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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막힌 원격의료, 신종코로나가 소환했다

중앙일보 2020.02.12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3번 환자가 입원한 명지병원은 의료진 감염을 막기 위해 선별진료소에서 로봇을 이용한 원격 협진을 하고 있다. [사진 명지병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3번 환자가 입원한 명지병원은 의료진 감염을 막기 위해 선별진료소에서 로봇을 이용한 원격 협진을 하고 있다. [사진 명지병원]

#이모(37)씨는 네 살 아이에게 열이 많이 나도 병원에 데려가기가 꺼려진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병원 내 감염’이 심각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국내에서 병원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씨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는 “단순 고열 증상이라면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와 전화나 온라인으로 상담하고 약만 처방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일본 합법인데 한국선 불법
감염자 병원 가면 확산 위험 큰데
전화·온라인 의사 진료 불가능
명지병원 의심자 오면 ‘로봇협진’
“전염병 유행 대비 제도 정비 시급”

#중국 알리페이 애플리케이션에는 전문의 상담 서비스 ‘알리헬스(阿里健康)’가 있다. 알리헬스에서만 2000여 명의 의사가 매일 1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 중국 안후이 의대 호흡기 의사 왕란은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하루 평균 600명의 환자를 온라인으로 상담한다”며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교차 감염 위험을 줄여준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원격의료를 원하는 의료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차, 3차 감염에 대한 걱정 없이 집에 머물면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어서다. 하지만 국내와 해외 상황은 ‘딴 세상 얘기’처럼 전혀 다르다. 미국·일본·중국 등은 이미 원격의료를 합법화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의 초기 대처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이지만 추가 확산을 막는데 원격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일엔 베이징 의료협회 주도로 ‘신종 코로나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을 선보였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가 플랫폼 개발과 운영을 맡고 알리헬스·JD헬스·핑안굿닥터 등 11개 기업이 참여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화상통신 같은 첨단 기술과 거대한 땅덩이, 도시 봉쇄가 맞물리면서 원격의료가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도시가 봉쇄되고 대면 의료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후베이성 우한에선 환자들이 집에서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의 원격의료 업체인 텔레닥은 올해 들어 주가가 27% 뛰었다. 가입자가 3억 명을 넘는 중국의 핑안굿닥터도 올해 들어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27% 상승했다. 이 신문은 로보 글로벌리서치의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사람들이 집을 나서지 않고 의료적 도움을 받는 것을 선택하면서 원격의료 업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원격의료 찬반

원격의료 찬반

반면 국내 원격의료는 의료계 반발과 규제에 묶여 30년 넘게 유명무실한 시범사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범사업 장소는 환자의 집을 제외하고 일부 보건소나 노인요양시설 등으로 제한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특구 안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참여하겠다는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상황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010년 이후 수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상임위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감염자가 병원에 가면 감염 위험이 더 커진다. 원격의료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0일 “부처 차원에서 원격의료 관련 검토나 논의는 없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세 번째 확진 환자가 입원한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은 선별진료소에 로봇을 배치하고 ‘원격 협진’을 실시하고 있다. 의심환자를 1차로 선별할 때 의료진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원격의료라고는 할 수 없다. 병원 안에서 간호사 등을 현장에 배치한 ‘협진’만 가능하다.
 
동국대 일산병원 오상우 교수(가정의학과)는 “5G와 의료 데이터, AI 등 첨단 기술 다 갖추고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메르스, 신종 코로나 등 판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만큼 원격의료와 의료 데이터 활용 등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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