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년중앙] 사회 도움되는 일 찾아 대기업 퇴사…'사회 혁신' 키워드로 창업 성공했죠

중앙일보 2020.02.10 10:25
황혜경씨는 한국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하이브아레나를 통해 ‘제2의 집과 가족’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7년 ‘스타트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했던 당시의 모습이다.

황혜경씨는 한국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하이브아레나를 통해 ‘제2의 집과 가족’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7년 ‘스타트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했던 당시의 모습이다.

황혜경(40)씨는 남자들이 많은 분야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전공으로 공학을 선택했고, 많은 공대생들이 진로로 선택하는 전자업계 대기업에 취업했죠. 5년 8개월간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진로 고민은 계속됐어요. 결국 대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뛰쳐나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개발자들을 위해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사무실) ‘하이브아레나’를 6년째 운영하고 있죠.
 
대전대 컴퓨터전자통신공학부에 다니던 시절 혜경씨는 공부를 할수록 ‘과연 공학 공부가 나한테 맞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게 됐습니다. 전공을 깊이 공부하기보다 눈앞에 닥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임기응변식 공부에 그쳤기 때문이에요. 대학원 진학보다는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고 보니 대기업 입사가 쉽지 않을 것 같았죠.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하기로 결심하고 2003년 인하대 전기전자컴퓨터통신 학부에 합격했어요.
 
“취업을 한다면 자동차회사에 가고 싶었어요. 남자들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고, 자동차산업이 더 이상 기계업종이 아닌 전자나 컴퓨터 기반 첨단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사실 컴퓨터나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2019년 5월 서울 신길동 하이브아레나에서 디지털 노마드들의 커뮤니티인 ‘해커스파라다이스’ 멤버들과 하이브아레나 패밀리가 공동으로 BBQ 모임을 가졌다.

2019년 5월 서울 신길동 하이브아레나에서 디지털 노마드들의 커뮤니티인 ‘해커스파라다이스’ 멤버들과 하이브아레나 패밀리가 공동으로 BBQ 모임을 가졌다.

친구들 대부분이 4학년일 때 취업이 결정되고 자신만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땐 은근히 취업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어요. 하지만 혜경씨는 조금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죠. 그리고 2005년 5월, 27살에 LG전자에 입사했어요. 경북 구미시에 있는 LG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죠. TV 제작에 필요한 PDP·LCD 등 구동회로 설계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공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선배들과 가족 같은 유대감 속에서 일했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안정된 시스템 속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연구개발(R&D) 파트의 경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밤을 새우거나 회사에서 자는 것이 다반사였죠. 야근에 특근,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고요. 게다가 만나는 사람 역시 제한적인 편이라 더 갑갑했죠.
 
돌파구로 혜경씨는 주말마다 회사 밖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사는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했어요. 당시 청년들의 멘토로 떠오른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씨의 스토리를 보면서 해외 구호활동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됐고 ‘적정기술’이라는 키워드가 혜경씨의 가슴을 뛰게 했죠. 그때부터 관련 세미나나 콘퍼런스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코워킹 스페이스 겸 코리빙 하우스로 꾸민 서울 신길동의 하이브아레나 내부 모습.

코워킹 스페이스 겸 코리빙 하우스로 꾸민 서울 신길동의 하이브아레나 내부 모습.

2010년 하반기부터 혜경씨는 직장생활 외에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죠. 당시 지인과 함께했던 일은 ‘체인지메이커’(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사람)라 할 만한 글로벌 인사들을 모아 강연이나 토크콘서트 등 매월 2~3회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후퍼 등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은 혜경씨에게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어요. 2011년 1월엔 아예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기도 했죠.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선택한 것, 사람이든 일이든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체인지메이커들과 함께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게 됐고 성취감도 느꼈죠. 활발하게 활동하다 보니 사회적기업 분야에서 인맥도 넓어졌고요. 2010년 말, 혜경씨는 트위터를 통해 인생을 바꾼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소셜 이노베이션(Social Innovation·사회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최종진씨와는 이후 공동창업자이자 배우자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졌죠.
 
“대학생이 되기 전 사업 경험이 있었던 종진씨도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엔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코워킹 스페이스 ‘임팩트허브’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둘이 함께 코워킹 스페이스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죠. 2011년 하반기에 서교동에 10평 정도 되는 사무실을 구해서 코워킹 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했어요.”
 
2017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하이브 아레나에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종진씨(왼쪽)와 함께.

2017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하이브 아레나에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종진씨(왼쪽)와 함께.

지금은 패스트캠퍼스·위워크·리저스 등 유명 브랜드가 된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즐비하지만, 당시엔 국내에서 생소한 영역이었습니다. 이들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단순히 사무공간을 임대해주는 것이 아닌 1인기업 또는 스타트업,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가 함께 모여 일하고 서로 협업하는 커뮤니티가 돼야 한다고 믿었죠. 이후 두 사람은 벤처기업협회와 함께하는 초기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단체) 프로그램, ‘소셜이노베이션캠프’ 48시간 해커톤, 도쿄에서 열린 코워킹 스페이스 콘퍼런스 등에 참여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지금의 하이브아레나의 롤모델로 생각하는 회사를 만났어요. 사회적기업계의 대표 액셀러레이터로 ‘언리즈너블 인스티튜트’라는 미국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만난 거예요. 거창한 비즈니스 조언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평범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차피 코워킹 스페이스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니 서로 인사를 잘해야 하고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 같은 뻔한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하이브아레나를 운영하면서 그것이 핵심 가치임을 깨닫게 됐어요.”
 
3~4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4년 11월 강남구에 공간을 얻어 코워킹 스페이스 ‘하이브아레나’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을 얻기 위해 부모님 도움을 받았지만 정부기관이나 외부 투자를 받진 않았어요. ‘하이브아레나’는 가치 있는 경험을 상상하는 공간이라는 뜻의 약자로 브랜딩을 전공한 종진씨가 직접 작명했죠. 오픈 후 첫 석 달간은 둘이서 큰 공간을 마냥 지키기도 했어요. 3개월 지나자 한 명의 이용자가 찾아 왔고 1년 동안은 이용자가 10명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2018년 1월 서시드니대학 학생들이 서울로 기업가정신 투어를 왔을 때 하이브아레나를 방문했다.

2018년 1월 서시드니대학 학생들이 서울로 기업가정신 투어를 왔을 때 하이브아레나를 방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이브아레나를 외국인 개발자들을 위한 글로벌 코워킹 스페이스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요. 점차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온 디지털 노마드들이 하이브아레나에서 일하고 싶다는 문의를 해오곤 했죠. 그러면서 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때마침 살던 집의 임대 기간이 끝나 살 곳을 찾아야 했던 두 사람은 이 기회에 하이브아레나를 '코워킹 공간을 가진 코리빙하우스'로 바꿔보기로 했어요. 발품을 판 끝에 서울에서 보기 힘든 마당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을 구할 수 있었죠. 외국인들과 함께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온 원격근무자들과 함께 밥 먹고 대화하면서 이들은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그 이상의 친구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2016년엔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와 '포브스(Forbes)'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에 하이브아레나가 소개되기도 했죠. 
 
지금은 새로운 동네를 찾아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사를 준비 중입니다. 하이브아레나를 통해 만난 ‘하이브패밀리’는 점점 커지고 있죠.
 
“안정적인 대기업 퇴사 후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였어요. 어떤 일을 나보다 먼저 했거나 나중에 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이벤트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 관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간을 매개로 해외 친구들과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이브아레나는 '원하는 곳에서 일한다'라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창의적 전문가들이 '두 번째 집과 가족'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고 해요.”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