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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팬들 성지순례지 된 '돼지슈퍼' 사장님도 "와! 최고!"

중앙일보 2020.02.10 14:29
10일 아카데미 작품상에 '기생충'이 호명되자 돼지슈퍼 사장 김경순(74)씨가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10일 아카데미 작품상에 '기생충'이 호명되자 돼지슈퍼 사장 김경순(74)씨가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와! 최고! 최고! 얼마나 좋아!”
 
10일(한국시간) 오후 1시40분쯤 슈퍼마켓 사장 김경순(74)씨는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 최우수작품상에 기생충이 호명되자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기생충은 오스카상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수상했다. 김씨는 “우리 가게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라며 기뻐했다. 
마치 영화 관계자인 양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김씨는 영화 속 등장한 주요 장소인 ‘돼지슈퍼’의 사장이다. “어제부터 시상식을 기다렸다”던 남편 이정식(78)씨는 내내 중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하필 작품상 발표 몇 분 전에 배달 주문을 가야만 했다. 이씨는 발표 전부터 “당연히 기생충이 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우가 과외 양도받으며 소주 기울이던 '돼지슈퍼'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서울 마포구의 돼지슈퍼와 그 옆에 있는 계단길의 모습. 함민정 기자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서울 마포구의 돼지슈퍼와 그 옆에 있는 계단길의 모습. 함민정 기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돼지슈퍼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친구 민혁(박서준)에게서 박 사장(이선균)네 딸 과외 자리를 양도받으며 소주를 마셨던 곳이다. 돼지슈퍼 바로 옆에는 기택과 기우, 기정이 비 오는 날 처절하게 뛰어 내려갔던 계단길도 있다. 이 장면은 높아졌던 신분에서 다시 낮아지는 신분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계단’으로 연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돼지슈퍼에서 기생충을 촬영하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액션) 소리를 내면 배우들이 (말없이) 왔다갔다 했다”며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찍으니까 웃음만 나왔다”고 말했다. 또 “촬영할 때 슈퍼 맞은편에 앉아서 촬영을 구경했는데, 젊은 남자 배우가 오니까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붙어서 왔다”며 “송강호가 아주 유명한 배우인줄 알았는데 젊은 남자배우(최우식, 박서준)를 더 많은 사람들이 경호하더라”라며 웃었다. 
 
돼지슈퍼를 운영하는 이정식씨와 김경숙씨 내외가 10일 오전 오스카상 시상식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돼지슈퍼를 운영하는 이정식씨와 김경숙씨 내외가 10일 오전 오스카상 시상식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송강호가 온다’ 하니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올 수밖에 없다. 김씨는 “비가 오던 날에도 주민 30~40명이 나와 모여서 촬영을 지켜봤다”며 “옥상에서 물을 비처럼 쏟아 내리는데 3~4시간 동안 송강호씨와 최우식씨가 뛰어내리길 반복했다”고 말했다. 
 

'기생충' 외국인팬 '성지순례' 장소 

영화를 찍고 나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지난해 5월 개봉 직후에는 한국인이 많이 왔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더 많다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기생충이 개봉됐을 때다. 이날 오전에도 한 여성 관광객이 돼지슈퍼 외관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기생충 팬들에게는 일명 ‘성지순례’를 하는 장소 중 하나다. 가게 문에는 관광객들에게 잘 보이라고 이씨의 조카 며느리가 ‘기생충 촬영 우리 슈퍼’라는 종이도 붙여 놓았다. 
 
돼지슈퍼 유리에 '기생충 촬영 우리 슈퍼'라는 '인증글'이 붙어 있다. 함민정 기자

돼지슈퍼 유리에 '기생충 촬영 우리 슈퍼'라는 '인증글'이 붙어 있다. 함민정 기자

이씨는 “어제 그저께는 스페인 사람이 귤이랑 사과를 사갔다”며 “미국에서 기생충이 개봉한 뒤로 하루 1~2명씩은 꼭 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스페인에서 왔다는 한 남자는 내 사진도 찍어갔다”며 “와서 사진도 많이 찍고 그러니깐 내가 탤런트가 된 기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씨는 일본인, 스페인 손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기생충 덕에 유명세 타 기분 좋아"

10일 돼지슈퍼 사장 김경순씨가 기생충 외국팬과 함께 가게 안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함민정 기자

10일 돼지슈퍼 사장 김경순씨가 기생충 외국팬과 함께 가게 안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함민정 기자

40년간이나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 왔지만 대형마트에 밀리고 최근에는 경기도 좋지 않아 김씨 내외가 웃을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생충 덕분에 요즘은 기분 좋은 날이 많다고 한다. 김씨는 “기생충 때문에 매출이 크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유명세를 탄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며 “유명한 상을 4개나 타서 좋고, 우리 가게도 유명해지니까 좋다”며 웃었다. 
 
함민정·이후연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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