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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불쏘시개 소동 후 한 달…한진 모자가 손잡은 이유는

중앙일보 2020.02.09 05:00

한진가 경영권 분쟁, 결정적 순간 5장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 조기가 걸려있다. [중앙포토]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 조기가 걸려있다. [중앙포토]

 

[뉴스분석]

“후대가 평가·기록할 때 부끄럽지 않을 대한항공의 오늘을 만들겠다.”
지난해 연말 한진그룹이 발간한 ‘대한항공 50년사(史)’ 기념식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남긴 말이다.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남기기 위한 진통일까. 국내 최대 항공사 대한항공을 보유한 재계 13위 한진그룹이 매일처럼 시끄럽다. 근 10개월 동안 이어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이제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8일 별세하면서 이어져 온 가족간 갈등의 결정적 장면 5개를 꼽아봤다.
  

①KCGI 지분 매입 와중 조양호 회장 별세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에 영정이 놓여있다. [사진 대한항공]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에 영정이 놓여있다. [사진 대한항공]

 
지난해 4월 8일 별세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17.45%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진칼→대한항공·한진→손자회사로 이어지는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조 회장은 최대주주 자격으로 그룹 전체를 경영했다.
 
당시에만 해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한진가의 ‘주적(主敵)’은 행동주의 펀드 KCGI였다. KCGI는 조 회장이 별세하기 직전부터 한진그룹 경영 참여를 선언하고 지분을 확대하고 있었다. 조양호 회장 별세 4일 전에도 지분을 0.79%포인트 추가 매입했다.
 
KCGI 홈페이지. [연합뉴스]

KCGI 홈페이지. [연합뉴스]

1999년부터 20년간 회사를 이끌어 왔던 조양호 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KCGI가 계속 지분을 매입하자, 한진가는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뭉쳤다. 지난해 4월 24일 조 회장을 한진그룹 회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초로 가족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5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한진그룹이 차기 총수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13일 동안 한진그룹 내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같은해 5월 13일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을 차기 총수로 적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다.
 

②그룹 차기 총수 지정 과정에서 이견   

김성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은 당시 “조양호 회장 작고 이후 한진 측이 차기 총수를 누구로 할지 내부적인 의사 합치를 이루지 못했다고 알려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원태 회장을) 지정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 총수로 올라섰지만, 이 과정에서 한진가 가족끼리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6월 세계운송협회(IATA) 서울총회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뉴스원]

지난해 6월 세계운송협회(IATA) 서울총회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뉴스원]

불화설이 계속 불거지자 조원태 회장은 지난해 6월 3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가족과 많이 협의하고 있고…(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조원태 회장은 이 자리에서 “KCGI는 대주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차근차근 자신의 우군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지난해 6월 10일 조 회장의 여동생 조 에밀리 리(한국명 조현민) 전무가 복귀했다. 2018해 4월 광고 제작 회의에서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물컵을 던졌다가 물러난 지 14개월 만이다. 조원태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지난해 7월 5일 계열사에 등장했다. 정석기업 고문과 계열사 한국공항 자문 역할을 맡으면서다.
 
한진칼 주주 구성. 그래픽 = 박경민 기자.

한진칼 주주 구성. 그래픽 = 박경민 기자.

 
또 대한항공과 함께 글로벌 항공 동맹(스카이팀)을 설립했던 델타항공이 나섰다. 지난해 6월 20일 한진칼 지분 4.3%를 추가인수한 것이다. 당시 계획대로였다면 한진가는 무리 없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델타항공 지분까지 포함해서 당시 조 회장이 보유한 우호 지분율(33.23%)이 KCGI 지분율(15.98%)의 2배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델타항공이 지분을 매입하자 증권가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끝났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한진칼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안정적인 우호 지분을 확보한 조원태 회장은 그룹 경영을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조 회장은 “내년에 경제가 굉장히 안 좋을 것”이라며 “이익이 안 나면 (사업을) 버려야죠”라고 언급했다.
 

③감정 틀어진 발단 된 연말 정기 임원인사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연합뉴스]

여세를 몰아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29일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조 회장이 한진그룹 회장직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임원 인사다. 또 지난해 12월 11일부터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구조조정에도 돌입했다.
 
하지만 이 인사에서 결국 사단이 났다. 조 회장은 어머니(이명희 고문)·여동생(조현민 전무)과 달리,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만 경영 복귀에서 배제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左)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右). [중앙포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左)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右). [중앙포토]

경영복귀가 무산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조원태 대표가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했고,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일격을 날린다. 6개월 가량 수면에서만 벌어지던 ‘남매의 난(亂)’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당시 정기 임원인사에서 다수의 조현아 측 인사가 물러난 것을 '독단적 운영'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또 조 회장이 왕산레저개발 등 조 전 부사장측이 공을 들여온 일부 레저 계열사의 구조조정 계획안을 세운 것도 ‘합의되지 않은 독자적 운영’이라는 입장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이전까지 왕산레저개발 대표이사였다.  
 

④조현아+KCGI+반도 ‘반란군’ 결성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인 조원태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 향방은 다시 안개 속에 빠졌다. 이때만 해도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는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25일 조원태 회장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이명희 고문 자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불쏘시개를 휘두르며 유리창·꽃병을 깨뜨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셈법이 더 복잡해진 계기다.
 
한진가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자,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조 전 부사장과 KCGI·반도건설그룹은 3자 회동을 갖고 이른바 ‘반(反) 조원태 연합군’을 형성했다.  
 
'한진칼 경영 참여' 선언한 반도건설 [연합뉴스]

'한진칼 경영 참여' 선언한 반도건설 [연합뉴스]

한진칼의 3대주주 반도건설그룹은 계열사 대호개발을 통해 지난 1월 10일 한진칼 지분을 늘렸다(6.28%→8.28%). 또 지분 보유의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KCGI도 지난 1월 21일 조원태 회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KCGI는 대한항공 임직원을 한진칼에 파견한 것이 불법이라며 “총수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한항공의 인력·재산을 유출한다”며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개전투를 벌이던 반(反) 조원태 연합군은 지난 1월 31일 드디어 연합한다. 이들은 “한진그룹의 경영상황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이사회 권한을 강화해 주주 공동 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정립하겠다”고 공동발표한다. 
 

⑤이명희·조현민, 조원태 지지 ‘극적 반전’

 
인천공항 국제선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로 여행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뉴스원]

인천공항 국제선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로 여행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뉴스원]

3자가 연대해 조원태 회장을 포위하는 전략이 조현아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악수(惡手)'가 됐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는 지난 4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외부 세력과 연대했다는 발표가 안타깝다”며 KCGI·반도건설그룹과 연대한데 대한 반대를 명확히 했다. 나아가 이들은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재의 한진그룹 전문 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며 공식적으로 조 회장을 지지했다.  
 
이처럼 입장이 달라진데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명희 고문 입장에서는 지난해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KCGI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표 대결을 벌인 이후 열흘 만에 조양호 회장이 작고했다”며 “KCGI와는 결코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조원태 회장을 지지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왼쪽부터 조원태 회장, 이명희 고문, 조현민 전무, 조현아 전 부사장. [연합뉴스]

왼쪽부터 조원태 회장, 이명희 고문, 조현민 전무, 조현아 전 부사장. [연합뉴스]

어머니·여동생의 지분율을 등에 업은 조원태 회장은 반격을 시작했다. 2월 6일·7일 이틀 연속 대한항공·한진칼 이사회를 개최한 조원태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추진하던 사업을 일제히 매각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6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3만6642㎡)·건물(605㎡)과 왕산마리나 연내 매각을 결정했고, 7일엔 칼호텔네트워크가 소유한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호텔 사업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애착을 가지고 추진하던 사업이다. 만약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에 복귀할 경우 호텔·레저사업을 담당하며 장기적으로 분사 혹은 경영승계를 추진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호텔·레저사업을 대거 매각하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한진그룹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의 지분율. 그래픽 = 김경진 기자

한진그룹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의 지분율. 그래픽 = 김경진 기자

 
이로써 합종연횡하던 경영권 분쟁은 다시 ‘한진가 대 조현아’ 구도로 재편했다. 조원태 회장 측이 확보한 한진칼 지분은 33.4%다. 어머니 이명히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특수관계인과 우호 세력 지분(델타항공·카카오)을 포함한 지분율이다. 이에 맞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그룹과 공동으로 한진칼 지분 32.0%를 확보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예고한 양측이 각각 확보한 지분율 격차가 불과 1.4%포인트에 불과한 상황을 감안하면, 결국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가 이들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국민연금 등 기타주주의 한진칼 지분율은 34.6%다. 결국 이들을 얼마나 포섭하느냐, 나머지 표를 끌어들일 명분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경영권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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