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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82년생 부티지지가 뜬 이유

중앙일보 2020.02.07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시내 링컨 고교에 차려진 ‘68선거구’. 이곳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코커스(당원대회)를 취재했다. 각 후보 이름을 적은 배너 뒤로 지지자들이 모여 앉았다. 한눈에 봐도 피트 부티지지 후보 쪽에 사람이 가장 많았다.
 
참가자 376명 중 97명이 1차 투표에서 부티지지를 선택했다. 버니 샌더스(92표)와 조 바이든(57표)을 앞선 1위였다. 부티지지는 주 전체로도 선두(97% 개표)를 달리고 있어 대선 후보에 바짝 다가섰다.
 
그의 지지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이 많았다. 동성과 결혼한 성소수자이자 ‘밀레니얼 세대’인 1982년생 최연소 후보에게 청년층이 몰릴 것이란 통념은 빗나갔다. 45~64세가 가장 많이(26%) 선택한 후보가 부티지지였다(워싱턴포스트 조사).  중산층 거주지인 교외 주택가에서 표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1위를 달리는 피트 부티지지(왼쪽)와 남편 채스틴.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1위를 달리는 피트 부티지지(왼쪽)와 남편 채스틴. [AP=연합뉴스]

 
이들은 왜 정치 거물 대신 아들·조카뻘인 정치 신인을 선택했을까. 바이든은 이번이 세 번째, 샌더스는 두 번째 대선 도전이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냈다. 샌더스는 하원에서 16년, 상원의원 14년째다. 반면 부티지지는 인디애나주 소도시 사우스벤드 시장이 정치 경력 전부다. 인구 10만명 규모로, 보령시와 밀양시 중간쯤 되는 곳이다.
 
경쟁자들과 달리 중도와 통합을 이야기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유세 내내 “반으로 갈라진 미국에서 서로를 물어뜯는 극단적 대립은 더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지 정당이 없는 41%의 미국인과 공화당원 일부를 설득하겠다고 다짐했다. 급진적 공약과 거리를 뒀다. 샌더스가 원전 폐쇄를 외칠 때 지지 의사를 밝혔다. 부유세를 신설하고 나랏돈을 더 써서 소득 양극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경쟁자들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
 
급격한 변화를 한꺼번에 시도하다 정권을 되찾을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지 않은 민주당원들 바람이 반영됐다. 진자의 운동처럼 너무 멀리 밀었다가는 반동이 더 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권에 피로를 느낀 민심이 ‘이젠 그만하라’고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편을 가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수십 년 정치해 온 민주당 거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식도 깔렸다. 
 
그 다음날 미 의회에서는 극단적 대립을 보여주는 장면이 연출됐다. 국정 연설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 뒤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설문을 네 번에 걸쳐 북북 찢어 던져버렸다. 기성 정치인 대신 새로운 얼굴에 미국인들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판을 한 번 확 바꿔보자는.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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