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혜리의 시선] 번지수 틀린 대통령의 감사전화

중앙일보 2020.02.07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마지막 전세기 333명 무사 탑승 후 펑펑 울었습니다. (아내가) 9살, 7살 천둥벌거숭이 둘 데리고 비행기 타는데 잘 가라는 배웅인사도 못하고, 비행기에서는 편한 자리는커녕…. 고생고생해서 전세기 마련했는데 밥 숟가락 얹으려고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이 비서 둘 데리고 비행기 타서 내리지도 않고 다시 타고 가서 자리가 모자란 탓도 해보지만….”
 

거짓이 된 우한 영사 ‘숟가락’ 주장
자기 공 키우느라 기업 매도한 셈
탑승 자청 대한항공 직원이 공신

지난달 30일과 31일 밤, 대한항공 전세기가 1,2차에 걸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폐렴)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의 교민 700여 명을 태우고 돌아왔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잘 도착했나 싶었는데 엉뚱한 데서 논란이 빚어졌다. 현지에서 실무를 담당한 정다운 경찰 영사가 1일 SNS에 이렇게 자기들 고생했다는 생색의 글을 올리며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을 비난하면서부터다.
 
‘눈물을 쏟았다’는 감성적 글 덕분인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는 “국민들도 모두 감동하고 있다”는 격려 전화를 받았지만 정작 세간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오히려 비판이 쏟아지자 정 영사는 “1차 전세기에 탑승할 때 허리디스크 수술해서 오래 앉아계시기 힘든 분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배려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감정을 조원태 회장님 탓을 한 제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이 해명을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조 회장이 탑승하는 바람에 몸이 불편한 승객이 비즈니스석에 배정받지 못했나. 무엇보다 조 회장은 정말 숟가락 얹기를 한 것인가. 조 회장이 탑승한 1월 30일 밤 1차 전세기에서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해봤다. 확인한 사실부터 말하자면 전부 사실이 아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현지 영사관 권한으로 얼마든지 미리 비즈니스석에 태울 수 있었고, 조 회장의 동승은 숟가락 얹기가 아니라 동요하는 승무원을 달래기 위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대한항공이 띄운 우한 전세기는 일등석 12석, 비즈니스석 24석을 포함해 총 40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보잉 747-400 기종이었다. 이날 일등석엔 발열 승객 10명을 격리 차원에서 태웠다. 그리고 비즈니스석 24석 중 12석은 외교부 2차관을 비롯해 서울에서 간 신속대응팀 공무원들이 앉았고, 대한항공에선 조 회장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데려간 정비사, 그리고 언론 대응을 위한 홍보실 직원 등 총 4명이 동승했다. 조 회장 비서는 없었다.
 
전세기 관행상 운항하는 대한항공이 아니라 전세를 낸 측이 자리 지정을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외교부가 자리 배치를 맡았다. 이코노미석은 물론 정부 신속대응팀과 대한항공 측 인원을 제외하고 비즈니스석에 탄 8명의 승객 명단을 서울 외교부에서 미리 지정했다는 얘기다. 외교부 대변인에게 무슨 기준으로 승객을 골랐느냐고 물었더니 “대한항공 회장이 탔는데 외교부가 전세 냈다고 우리 마음대로 자리 배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마치 자리 배정을 대한항공이 했다는 투였다. 대한항공은 자리 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전하자 몇 시간 뒤 실무진으로부터 답이 왔다. “정부 신속대응팀 공무원 대부분 이코노미석에 앉았고, 외교부는 미리 승객들 몸 상태를 확인받아 불편한 순으로 비즈니스석에 교민 18명을 배정했다”는 답변이었다. 동승자 증언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 승객 등 대부분 건강해 보였다길래 재차 확인하니 “원래 2차 전세기에 타기로 한 사람 가운데 강력하게 1차 전세기 탑승을 원하는 사람을 1차 전세기로 실어오다 보니 이코노미석에 자리가 없어 비즈니스석에 8명을 배정했다”는 전혀 다른 설명이 나왔다. 또 “현지에서 일부 조정이 있었다고만 들었기에 영사관 직원 가족이 비즈니스 석에 탔는지 여부는 본부에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좌석 배정은 그렇다 치고 조 회장은 왜 동승한 걸까. 여기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전세기를 띄우기 2~3일 전까지도 대한항공은 승무원을 확보 못해 발만 굴렀다. 처음 의사를 타진한 승무원 모두가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때 승무원 출신인 대한항공 노사협력실 류모 차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상 근무자인 그가 “내가 가겠다”고 나섰고, 이게 발단이 돼 노조 대의원 등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보고를 받은 회사 간부(객실 본부장)와 조 회장이 승무원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서 1차 전세기에 동승해 방호복을 입고 교민을 맞이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 영사는 자기 공을 키우느라 엉뚱하게 민간기업을 매도한 것으로도 모자라 해명마저 거짓으로 한 셈이다. 이러니 대통령의 감사 인사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안혜리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