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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하니 있으면 아이디어가 불쑥? 멍 때리기의 역설

중앙일보 2020.02.04 15: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67)

멍 때린다는 말은 신조어다. 나같이 연배가 있는 사람에게는 생경한 단어다. 처음에는 멍청하다는 말뜻과 사촌쯤 되는 줄 알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는 상태, 넋을 잃은 상태, ‘뻥찌다’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되어있다.
 
그래도 뭔가 멍청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지금까지 멍하게 있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시각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최근 멍한 상태의 생리적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멍 때리기'가 유행이다. 2014년부터 매년 대회도 열린다. 사진은 '2019 한강멍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멍때리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우리나라에도 최근 '멍 때리기'가 유행이다. 2014년부터 매년 대회도 열린다. 사진은 '2019 한강멍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멍때리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멍 때릴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뇌 속의 상태가 리셋(reset)되어 머릿속이 산뜻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이 아무런 인지활동을 하지 않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부위는 생각을 깊이 할 때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기까지 한단다.
 
뇌의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그리고 두정엽이 이 영역을 담당하고,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 명명하고는 이는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DMN은 일과 중에서 몽상을 즐길 때나 잠을 자는 동안에 활발한 활동을 한다면서, 이른바 외부 자극이 없을 때 그렇다는 주장이다.
 
보통 생각할 때는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 고민해야 좋은 해결책이 나오는 줄 알고 있지만, 불현듯 지하철에서나 운전하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단다. 실제로 미국의 발명 관련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성인의 약 20%는 자동차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 통계다. 뉴스위크는 아이큐를 쑥쑥 올리는 ‘생활 속 실천 31가지 요령’ 중 하나로 ‘멍하게 지내기’를 꼽기도 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이자 뇌 영상 전문가인 스리니 필레이(Srini Pillay) 박사는 저서 『멍 때리기의 기적(원제: Thinker Dabble Doodle Try)』에서 ‘멍 때리기’가 어떻게 인지적 평온을 가져오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창의성을 키워주고, 기억력을 강화시키고,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고 설명한다. 더욱 효율적인 아이디어와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멍 때리는 시간, 즉 ‘비 집중 모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서인지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멍 때리기가 유행이다. 2014년부터 매년 대회도 열린단다. 참가자들은 세 시간 정도 정좌하여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낸다. 휴대폰 사용은 물론 잡담, 웃음, 독서, 춤추기, 노래, 시간 확인, 졸기, 잠자기, 주최 측이 준비한 음료 외의 다른 음식물의 섭취 등을 금지하고 오로지 얼마나 멍청한 표정을 짓느냐가 득점 포인트란다.
 
채점도 관전 포인트다.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를 합산해서 정한다 했다. 15분마다 심박 수를 재고 가장 안정적인 수치를 나타내는 사람이 높은 기술점수를 받고, 관중이 제일 멍청한(?) 자세와 표정을 짓는 참가자를 투표로 평가하여 예술점수를 매긴단다. 참 우스운 대화라고 말하고 싶지만 멍 때리기가 학문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으니 고개를 끄떡여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뇌 영상 전문가인 스리니 필레이 박사는 "더욱 효율적인 아이디어와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멍 때리는 시간, 즉 ‘비집중 모드’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진 pixnio]

뇌 영상 전문가인 스리니 필레이 박사는 "더욱 효율적인 아이디어와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멍 때리는 시간, 즉 ‘비집중 모드’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진 pixnio]

 
멍 때리기와 유사(?)한 것에 명상(瞑想)과 선(禪)이 있다. 비슷하다고 하면 관계자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듯도 하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달리 비교할 재간이 없다. 명상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적 평정을 얻는다는 것인데, 멍 때리기의 학문적 뒷받침으로 이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혹자는 멍 때리기의 천박(?)한 행동과 고결한 명상을 어떻게 같이 볼 수가 있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마는 필자의 무식한 소치로 봐줬으면 좋겠다.
 
한편 불교에서 중히 여기는 좌선(坐禪)과 뭐가 다른가 하는 것도 따져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이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것이라고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는 알고 있다. 참선 중에 어떤 깊은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그냥 멍하게 앉아만 있는 것인지는 필부에게 알 길이 없지만 어딘가 일맥이 상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짐작건대 뇌를 리셋하여 상념을 잊고 머릿속을 디폴트하여 무상무념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닐는지.
 
이렇게 오랫동안 치열하게 용맹정진하여 득도(得道)하고 돈오와 돈수(頓悟 頓修)를 논하고 구극의 경지에 이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성철스님법어)”라는 선문답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에게는 이해 불가하지만 선승에게는 이것이 오래 붙들고 씨름하던 ‘화두’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필자 생각을 바꿔야겠다. 뇌세포의 사멸(치매)을 예방하려면 멍청하게 있지 말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고스톱도 치면서 뇌 체조를 하라는 평소의 주장을. 과거에는 이게 학문적 정설이었고 상식이었는데 말이다. 혹시나 모른다. 어쩌면 뇌의 리셋되는 부위와 치매를 관장하는 부위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필자 그냥 멍하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고로 확신은 유보한다가 맞지 않을까 싶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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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필진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 시중에는 건강식품이 넘쳐나고 모든 식품이 약으로 변했다. 허위와 과대광고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함량 부족의 전문가가 TV에 붙박이로 출연하면서 온갖 왜곡정보를 양산하고 소비자를 기만한다. 음식으로 치료되지 않는 질병이 없고 그들의 말대로라면 질병에서 해방될 것 같은 분위기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들을 쇼닥터로 지칭하고 규제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이제 그 도를 넘겼다. 노후에 가장 관심사인 건강관리를 위해 올바른 지식을 알리고 시중의 잘못된 식품에 대한 왜곡된 상식을 바로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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