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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시진핑 체제 위기로 이어지나

중앙일보 2020.02.05 00:33 종합 24면 지면보기

중국 지도자의 위기 대처와 ‘현장 리더십’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은 지난달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접견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은 지난달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접견했다. [신화=연합뉴스]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의 확산이 세계를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와 사회와 정치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확정적 평가는 어렵지만 특히 병원의 진원지인 중국의 시진핑 체제에 어떤 식으로든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진다.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행사했던 시진핑 위기 상황서
최고책임을 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도 가지 않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2003년 사스 위기 때의 장쩌민과 대비
책임을 리커창에게 떠넘기기 위한 행위로 생각해
그런 인식 확산된다면, 시진핑의 권위는 한순간에 무너져.”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당의 극소수 지도자에 의하여 블랙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그런데 그것은 반쪽만 진실이다. 최종적인 결정이 블랙박스에서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결정에 대중의 여론과 인식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중국공산당의 ‘군중노선’이 그것과 관련된다. 군중노선은 당이 대중을 이끌고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현장의 리더십’이다.
 
‘현장의 리더십’은 지도자가 현장에서 조사와 경험을 통하여 대중과 문제를 이해하고 대중과의 일체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러한 ‘현장의 리더십’은 창당 초기인 1930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조사없이는 발언권 없다(没有調查就没有發言權)”고 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현장의 리더십’은 특히 위기 상황에서 중요하다. 위기 대처과정에서 형성된 이미지가 지도자 개인의 위신뿐 아니라 공산당의 대중적 위신과 권위를 제고시킨다. 그렇게 형성된 대중적 이미지가 최고위층의 블랙박스 내부에서의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권력 자원으로 작용한다.
  
원자바오와 장쩌민의 상반된 위기 대처
 
원자바오 중국 전 국무원 총리(왼쪽 둘째)가 2008년 5월 대형 지진이 발생한 원촨 현장을 찾아 구조 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원자바오 중국 전 국무원 총리(왼쪽 둘째)가 2008년 5월 대형 지진이 발생한 원촨 현장을 찾아 구조 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위기에서 ‘현장의 리더십’을 가장 잘 보여준 지도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총리이다. 원자바오의 ‘현장의 리더십’은 2008년 원촨(汶川)대지진 때 위험 상황에서 구조를 머뭇거리는 군대를 향해 “인민이 너희들을 기르고 있으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비판으로 아직도 중국인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다. 이에 앞서 원자바오가 중국의 이인자로 부상한 것은 1998년 중국의 전역을 휩쓴 대홍수 대응 과정에서의 역할에 힘입은 것이었다. 당시 원자바오는 농업담당 부총리로 홍수대책위원장이었다. 양쯔강의 둑을 사수하기 위해 메가폰을 잡고 지휘하는 모습이 중국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것이 2002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원 총리로 승진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남루한 점퍼를 10여년 입고 재난의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원자바오를 홍콩에서는 “연기의 황제(影帝)”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위기의 현장에서 인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그만큼 진정으로 느끼도록 보여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쩌민(江澤民)은 2003년 사스가 유행할 때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의 전례대로 2002년 정치국 상무위원 등 다른 당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했다. 중앙군사위 주석은 군대에 대한 최고 통수권자이다. 군대는 위기를 최전선에서 막는 기관이다. 당연히 군대의 최고통수권자도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스가 유행하자 원자바오와 후진타오는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서 관련자들을 위문하면서 사태 수습을 지휘했다. 그렇지만 장쩌민은 당시 중국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라가 등껍질 속에 머리를 숨기듯” 상하이에 숨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77세였던 장쩌민은 특히 노인에게 치명적인 사스 감염이 두려워 숨어있기만 했다는 것이었다. 사스 대응과 관련된 대중의 장쩌민에 대한 인식은 중앙군사위 주석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최악이었다.
 
장쩌민은 2004년 16기 4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난다. 장쩌민의 퇴임은 스스로가 사직을 요청하는 형식이었다. 덩샤오핑이 1987년 중앙군사위 주석만을 유지하는 반(半)퇴직을 하였다가 2년 후인 1989년에 물러났던 전례에 따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스 대응과정에서의 위신의 실추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쩌민은 가능한 한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2004년 퇴임은 자신의 희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장 리더십’ 안보이는 시진핑
 
27일 리커창 총리가 우한의 진인탄 병원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7일 리커창 총리가 우한의 진인탄 병원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은 시진핑 체제에 어떤 영향은 미칠까.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점에서 시진핑 체제를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보인다.
 
우선,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시진핑 시기 정치체제 변화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시진핑 체제는 권력구조를 집중화하고 관리체계를 강화하였다. 개혁이후 분권화로 인한 권력 내부의 갈등과 임계점에 이른 개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우셴왕(周先旺) 우한시장이 중국중앙(CC) TV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문제가 이렇게 확산된 것은 중앙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제때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집권화가 효율성을 제고시킨 것이 아니라 긴급한 문제에 대한 지방의 의사 결정의 자율성을 막아 문제해결을 지연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시진핑 시기 권력 집중화에 대한 비판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시진핑의 역할도 문제다. 시진핑 집권 이후 당·정·군의 최고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영도소조의 조장으로서 권력을 집중시켰다. 그렇지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염 문제에 대한 영도소조는 리커창이 조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리커창은 직접 우한을 방문하여 상황을 해결을 지휘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행사했던 시진핑이 막상 위기 상황에서는 공식적인 최고책임을 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도 가지 않고 있다. 이는 위기에 대응하는 공산당의 ‘현장의 리더십’의 전통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시진핑 시기의 작풍에도 벗어난 것이다. 시진핑이 아무리 자신이 최고 책임을 맡아서 지휘한다고 말하더라도 ‘현장’에 가지 않고 중난하이에 앉아서 큰소리만 낸다면 중국 인민들은 2003년 사스 위기 때의 장쩌민을 연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리커창에게 사태 해결의 역할을 위임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시진핑의 권위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 독재라고 일컬어 질 정도로 잘 갖추어진 통제 시스템으로 작용하던 중국의 정보통신(IT)발전이 이번 사태에서는 당에 그렇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당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와는 다른 정보가 위챗과 같은 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의 차이는 당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 인신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로 인한 인민의 신뢰 상실은 당과 시진핑 체제에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기자는 바이러스 확산은 중국의 독재에 따른 대가를 세계가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치체제의 특성에서 볼 때 공산당은 위기를 극복해 낼 지라도 시진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키워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중국공산당 지도부 교체가 이루어진 2002년 16차 당 대회 직후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호흡기 질병이다. 2003년 3월 양회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성립된 때를 전후로 사스가 중국 내외에 확산하였으며 정보 공개도 이루어졌다.


영도소조
중국은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당과 정부 또는 각 부문이 협의하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도소조를 둔다. 그 중 중국공산당 중앙에 설치하는 영도소조가 중앙영도소조이다. 시진핑 시기 업무 분담 영역이 정해지지 않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신설 중앙영도소조는 대부분 시진핑이 조장을 맡았다.
 
안치영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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