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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추미애가 문제삼은 ‘검사동일체’, 검찰 악습일까

중앙일보 2020.02.05 11:0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 참석해 당부말을 전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 참석해 당부말을 전하고 있다. [뉴시스]

 
“검사동일체 원칙은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지만, 검찰조직 내 아직도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신임 검사들에게 검사동일체 원칙을 박차고 나가라면서 한 말입니다.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한자 그대로 풀면 ‘검사는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 용어는, 언뜻 보면 검찰의 폐쇄적인 집단주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말 상관의 부당한 명령도 복종하는 구시대의 악습에 불과할까요.
 

상관 말에 복종 의미하나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전출되는 검사들에게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전출되는 검사들에게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우선 검찰이 설명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정확한 의미는 ‘모든 검사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계층적 조직체를 형성하고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판사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판사 개개인은 독립된 사법기관입니다. 각자의 법률과 양심에 따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재판 도중에 판사가 바뀌는 경우 이전까지의 재판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이전 재판부의 심증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고 새 재판부가 직접 체험하고 검증한 증거를 토대로 판결합니다.

 
검사는 다릅니다. 수사나 재판 도중에 검사가 교체돼도 그대로 진행됩니다. 종전의 검사와 새로운 검사는 ‘동일체’이기 때문입니다. 검사 한 명이 마음대로 기소를 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할 수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상급자의 명에 따르되, 정당한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해야 하지요.

 
다시 말해 검사동일체는 단순히 상명하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소속 검사에 대한 상급자의 지휘ㆍ감독권과 직무승계권, 직무이전권 등이 어우러진 총체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년 전 폐지됐나

검사동일체라는 용어가 2004년에 법전에서 자취를 감춘 건 맞습니다. 하지만 해당 원칙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2004년 개정 이전(위)의 검찰청법 조문과 개정 이후(아래)의 검찰청법 조문. [국가법령정보센터]

2004년 개정 이전(위)의 검찰청법 조문과 개정 이후(아래)의 검찰청법 조문. [국가법령정보센터]


 
2004년 이전의 법조문에서 달라진 점은 ‘검사동일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표현을 ‘상급자의 지휘ㆍ감독에 따른다’로 바꾼 정도입니다. 앞서 말한 직무승계권과 직무이전권도 여전히 있습니다. 검사의 ‘이의제기권’이라는 세부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검사동일체 원칙은 일부 표현과 세부적인 내용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폐지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악습인가

이 원칙은 ‘동전의 양면’이라 평가받곤 합니다. 과거 검찰 내 상급자가 이를 악용해, 부하 검사의 의견을 찍어 누르고 자신의 입맛대로 수사를 지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사동일체 원칙 자체를 없애는 건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법조인들은 말합니다. 검사 개인이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정치색이 짙은 검사라든지, 혼자 튀는 판단을 하는 검사가 사건을 좌우할 수 있게 되면 그 피해는 일반 시민들에게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추미애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각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따를 필요 없이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판사 등 특수 사례를 제외하곤 어느 조직이나 어느 정도의 상명하복 논리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나 독일, 미국 검찰도 검사동일체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진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사진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부하 검사의 의견이 그대로 묵살되는 걸 막기 위한 제동 장치도 존재합니다. 앞서 언급한 ‘검사의 이의제기권’ 입니다. 2017년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임 검사는 상부의 지시를 어겼음에도 이 이의제기권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추미애는 왜 

추 장관의 발언 자체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로 보입니다. 기계처럼 조직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검사 개개인이 소신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발언을 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서초동에서 ‘럭비공 검사’로 지목되는 이가 있습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입니다. 최근 그가 청와대의 하명수사ㆍ선거 개입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들 기소를 유일하게 반대한 사실이 알려졌었지요. 윤 총장의 기소 결재 지시에 수차례 불응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검장이 혼자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훗날 재판에서 이 지검장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추 장관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이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라는 점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이 지검장 개인에게 힘을 실어 줌으로써, 수사나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이 나옵니다. 얼마 전 인사 발령으로 나가는 검사들에게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한 윤석열 총장을 저격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추미애 장관의 실제 의도가 어땠든,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진행중인 이상 그의 발언 하나에 서초동이 들썩일 수밖에 없습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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