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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법무부 문민화, ‘문맹화’였나

중앙일보 2020.02.10 00:35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검사(檢事)의 검(檢)은 칼(劍)이 아니다. 그러나, ‘조사·검사한다’는 의미보다 치명적 흉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 혼동엔 검사들 책임도 있다.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고 스스로 ‘칼잡이’라 부르는 언어유희를 즐겼다. 범죄자에게 칼끝을 겨누듯 단죄하는 일이니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 인식을 방치한 것이 지금 검찰이 겪는 수모의 시발점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법치 ‘도장깨기’
지휘 체계·공소장 공개 원칙 파괴
문민화, 시스템 왜곡한 바이러스

권위주의 정권에서 검찰은 권력자의 칼이었다. 반대편을 도륙하다시피 수사하는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특수통·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칼을 휘두르고 권력을 보좌하는 것은 검사의 성공스토리였다. 자연스레 ‘무인(武人) 집단’ 대접을 받아들였다. 그 흑역사가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다. 권력욕과 자기애에 취한 검찰은 안하무인, 무소불위의 괴물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 이어 검찰 개혁 과제의 하나로 ‘법무부의 문민(文民)화’를 내건 것은 당위로 여겨졌다.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 요직을 검사 출신이 아닌 ‘문민’으로 바꿔야만 독선과 아집에 갇힌 검찰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문민화는 공수처법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민주적 통제’를 완수하는 장치로 묘사됐다. 안경환·박상기·조국 등 법학 교수 출신에 이어 판사 출신 추미애 법무장관이 그 자리에 올랐거나 지명된 이유다.
 
헐크로 변신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처럼, 권력자의 칼이 되는 습성을 못 버리는 검찰에게 문민화는 괜찮은 처방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해독제가 아니라 법률가의 두뇌 회로까지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
 
자녀 입시 비리 의혹과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피고인이 된 조국 전 장관의 ‘조로남불’에 이어 추미애 법무장관은 법치주의를 ‘도장 깨기’ 하듯 무력화 시키고 있다. 검찰 인사와 수사에서 사사건건 검찰과 부딪치면서 법조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황이 속출한다. 그는 지난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박차고 나가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수사 중인 사건의 지휘 라인을 교체하는 인사 이후 ‘검사동일체’라는 생태계를 병리 현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구체적인 사건에서만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는 법무장관이 지난달 인사 문제로 총장과 부딪히자 ‘항명’했다고 비난했다. 그래놓고 검사들에게는 총괄 지휘자인 총장의 명을 박차고 나가라고 했다. 이게 설득력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검사동일체는 법전에서는 2004년 사라졌지만, 여전히 검찰 지휘 체계의 본질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추 장관의 지시에 뜨악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검사는 법무부 소속 행정기관이면서 준(準)사법기관이고, 검사 각자가 독립된 관청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따라서, 개별 검사의 독단을 막고 체계적인 검찰권 행사를 위해서는 일관성을 담보하는 원칙이 필요했다. 그 검사동일체 원칙이 법문에서 삭제된 것은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해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라는 국민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권력의 칼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검찰의 고된 ‘투병의 시간’이 검사동일체라는 표현의 존폐에 담겨 있는 셈이다. 추 장관의 지시는 검사들에게 경박한 정치적 수사로 비쳤을 공산이 크다.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를 거부한 것은 법무·검찰을 ‘멘붕’에 빠트린 일대 사건이다. 법과 관행에 어긋나는 결정에 법무부 참모들은 부작용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책임지겠다”는 장관의 결기에 법무부는 속수무책이었다. 문민화 바이러스에 노출된 듯 국민의 알 권리와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 원리에 둔감해졌다. 법무부의 참모들은 추후 직권남용 논란에 대비한 듯 반대 입장의 흔적을 남기는 정도의 생존 반응만 했을 뿐이다.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표 금지 훈령을 빌미로 국회법 등 상위 법률을 무시했다. 조국 전 장관이 수사를 피하려고 만들었다는 오해를 산 훈령이 청와대와 대통령을 향한 수사에서도 방어벽이 된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개가 원칙인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은 용기인가, 객기인가, 무지인가”라고 개탄했다.
 
추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수호신을 자처하며 더 큰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과도한 추진력은 오히려 문 대통령이 강조한 ‘민주적 통제’를 훼손하는 오점을 남겼다. 개념없는 법무부 문민화 역시 법치의 ‘문맹(文盲)화’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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