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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시황제’의 노예가 돼도 좋은가

중앙일보 2020.02.10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러스는 악마” 라며 “반드시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에 대처하는 전근대적 상황 인식이 명징하게 드러났다. ‘악마’는 근대의 아침이 밝아오기 전 힘없는 백성을 공포에 떨게 한 광신(狂信)의 상징이다. 15세기 말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인증한 마녀사냥 지침서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사람”을 마녀로 규정했다. 재앙이 발생하면 운수 사나운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위기에 몰려 악마 불러낸 시진핑
책임 회피하고 중세 권좌로 숨어
중, 한국 인명 경시…입국금지 반대
중국과 운명공동체는 노예의 길

시진핑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반(半)생명체인 바이러스를 ‘악마’라고 명명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인민과 유리된 중세의 권좌로 숨어버렸다.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한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민심과 멀어진 황제임을 실증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서 지휘하던 후진타오와 대비된다. 세계 여론은 “시진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나쁘다”며 쉬쉬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가장 큰 책임은 완벽한 1인 권력체제를 거머쥔 시진핑에게 있다. 그런데도 ‘악마’를 소환해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 소재를 실종시키고 무오류의 존재로 남으려 한다. 대안의 집권세력이 없는 일당제는 이렇게 위험하다.
 
우환의 재앙을 감지하고 최초로 문제제기를 한 젊은 의사는 경찰에 체포돼 반성문을 썼고, 진료 중 감염돼 사망했다. 억압적 체제가 초래한 비극이다. 감염자가 발생한 지 50일이 넘어서야 시진핑은 처음으로 총력대응을 촉구하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우한에선 4만 가구가 함께 식사하는 만인연(萬家宴)이 열리고, 봉쇄 전에 500만 명이 연휴를 맞아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이후였다.
 
우한 역병은 초기 대응이 잘못돼 지구적 재앙이 됐다. 2002년 사스 사태 때도 중국은 5개월이 지나서야 발생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침묵”이라며 분노한다. 독재국가 중국의 심리와 행동은 미숙하고 그 비용을 전 세계가 치르고 있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까지도 자국 대변인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는데 사무총장은 “중국 정부의 대처로 신종 코로나가 해외로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고 우긴다. 미국이 예산지원을 줄인 틈을 파고들어 돈의 힘으로 WHO를 장악해서 벌어진 소극(笑劇)이다. 국제기구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흔든 중국의 탐욕은 전 인류에게 독이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 내 70개가 넘는 도시를 봉쇄하거나 주민의 이동을 제한했다. 이런데도 한국에는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알면서 “한국은 운명공동체”라고 한다. 대사의 오만방자한 언행은 19세기 조선을 속국으로 취급하던 위안스카이와 닮았다.
 
문 정권은 총선 전에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운명공동체” 발언도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중국의 맹방인 북한과 러시아도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다. 한국은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마저도 발표 2시간 만에 번복했다. 중국이 그렇게 무서운가. 나를 무시하는 상대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
 
중국은 힘이 커지면 은혜를 잊어버린다. 한국은 중국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천안문 사태로 고립됐을 때 손길을 내밀어 국교를 맺은 나라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4년 만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했다. 미국·일본·EU는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핵 위협에 맞서 사드를 들여왔다고 경제보복을 했다. 그런 나라와 운명을 함께할 수는 없다.
 
악마를 소환해도 역병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전근대적 주술이 아닌 민주주의와 과학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감염증 정보는 즉시 투명하게 공개해 전 세계가 대처하게 해야 한다.
 
중국은 춘절 특수(特需), 3월의 양회(兩會), 내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의식해 은폐·축소하려 했다. 이제 중국의 발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나라와 누가 친구가 되려 할 것인가. 악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불신을 부르는 거짓말에 숨어 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와 빅데이터 분야 최선두 국가다. 이젠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지구의 문명이 편안해진다.
 
미국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는 반세기전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라고 선언했다. 1987년 넥타이부대의 가세로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에서도 입증된 가설이다. 중국은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었고 중산층이 있는 나라다.
 
선제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일장춘몽이 될 수 있다. 말 못하는 바이러스는 ‘악마’가 아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중국은 한국과 공동운명체가 될 수 없다. 100년을 앞둔 중국공산당은 바이러스가 발신하는 경고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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