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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닥치고 인생극장

중앙일보 2020.02.07 00:43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닉슨 하면 케네디와의 중언부언 토론이나 워터게이트 사건 때의 실언 시리즈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젊은 시절 닉슨은 당대의 선동가였다. 매카시즘적인 정치 선전으로 유권자 마음을 뒤흔들어 ‘교활한 딕’으로 불렸다. 그를 부통령으로 밀어 올린 ‘체커스 연설’이 있다.
 

조국 감성팔이와 퇴장까지 닮은
선거용 인재 이미지팔이 이벤트
정치 쇄신커녕 희화화만 키운다

“1만8000달러의 후원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 용도론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받은 건 강아지 한 마리뿐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점점이 섞여 여섯 살 딸이 ‘체커스’라고 이름 붙였는데 두 딸이 너무 좋아한다. 우린 어쨌든 우리 가족인 체커스와 함께 살고 싶다.”
 
곤경에 빠진 닉슨은 이런 TV 연설로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어린 딸의 애완견 문제로 뒤집어 버렸다. 미인(Beauty), 동물(Beast), 아기(Baby)의 3B를 노출시키라는 게 광고 공식이다.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공식에 충실한 정치 기술이 먹혀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인재였다가 ‘데이트 폭력’ 논란에 휩싸인 ‘20대 효자’를 보면서 닉슨의 되치기 신공이 떠올랐다. 흐지부지되는가 싶더니 이 분이 ‘강제 성관계는 없었고 여자 친구가 어머니를 욕해서 헤어졌다’고 주장해 불씨를 되살렸다. 즉각 여자 친구의 재반박이 나왔고, 오갔던 문자 메시지가 폭로돼 잡음이 확 커졌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영입 인재는 줄줄이 논란이다. 변호사 미등록, 논문 표절, 스펙용 창업에다 판사들의 거짓말 주장까지 보태졌다. ‘황운하·임종석 구설’은 완전히 별도다. 선거 때면 찾아오는 ‘떴다방 이벤트’로 보기엔 너무 잦고, 출구가 감수성 자극 외길인 게 특징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감성 홍보를 빼닮았다.
 
우한 폐렴 사태도 마찬가지지만 사고만 나면 청와대는 ‘국민 안전에 타협 없다’ ‘과할 정도의 선제 조치’를 다짐한다. 충북 제천에서 큰 불이 나자 “대통령은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울먹이셨다”고 청와대가 상세하게 소개했다. 말과 글이 그랬다.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진 건 없었다.
 
이번 총선 인재 영입은 유독 발표마다 탈이 나는 중이다. 왜 그런 것인가. 대놓고 ‘떴다방 이벤트’로 달렸기 때문이다. 당이 내세운 영입 콘셉트 자체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온 젊은 세대’다. 말하자면 ‘닥치고 인생극장’이다. 정치할 준비라곤 전혀 안 돼 있는 2030을 앞뒤 보지 않고 줄 세웠다. 포장이 전부다.
 
‘시스템 공천’이라는데 시스템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당의 인재영입위원회 자체가 베일에 가려 있다. 이해찬 대표가 위원장이지만 위촉된 위원이 없는 깜깜이 기구다. 이런 식의 발굴 방식이나 충원 구조라면 결국 당권파의 ‘내 사람 늘리기’ 용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힘들다.
 
‘막장 국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자면 물론 새로운 인재가 국회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 하지만 스토리가 되는 인물만 찾는 건 포퓰리즘이다. 최소한 정치가 무엇이지 알아야 상징성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홍보용 인재 영입이 최고조였던 20대 국회를 보면 안다. 바둑이건 벤처건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낸 역대급 영웅을 죄다 끌어모았다. 결과는? ‘최악의 국회’란 오명을 남겼다.
 
정치는 전문직이다. 어떤 직업보다 높은 수준의 열정과 식견,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전문성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인생극장형 이력이 감성 홍보에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직 그것뿐이라면 정치하겠다고 나선 새 피도, 정치도 서로 함께 고생이다.
 
‘정치는 모르지만 분별없이 살진 않았다’는 20대 효자 소년이다. 떠나는 순간까지 조국 전 장관을 빼닮았다. 당은 어슷비슷한 인재를 대표 선수로 내세웠다. 조국 사태는 괜히 일어난 게 아니다. 감성팔이 인생극장으로 일어선 닉슨은 감성팔이 홍보를 하다 쫓겨났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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