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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정부, 21세기병원 방치···환자들 "생필품 달라" 쪽지 호소

중앙일보 2020.02.07 05:00
6일 오후 전남 나주시 산포면의 한 마을. 마을 입구에 설치된 방송 스피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증상이 나타나면 보건소 등에 상담을 바란다"는 방송이 나왔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에게 마을잔치 같은 소식을 알리던 스피커가 신종 코로나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방송이 된 것이다. 이 마을은 16번째 신종 코로나 확진자인 A씨(42·여)의 친정 식구들이 사는 곳으로 오빠 B씨(46)는 이날 22번째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경로당 폐쇄…방역물품 보급소로 바뀌어
마을방송에선 "신종 코로나 주의" 당부
"사우나 갔다"…동선·근무지는 가짜뉴스
21세기병원 134명 음성…관리부실 논란

6일 오전 찾은 전남 나주 산포면의 한 마을 경로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임시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1월 25일 16번째와 22번째 확진자 가족이 이곳 마을 모친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오전 찾은 전남 나주 산포면의 한 마을 경로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임시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1월 25일 16번째와 22번째 확진자 가족이 이곳 마을 모친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마을잔치 하려다…코로나 때문에 취소

이날 찾은 마을 곳곳은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경로당은 폐쇄됐고, 거리 곳곳은 인적이 끊겨 적막감이 감돌았다. 굳게 잠긴 경로당 입구에는 "신종 코로나 예방을 위해 경로당을 방역물품 배정 장소로만 사용하니 관계자 외 출입은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광주광역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 25일 친모와 오빠 B씨 등이 사는 이 마을의 어머니 집을 찾아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18번째 확진자인 딸 C씨(21·여)를 포함한 자녀 3명과 남편 등 A씨 일가족 5명과 B씨 부부 등 모두 7명이 함께 했다. 
 
이후 지난 4일 A씨가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이튿날인 5일에는 딸 B씨, 6일에는 A씨의 오빠인 C씨가 차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마을 이장은 "지난 3일이 농협 조합원들에게 출자·배당금을 나눠주는 날인데 조합원마다 식비가 지원돼서 큰 잔치를 열려고 했었다"며 "그런데 3일 음식을 다 만든 점심쯤 갑자기 신종 코로나 때문에 일정을 모두 취소하라는 통보가 와 간단히 떡국만 먹고 다들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날 마을잔치에는 A씨 모친만 참석했으며, A씨와 C씨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A씨 모친은 지난 4일 신종 코로나 진단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와 능동감시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된 상태다.
 
6일 전남 나주 산포면의 한 마을에 위치한 딸기 하우스를 취재진이 촬영하고 있다. 이곳은 22번째 확진자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현재는 딸기가 모두 수확된 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6일 전남 나주 산포면의 한 마을에 위치한 딸기 하우스를 취재진이 촬영하고 있다. 이곳은 22번째 확진자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현재는 딸기가 모두 수확된 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16번 확진자 딸에 이어 오빠까지 확진

보건당국은 이날 마을잔치에 A씨와 B씨, C씨가 참석하지 않은 데다 C씨 역시 마을 주민들과 접촉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날 만난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서는 신종 코로나에 대한 우려와 공포심이 역력했다. 주민은 "어제 사람들이 와서 한참 방역을 하고 떠났다"며 "신종 코로나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 발길도 뚝 끊겼다"고 했다.
 
마을에 있는 C씨 부부의 딸기 하우스에서도 신종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C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문을 닫아건 것이다. 마을 이장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는 C씨 부부뿐이다.  
 
최근 C씨가 딸기를 납품하기 위해 방문한 나주혁신도시도 술렁이고 있다. 이중 C씨가 지난 2일 딸기를 납품한 나주혁신도시 내 농협마트 측은 오는 8일까지 영업을 자진 중단키로 했다. C씨는 이날 낮 12시9분부터 16분까지 약 7분간 농협마트에 머물렀으며, 당시 마트에는 손님 10여 명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18번째 확진 환자가 지난 5일 광주광역시 21세기병원에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18번째 확진 환자가 지난 5일 광주광역시 21세기병원에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16번 모녀 입원 병원…134명 전원 음성 '안도'

광주·전남 지역에서 3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지만, A씨 모녀가 입원했던 광주 21세기병원에 대한 추가 확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원 의료진과 환자 134명에 대한 신종 코로나 검사 결과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아서다. 현재 이 병원에는 A씨 모녀와 같은 층에서 생활했던 환자 23명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1인실에 격리 조치돼 있다.
 
하지만 이날 21세기병원에서는 생필품이 떨어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리 부실 논란이 일었다. A씨 모녀와 같은 층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고위험군으로 격리해놓고도 정작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입원환자 등에 따르면 해당 병원에 화장지나 치약, 세면도구 등 생필품이 제때 보급되지 않아 환자들이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마실 물이 떨어지면서 환자 대부분이 복도 한쪽에 놓인 공동 정수기를 사용해왔다. 병원 내부 청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화장실은 휴지가 널려있고, 휴지통에 든 쓰레기도 제때 처리되지 않고 있다. 
 16번·18번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해 임시 폐쇄된 광주 광산구 21세기 병원에서 한 환자가 질병관리본부의 안내를 받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6번·18번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해 임시 폐쇄된 광주 광산구 21세기 병원에서 한 환자가 질병관리본부의 안내를 받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격리 환자들…관리자 없고 생필품 떨어져

병원 내에 관리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병실 간 출입이나 환자 간 접촉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없어 격리된 환자들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것이다.
 
또 당초 보건당국은 "환자들을 1인1실로 격리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도 1인 격리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자들이 사실상 공동 샤워장과 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오히려 신종 코로나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보건당국은 뒤늦게 광산구청 공무원을 21세기병원에 투입해 환자들을 관리토록 했다. 또 자가격리 중인 청소인력이 출근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 청소대행업체를 선정해 투입키로 했다. 부족한 생필품은 지자체 등이 이날 오후 화장지와 치약, 라면 등을 병원 내로 공급해 급한 불은 끈 상태다.
6일 오후 광주 광산구 광주21세기병원에서 3층에 격리된 환자와 보호자가 필요한 생필품을 종이에 적어 창문 너머로 내보이고 있다. 전남대병원으로 옮긴 18번째 확진자와 함께 3층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병실에 남아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광주 광산구 광주21세기병원에서 3층에 격리된 환자와 보호자가 필요한 생필품을 종이에 적어 창문 너머로 내보이고 있다. 전남대병원으로 옮긴 18번째 확진자와 함께 3층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병실에 남아있다. [연합뉴스]

 

"XX마트 근무자" 16번 환자 경로는 가짜뉴스

한편, 16번 확진자인 A씨의 이동경로 및 근무이력 등과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된 글들은 모두 거짓인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시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A씨가 사우나와 터미널, XX마트, 극장, 백화점, 아웃렛을 방문했고 XX마트 직원이다’는 글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시는 A씨의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휴대전화 GPS, 폐쇄회로TV(CCTV) 등을 확인한 결과 가짜뉴스라고 결론 내렸다. 앞서 지난 4일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SNS상에는 ‘16번 환자는 광산구 XX아울렛에서 근무했다. 태국에서 귀국한 후에는 광산구의 사우나와 극장, 광산구 XX마트, 광천터미널, XX백화점 등을 다녔다. 접촉자는 1318명’ 등의 글이 퍼져나갔다.  
 
광주광역시·나주=최경호·진창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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