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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상문학상 거부, 영화 ‘기생충’ 그리고 저작권

중앙일보 2020.02.12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고영회 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고영회 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국내 3대 문학상인 ‘이상 문학상’의 올해 수상자인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지난달 수상을 거부했다. 전년도 수상 작가 윤이형은 아예 절필을 선언했다. 작가들은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조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주최 측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작가들, 낡은 저작권 관행에 저항
“지식 도둑이 큰 도둑” 인식 절실

사람이 새롭게 생각해낸 것은 권리로 보호받는다. 크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이다. ‘사람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저작물)’을 만든 사람은 자기 작품을 독점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저작인격권(출처 표시와 동일성 유지권)과 저작재산권(복제·공연·공중송신·전시·배포·대여 등)으로 구분한다. 저작권은 저작물을 완성하면 생기고, 어떤 절차도 필요 없다. 저작권 등록제도가 있지만, 권리 발생과는 관계가 없다. 저작권은 작가가 살아있는 동안과 죽은 뒤 70년 동안 보호해 주니 좋은 작품을 만들면 2대 이상 누릴 수 있다.
 
저작권 갈래는 다양하다. 교수의 논문 표절, 어느 학생이 자기 누리집(홈페이지)에 남의 작품을 생각 없이 올렸는데 저작권 침해라고 추궁당하다 목숨을 끊은 사건, 신문 기사를 허락 없이 자기 누리집에 올린 회사를 상대로 법률사무소가 무더기로 경고장을 보내고 합의를 요구했던 사례가 저작권 관련 사건이었다.
 
저작권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법률문제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곡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 저작권자가 됨과 동시에 저작권자에게서 항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 그런데 작가가 저작권제도를 잘 모르다 보니 힘센 쪽이 제시하는 구도로 현실은 굴러가기 쉽다.
 
계약에서는 힘센 쪽이 공정하게 맺겠다는 자세를 갖는 게 좋다. 윤이형 작가가 “부조리는 딴 사람이 저질렀는데, 왜 작가가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외치는 소리에 가슴이 아리다. 이상문학상 거부 사건은 작가가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 사건이다.
 
영화 ‘기생충’이 올해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은 과거에 국제 사회에서 ‘저작권 해적국’이라 불린 적도 있다. 지금 한국 영화는 국제무대에 당당히 섰다. 그 뒷배에는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저작권이 우리에게 밀접한 제도임에도 현실은 권리자인 작가가 저작권 제도를 잘 모른다. 지식재산 관련법은 일반법 상식과 다른 내용이 많아서 자칫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저작권법을 다루는 전문가도 찾기 어렵다. 저작권제도는 변리사가 잘 아는 업무이지만, 아직 변리사의 업무로 지정돼 있지 않다.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에 지식재산권법이 있지만, 분량이 많고 어려워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유엔에서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모든 지식재산권을 취급한다. 한국에서는 정부조직이 흩어져 있다. 산업재산권은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의 특허청이, 저작권 관련 정책은 문화관광체육부의 저작권국이 맡도록 이분돼 있다. 이들을 합쳐 국무위원급 ‘지식재산부’를 신설하자고 제안해도 문광부는 반대하고, 정치권도 관심이 없다. 생활에도 국가경쟁력에도 중요한데도 부처 이기주의를 넘지 못한다.
 
문화 예술 작품은 작가의 자존심이고 사회를 넉넉하게 만들고, 부를 만드는 자산이다. 앞으로는 지식재산이 경제적 생산을 주도한다. 4차 산업혁명의 바탕은 지식이고, 국가가 보유한 지식의 총량이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다.
 
창의적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참 힘들다. 작가가 작품 외적인 문제로 덜 고민하는 세상을 만들자. 예전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에서 이제는 ‘지식 도둑은 더 큰 도둑이다’는 인식으로 바꿔야 한다. 문학상 거부 사태를 계기로 저작권 제도를 다시 짚어보자.
 
고영회 전 대한변리사회 회장·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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