. 고성군수·거제시장·통영시장은 행정협의회를 열어 “국가균형 발전사업으로 선정돼 예타 면제를 받고 환호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갈등 해소와 조기 착공을 주장했다. 이들 세 단체장의 소속은 모두 여당이지만, 같은 여당인 창원 허성무 시장을 사실상 비판한 것이다.
  
충북선이 빚은 지역 사회 ‘정쟁’
 
예타 면제가 키운 불씨는 충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이 되자 철도 경유 역을 둘러싸고 주민 요구가 타져 나왔다. 충북선 고속철과 중앙선 복선철도를 제천역에서 서쪽으로 7㎞가량 떨어진 봉양역에서 연결하기로 하자 제천시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시종 지사의 역점 구상인 ‘강호축’(江湖軸·호남~충청~강원을 잇는 국가발전 구상) 전략에서 제천이 배제됐다며 반발한 것이다. 주민 요구에 난색을 보인 이시종 지사는 지난해 3월 제천시 연두 순방 때 주민들과 몸싸움 과정에서 넥타이가 풀어지는 등 봉변을 치렀다.
 
충주시에서는 충북 고속철과 이어지는 동충주역 신설을 둘러싸고 ‘정쟁’이 벌어졌다. 조길형 시장(한국당)과 같은 당 소속 시의원들이 동충주역 신설 분위기를 이끈 데 비해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소극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시민의 날’ 행사 때 동충주역 추진위가 유치 결의 대회를 진행하자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예정에 없던 행사”라며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 시장이 “충북도와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추진 않겠다”고 물러서자 민주당은 “유치 실패의 희생양을 민주당으로 삼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기준 모호한 선심성 결정이 문제
 
예타 면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은 하나같이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타 통과의 관문이 되는 비용 대비 편익(B/C값) 조사에서 제2경춘국도와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은 0.7대에 그쳤다. 충북선 고속화 사업은 이보다 낮은 0.37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예타를 면제받은 명분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국가재정법은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재정 지원 규모 300억 원 이상’의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외로 인정한다. 그러나 뚜렷한 원칙 없이 선심 쓰듯 모든 지자체에 골고루 나눠 주면서 여기저기서 알력이 일어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재정학 교수는 “경제성 논리에 의해 억제되던 지역 민원이 예타 면제를 계기로 풀리면서 지역 사회 균열이 표면화되고 있다”며 “다분히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되는 재정 사업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본격 사업 착수를 위한 ’본 타당성‘ 조사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재정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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