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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대박 난 호미 만든 ‘호미 장인’의 비결은

중앙일보 2020.02.07 15:00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53)

 
미국에서 국산 호미가 인기란다. 주로 아마존을 통해 많이 팔린다는데, 첨단 IT기술로 구현된 온라인 쇼핑몰에서 우리 농기구가 인기라니 재밌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나저나 마당이 흔해 원예가 일상적인 그쪽 사람들, 땅 파는데 이렇게 편한 기구가 있었냐며 호들갑이라는 후문이다.
 
글로벌 ‘불티상품’인 이 호미는 경북 영주대장간의 호미 장인 석노기 씨의 작품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석씨에게는 요새 고민이 하나 있다. 그의 나이도 벌써 예순여섯, 앞으로 이 호미의 명맥을 이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제의 첨단기술이 오늘은 구식이 되어버리는 이 빠른 변화의 시대에 그의 기술을 사사받겠다며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존 사이트에서 실제 팔리고 있는 영주대장간 호미. [중앙포토]

아마존 사이트에서 실제 팔리고 있는 영주대장간 호미. [중앙포토]

영주대장간 '호미장인' 석노기 씨(좌)와 호미청년 황덕환 씨. [중앙포토]

영주대장간 '호미장인' 석노기 씨(좌)와 호미청년 황덕환 씨. [중앙포토]

 
있다. 석 씨가 얼마 전에 제자를 받았다. 그것도 20대 청년이란다. 무엇이 대체 이 청년을 뜨거운 불길 앞에 서게 했을까. 지난 1월 12일 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대장장이 꿈나무 황덕환 씨는 유튜브를 통해 석노기 선생을 알게 됐다. 그는 석 선생의 기술 명맥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그를 찾아갔다. 한데 돈도 안 받고 잠자리도 알아서 할 테니 가르쳐만 달라는 그를 석 씨는 거절했다. 20대 청년이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황 씨의 결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설득 끝에 그는 석 씨의 제자가 됐다. 물론, 월급도 받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 반응은 그야말로 ‘좋아요~’ 일색이다. 많은 독자가 석 씨와 황 씨의 앞날에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나도 그에게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 내가 여태 해온 일, 바로 시인의 말을 빌려오는 것이다.
 
쟁기가 남자의 연장이라면 호미는 여자가 쓰는 연장이다. 물론 논에서는 논호미로 남자가 김을 매지만, 사시장철 나는 밭의 풀은 거의 대부분 여자의 몫이었다. 지금은 제초제를 써 아예 풀이 나지 못하게 하거나 난 풀을 죽여 버리므로 호미로 김을 매는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사는 거름 주고 김매는 데 달려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여름 하루 쉬면 겨울에 사흘을 굶게 될 것이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김을 맨다. 그 밭고랑마다 떨어졌을 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의 땀과 눈물방울이, 호미 끝에 가만히 귀를 대 보면, 금세라도 시나위 한 가락으로 되살아 나올 것만 같다. 깊은 산골 뻐꾸기 울음소리만 무심한데, 때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쓰라린 이별도 호미 끝으로 삭여야 했던 살림살이의 고단함은 먼 옛날부터 지금껏 이어져, 우리 민족의 마음에 밟혀도 되살아나는 끈질김으로 되었다. 남의 나라에게 업신여김 당해도, 지배자에게 핍박당해도 결국은 호미 한 자루 손에 쥐고 평생을 견뎌온 힘으로 이겨내지 않았던가.
-박형진, 「호미」부분. 산문집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열화당, 2015)』
 
작은 농기구 하나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재발견하는 사람, 그는 1958년 전북 부안군 변산면 모항에서 태어난 시인 박형진이다. 1992년 등단 이래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니 그의 말과 생각은 서점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그를 직접 만나려는 사람은 여전히 농촌으로 그를 찾아가야 한다. 그는 여전히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는 농부시인 박형진이 10년 동안 모은 자료를 가지고 쓴 88개의 농기구에 대한 이야기다. 갈퀴, 잿박, 괭이, 가마니, 달구지와 쇠신, 그리고 호미가 있다. 여인들의 노동을 상징하는 호미, 그 끝에 코를 대보면 땅 한 번 제대로 일구어 본 적 없는 독자에게도 정겨운 흙내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 [사진 EBS 교양 유튜브]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 [사진 EBS 교양 유튜브]

 
세상에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있고, 물건을 쓰는 사람이 있다. 대량생산시스템과 황금만능주의의 결합으로 탄생한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그 세 사람이 서로를 몰라도 된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장인의 세계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장인은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리고 자신을 거기에 맞춘다.
 
석노기 선생 역시 과거 값싼 중국산에 밀려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그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그 위기를 돌파했다. 짐작건대 그는 참 많은 사람에게 호미 쓰는 일에 관해 묻고 다녔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호미 장인이 되었다. 이제 그의 호미를 파는 사람과 그의 호미를 쓰는 사람 모두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런 스승을 둔 제자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편 왕성하게 문학 활동을 해오고 있는 농부시인 박형진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다. 그의 문학은 책과 강의에서 오지 않았다. 논바닥이 그의 교실이고 자연의 그의 선생이다. 그는 자연에 꾸준히 물었다. 그 결과 그는 자연을 이해하는 농촌 시 장인이 되었다.
 
박형진의 시 중에 이런 작품이 있다. 길을 걷는데 풀여치 하나가 옷깃에 날아든다. 그는 곧 풀여치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꺼이 풀잎이 되어 주기로 한다. 이 작품에 그가 붙인 제목은 ‘사랑’이다. 그런가. 장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인가. 사랑을 한다는 뜻인가. 시를 옮기며, 이 시대 모든 장인을 향한 응원의 편지를 마친다.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사랑」 전문.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창비, 1994)』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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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새벽 전새벽 작가 필진

[전새벽의 시집 읽기] 현역 때는 틈틈이 이런저런 책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인터넷 사용법부터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은퇴 후에는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과 인공지능보다는 내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어쩌면 시 읽기가 그것을 도와줄지도 모른다. 중장년층에 필요할 만한, 혹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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