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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송' 그의 작품···각본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간 한진원

중앙일보 2020.02.07 06:00
'기생충' 공동 각본가 한진원씨가 1일(현지시간) 각본상을 수상한 미국작가조합(WGA) 시상식에서 영화 포스터를 휴대폰에 띄워 보였다. [AP=연합뉴스]

'기생충' 공동 각본가 한진원씨가 1일(현지시간) 각본상을 수상한 미국작가조합(WGA) 시상식에서 영화 포스터를 휴대폰에 띄워 보였다. [AP=연합뉴스]

“저의 파트너 작가가 있는데 외관상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긴 하지만 실제론 아주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작가 한진원씨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달 9일(현지 시간) 미국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 무대에서 봉준호 감독의 이런 소개에 한진원 작가는 활짝 웃었다. 그는 봉 감독과 함께 ‘기생충’ 공동 각본가로 오는 9일 LA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기생충' 주역② 공동 각본가 한진원 작가
상업영화 연출부...'옥자'로 봉준호 만나
'제시카송' 2, 3절 가사도 그의 솜씨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하면 아시아계 최초

 

'기생충' 주역① 제작자 곽신애 대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란 한국영화 신기록을 세운 ‘기생충’은 이미 국내외 20개 넘는 각본상을 휩쓸었다. 1일 미국작가(WGA)상 시상식에선 비영어 영화 최초 각본상도 차지했다. 한국뿐 아니라 비영어 영화 최초 기록 행진을 잇고 있다.  
 

“모국어로 된 영화를 보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란 걸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선배 영화인들 앞에 서게 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좋은 영화 유산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해 7월 봉 감독과 춘사영화상 각본상 무대에 오른 한 작가의 말이다. 놀랍게도 ‘기생충’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그의 첫 작품이다.  
 
'기생충' 주역이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후보 사전 오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기사,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기생충' 주역이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후보 사전 오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기사,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05학번인 그는 이전까진 주로 연출팀으로 활동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 소품팀을 시작으로, 배우 구혜선의 연출작 ‘다우더’, 원전 재난 영화 ‘판도라’, 코미디 영화 ‘헬머니’ 연출팀을 겸했다. ‘헬머니’에선 버스 승객 역으로 단역 출연도 했다.  
 
봉 감독과는 넷플릭스 영화 ‘옥자’ 연출팀(2nd 조감독)으로 만났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봉 감독은 연출팀을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는 편이다. 이 관계자는 “‘옥자’ 현장에서 한 작가가 굉장히 열심히 했다. 털털하고 근성 있는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이후 배두나 주연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 시즌2' 현장에도 참여했다. 
 
이를 눈여겨본 걸까. 봉 감독은 다음 영화 ‘기생충’에 그를 공동 각본 겸 스크립터(스크립 슈퍼바이저)로 합류시켰다.  
‘기생충’이 미국영화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앙상블) 인 모션픽처’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던 박소담의 '제시카송'은 한진원 작가가 봉 감독과 2, 3절까지 가사를 함께 썼다. [AFP=연합뉴스]

‘기생충’이 미국영화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앙상블) 인 모션픽처’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던 박소담의 '제시카송'은 한진원 작가가 봉 감독과 2, 3절까지 가사를 함께 썼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기생충’ 각본집 속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자신이 2013년부터 엔딩 없이 여러 아이디어를 넣어 만든 시놉시스를 2015년 독립영화 ‘철원기행’으로 주목받던 김대환 감독에게 주며 시나리오 초고를 맡겼고, ‘옥자’ 후반 작업을 하던 이듬해 연출부였던 한 작가에게 이 초고와 자신의 시놉시스를 주며 시나리오를 써보라 했다고 전했다. 그 직전 3개월간 한 작가와 자료 조사와 취재를 하며 작품을 구상한 데 이어서다.  
 
봉 감독은 “(한 작가가 극 중 인물들의 직업인) 운전기사분들도 만나고 가사도우미분들도 만나고 공간 관련 자료 사진도 수집하고 취재를 많이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2017년 7월 영화의 후반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3달 동안 시나리오 뒤의 절반을 다 바꿔버리면서 그 이전 버전 대사와 장면은 흔적만 남게 됐단다.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왼쪽)와 한진원 작가가 지난달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한국 매체 간담회에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들어보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왼쪽)와 한진원 작가가 지난달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한국 매체 간담회에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들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 작가가 쓴 대사 중엔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동행’이다” “실전은 기세야, 기세”가 남았다.  
 
세계적으로 패러디 열풍이 분 ‘제시카 송’ 가사도 한 작가가 함께 썼다. 5일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 한 작가는 “영화상 나온 부분은 봉 감독님이 이미 시나리오에 명시해놓았다. 그 뒤 가사들을 2, 3절까지 한 번 적어보라 했다”고 전했다.  
 
‘기생충’의 이번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호명은 아시아계로선 네 번째다. 2012년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각본을 겸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2016년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피트 닥터 감독과 함께 호명된 필리핀계 로니 델 카르멘, 2018년 할리우드 영화 ‘빅 식’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 주연을 겸한 파키스탄계 쿠마일 난지아니에 이어서다. 그러나 아시아계가 수상한 적은 아카데미 91년 역사상 한 번도 없다. ‘기생충’이 수상할 경우 최초가 된다. 
 
9일 LA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엔 감독이 각본을 겸한 작품이 후보작 5편을 채웠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샘 멘데스 감독(공동 각본)의 ‘1917’,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나이브스 아웃’을 제외하곤 모두 작품상·감독상 후보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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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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