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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바이러스의 습격

중앙선데이 2020.02.08 00:20 672호 30면 지면보기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인기 공상과학 소설(SF)이나 영화·드라마를 살펴보면 그 시대를 관통하던 불안감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이후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지구촌에는 프랑켄슈타인이나 킹콩으로 대변되는 변종 괴물·괴수가 위기의 근원으로 꼽혔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피폐해진 사회에선 어느 날 갑자기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이 새로운 두려움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에 대한 지나친 신봉과 인간 중심 편의주의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좀비와 같은 악성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인기 소재로 다뤄졌다. 좀비 바이러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린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시즌 10까지 제작될 정도다. 이제 바이러스의 창궐은 정보화 사회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의 반란과 더불어 현대판 ‘대재앙’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바이러스 창궐, 현대판 ‘대재앙’의 상징
정치·사회 대응 능력 시험 계기 삼아야

현재 지구 상에는 약 8000여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시에 발생하는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습격’에 대비하는 것은 세계 각 나라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합병증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를 보면 걱정스런 점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신종 코로나 발생 상황과 문재인 대통령의 동선을 복기해보자.
 
(신종 코로나의 확산) 1월 7일 국내 첫 증상자 발생→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 발생→ 24일 두 번째 확진 환자 발생→ 30일 국내 첫 2차 감염자 발생→ 31일 국내 첫 3차 감염자 발생.
 
(문 대통령)21일 신임 공무원과 세종청사 구내식당 오찬→ 23일 농협 마트 방문→ 26일 “과도한 불안 갖지말라” 대국민 메시지→ 28일 국립중앙의료원 방문, “과다할 정도로 선제적 조치 취할 것” 지시→ 2월 3일 우한 총영사관 직원 격려 전화.
 
한 박자 늦는 듯한 행보도 문제지만 ‘선제적 조치’보다 ‘과도한 불안’을 먼저 강조했던 것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위기관과 초동관리 능력에 의문을 남기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휘할 컨트롤 타워도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국무총리실 상황관리실 등으로 난립한 데다 지자체의 대응도 제각각이었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우한 교민 수용 지역 결정, 개학 연기 등의 사안마다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데다 확진 환자 동선의 공개 기준도 수시로 바뀌어 방역대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권 내부에선 정책 혼선에 대한 사과는커녕 “정부 대응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화자찬만 나오고 있다.
 
게다가 중국 여행 금지 조치 등을 놓고 눈치를 보다가 쏟아진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은 사회 곳곳에서 중국 혐오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토착 왜구’ 운운하며 일본에 날을 세우고,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게 ‘조선 총독이냐’며 비판했던 그 많던 정부 여당 인사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현장과 여론 소통의 감도를 복구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의 확산처럼 민심 이반의 아웃 브레이크(발생)가 판데믹(대유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유행병은 신이 창조한 게 아니라 바이러스와 동물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뜻밖의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인간의 우월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바이러스다”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조슈아 레더버그의 이 말처럼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정치와 사회의 건강성을 위협하며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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