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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간식에 쓴 대학원 공동연구비…대법 "개인 착복 아닌데 제재 과해"

중앙일보 2020.02.10 06:00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생수비, 간식비, 국제학술대회 참가 항공료….'
서울대학교 A교수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이 받은 연구사업비 중 일부를 공동계좌에 모아 지출한 내역이다. 
A교수는 2015년 교육부점검 결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연구비 공동계좌를 만들어 연구실 생활비 등에 돈을 사용한 점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A교수에게 지급된 7000여만원을 환수하고 3년간 교육부 연구 사업 선정 대상에서 그를 제외하는 처분을 했다. A교수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교수에게 내려진 사업비 환수 처분과 선정 제외 처분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비 모아 생수·간식 등 공동비용 지출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A교수는 2008년쯤부터 교육부로부터 3개 이상의 학술 연구 사업을 지원받아 시행해왔다. 교육부 훈령이나 지침에 따르면 사업에 따른 연구장학금은 대학원생들에게 직접 지급되고 개인의 통장이나 도장을 모아서 관리하거나 일정 금액을 회수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한다. 일부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된 돈을 돌려받아 횡령하는 등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A교수 연구실에서는 대학원생 계좌로 연구비를 받고 학위별로 일정 금액이 넘는 돈에 대해서는 공동관리계좌로 이를 모았다. 예를 들어 박사 후 과정에 있는 연구원들은 200만원, 박사과정 수료생은 150만~180만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130만~140만원, 석사과정 연구원은 90만원까지 자신의 계좌로 받고 나머지 금액은 공동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이었다.
 
공동계좌에 들어온 돈은 연구원실의 생수비, 간식비로 쓰였다. 종종 연구원 중 일부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야 하면 그 항공료나 숙소비, 여행경비도 공동계좌에서 지출했다. 대학원생 개인이 부담하기엔 큰돈이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런 공동계좌 사용이 ‘사업 외 경비 지출’에 해당한다고 보고 A교수에게 연구비 환수처분 및 3년간 지원 대상자 선정 제외 처분을 했다.
 

1ㆍ2심 상반된 결론

1심에서 A교수측은 억울함을 주장하며 교육부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연구실에서의 공동계좌 사용을  "사업비를 용도 외로 쓴 경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교육부의 연구 지원 사업 목적이 사업 성과를 내는 것에도 있지만, 이공계열 같은 특정 학문 석ㆍ박사 과정 대학원생 인력을 지원하는 목적도 있다고 본 것이다. 1심은 교육부의 처분 전부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연구비 중 일부를 돌려받아 공동 경비로 쓴 것은 사업비를 용도 외로 쓴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2심은 "연구비 공동 관리가 명시적으로 금지됐는데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만연하게 이뤄지는 것을 엄격한 제재로 바로잡을 공익상 의무가 매우 크다"고 판결했다.
 

대법 “처분 지나치게 가혹”…왜?

대법원도 A교수의 연구비 공동관리가 공익을 침해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교육부가 내린 연구비 환수처분과 연구지원 대상 선정 제외 처분이 A교수의 공익 침해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공동계좌 금지 지침은 교수가 우월한 지위에서 학생 인건비를 다른 용도로 써서 연구원의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연구 의혹을 꺾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A교수 연구실의 공동관리비는 대부분 형식적으로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인건비나 회식비, 학술대회 참가비 등 연구실 소속 전체 학생을 위해 쓰였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A교수가 돈을 개인 용도로 쓴 흔적이 없고 운영 기준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세웠다"며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발전속도 등을 고려할 때 사업비를 의도적으로 부정 집행한 경우처럼 3년간 연구 대상자 제외 처분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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