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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공소장

중앙일보 2020.02.12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송철호(중략)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부국장 등과 함께 (중략)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장환석을 만나 (중략) 논의 및 부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훑어 내려가던 기자의 눈이 잠시 커졌다. ‘제 편’으로부터도 욕먹으면서까지 공개를 막았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결기를 고려하면 허탈할 정도로 쉽게 모습을 드러낸 공소장이었다. 주요 내용은 보도된 뒤였지만 직업병에 따른 ‘이삭줍기’ 본능은 공소장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했다.
 
기자의 눈길을 받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부국장’(이하 부국장)은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아니다. 해당 인사 정모씨는 송 시장과 장 선임행정관의 만남을 주선한 인물로 보도됐고, 검찰 조사도 받았다. 그는 특히 당시 모셨던 당대표가 추 장관이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경우에 따라 그를 매개로 추 장관의 울산 사건 관여 또는 사전 인지 논란이 본격화할 수도 있어서다.
 
그렇다면 이게 추 장관이 그토록 완강하게 공소장 공개를 막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일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이 도출된 건 공소장을 완독한 뒤였다. 문제의 부국장은 공소장에서 저 대목에 딱 한 번 등장할 뿐이다. 그것도 송 시장 등의 머릿속에 있던 잠재적 공모 대상자로서다. 공소장에는 그가 장 선임행정관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다는 내용조차 없다. 고작 이 정도 내용의 공개를 막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보기에는 시쳇말로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굳이 부국장을 공소장에 박아넣은 걸까. 총선 이후 재개될 수사와 관련해 공소장에 적시해둬야 할 만큼 중요한 자료라도 확보한 걸까. 그래서 추리소설 속 복선처럼 그를 슬그머니 넣어둔 걸까. 아니면 수사를 방해해 온, 앞으로도 방해할 수 있다고 보이는 그 누군가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그를 조사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이름 하나 넣고 간 것뿐일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지만 이를 해소하려면 2라운드 수사의 공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3개월에 가까운 수사 휴지기는 길게만 느껴진다. 성미 급한 이들이 대통령까지 언급하고 나선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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