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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사라진 '사스 영웅' 장옌융…17년후 반복된 코로나 비극

중앙일보 2020.02.10 11:2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중국 사망자가 9일 자정 현재 908명을 기록했다. 1000명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21세기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에서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대참사다. 그런데도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비극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2003년 사스 때 중국엔 두 명의 영웅 존재
한 명은 사스 퇴치에 큰 공 세운 중난산
다른 한 명은 당국의 은폐와 기만 폭로한
베이징 소재 해방군 301병원 교수 장옌융
사스 극복 이후 더는 장옌융 거론 안 해
내부 치부 폭로한 휘슬 블로어 지웠기에
신종 코로나 같은 우한 비극 되풀이 돼

장옌융은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의 허위 발표를 용기있게 폭로해 후진타오 정권이 사스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장옌융은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의 허위 발표를 용기있게 폭로해 후진타오 정권이 사스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무엇이 잘못된 결과인가. 17년 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의 두 영웅 중 한 명을 지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3년 사스 폭발 당시 중국엔 두 명의 영웅이 있었다. 한 사람은 최근 언론을 많이 타고 있는 중난산(鍾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다.
 
그는 84세의 나이를 잊은 채 우한 최전선으로 달려가 신종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중국은 물론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사스 치료에 큰 공을 세운 그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궈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중난산. 그러나 사스 사태의 진상을 폭로한 또 한 명의 영웅 장옌융은 잊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2003년 중국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중난산. 그러나 사스 사태의 진상을 폭로한 또 한 명의 영웅 장옌융은 잊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당시 중난산 이상으로 사스 퇴치에 큰 공을 세운 이가 있었다. 베이징 소재 해방군 301 병원 교수 장옌융(蔣彦永, 89)이 주인공이다. 은폐와 기만으로 일관하던 사스 상황의 심각성을 폭로해 사스와의 싸움에 전 중국이 나서는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다.
 
장옌융은 사스의 심각성을 최초로 문제제기한 의사다. [중앙포토]

장옌융은 사스의 심각성을 최초로 문제제기한 의사다. [중앙포토]

중국의 첫 사스 환자 황싱추(黃杏初)가 몸이 으슬으슬 이상함을 느낀 건 2002년 12월 초였다.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서 노동을 하던 그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오락가락하다 호흡 곤란이 심해지며 광저우군구(廣州軍區) 총의원으로 이송됐다.  
 
중국 후베이성을 지원하기 위한 산둥성의 의료팀이 출발에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후베이성을 지원하기 위한 산둥성의 의료팀이 출발에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후 광둥성 중산(中山)시에서도 비슷한 발병 사례가 나타났다. 2월 초가 되자 사람 간 감염이 나타나 환자는 100명이 넘었다. 민간에선 감기 예방을 위해 따뜻한 물에 타 마시는 반란건(板藍根) 한 갑이 10위안에서 40위안으로 뛰었다.
 
그러나 신화사는 “광둥에서 305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나 통제할 수 있고 전국 확산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곧 춘절(春節, 설) 대이동이 이어졌고 2월 12일엔 광저우에서 열린 중국과 브라질 간 친선 축구경기에 5만 명이 운집했다. 그렇게 사스 확산은 시작됐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신종 코로나와의 전투 최일선 현장인 우한의 진인탄 병원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신종 코로나와의 전투 최일선 현장인 우한의 진인탄 병원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베이징에선 3월 초 첫 환자가 나왔고 중순엔 동남아와 호주, 유럽 등 세계로 퍼졌다. 반면 중국에선 사스 보도가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4월 2일 중국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은 TV에 나와 베이징에 사스 환자는 단지 12명, 사망자는 3명뿐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본 장옌융 교수가 격분했다. 그가 아는 것만 베이징의 해방군 309 의원에 60명 가까운 환자가 있고 사망자도 5~6명이나 됐다. 이튿날에도 장원캉은 사스가 효과적으로 억제되고 있으니 “중국에 와서 일하고 관광하며 회의를 열어도 안전하다”고 선전했다.
 
중국 허난성에서 신종 코로나 병마를 이겨내고 퇴원하는 사람의 뒤로 전염병 예방 수칙 등의 포스터가 보인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허난성에서 신종 코로나 병마를 이겨내고 퇴원하는 사람의 뒤로 전염병 예방 수칙 등의 포스터가 보인다. [중국 신화망 캡처]

 
드디어 장옌융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 출신으로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의사의 직업 도덕을 위반했다”며 장옌웅은 4월 4일 두 통의 편지를 써 중국 중앙텔레비젼(CCTV)과 홍콩 피닉스TV에 보냈다.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고 회신도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 서방 미디어가 이 서한의 내용을 공개했다.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외부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장원캉은 “중국의 국정(國情)은 신문에 매일같이 질병 상황을 전하는 걸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하찮은 일로 라오바이싱(老百姓)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4월 16일의 일이었다. 이튿날 한 달 전 국가주석에 오른 후진타오(胡錦濤)는 비로소 사태를 파악하고 “어떤 사람도 질병 상황을 숨겨서는 안 된다”며 장원캉을 곧바로 경질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제까지 두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자고 호소했지만 정작 현장을 찾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제까지 두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자고 호소했지만 정작 현장을 찾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베이징 시장 멍쉐눙(孟學農)의 옷도 벗겼다. 당시 베이징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조사를 나오자 병원에 있는 환자 수를 적게 신고하고자 환자를 응급차에 태운 뒤 베이징 시내를 계속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장원캉과 멍쉐눙 경질 직후 중국은 베이징 사스 환자가 37명이 아닌 10배 가까운 339명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생기면 긴급 투입돼 소방수란 별명이 붙은 왕치산(王岐山·현재 국가 부주석)이 베이징 시장이 됐고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는 우이(吳儀) 부총리가 위생부장을 겸했다.
 
장옌융의 폭로가 사스 퇴치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진상을 파악한 후진타오 정권은 신속하고 투명한 사스 정보 공개로 인민의 신뢰를 회복했다. 신뢰가 회복되자 사스와의 전면전을 펼칠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했다.
 
10일부터 중국 대부분 도시의 업무가 정상화됨에 따라 춘절 연휴를 끝내고 도시의 일터로 돌아오는 중국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10일부터 중국 대부분 도시의 업무가 정상화됨에 따라 춘절 연휴를 끝내고 도시의 일터로 돌아오는 중국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지금 중국의 검색 엔진인 바이두(百度)에 들어가 ‘SARS 사건’을 살피면 사스의 시작부터 퇴치까지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정작 장옌웅의 이름 석 자는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
  
신종 코로나는 그 발생과 전개 과정이 사스와 유사하다. 날씨가 추워진 12월 초 야생동물을 잡아먹은 기상천외의 식도락에서 시작해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초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도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대란으로 번지고 있는 게 판박이다.
 
잘못된 대처 방안도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도 중국 언론에선 장옌융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중난산을 말한다. 왜? 내부의 치부를 용기 있게 폭로하는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가 절대 반갑지 않은 거다.
 
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최초 폭로한 뒤 지난 7일 새벽 그 자신도 감염돼 사망한 리원량의 비극은 중국 당국이 은폐로 일관하는 기존 잘못을 고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웨이보 캡처]

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최초 폭로한 뒤 지난 7일 새벽 그 자신도 감염돼 사망한 리원량의 비극은 중국 당국이 은폐로 일관하는 기존 잘못을 고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웨이보 캡처]

 
신중국의 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신종 코로나 발병 사실을 최초 폭로했던 리원량(李文亮)이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현재 집권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중국 최고 지도부 회의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춘절(春節, 설) 당일과 지난 3일 잇따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이번 역병은 우리의 국가 운영 능력에 대한 일대 시험”이라며 “경험을 총괄해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옌웅의 엄청난 활약을 지우고 있으면서 도대체 또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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