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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도대체 뭣이 중한가

중앙일보 2020.02.04 00:23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무엇이 범죄가 되고 안 되는지에 대한 집단 감각이 요새처럼 무뎠을 때가 있었나 싶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버금가는 ‘법적 더듬이 상실 바이러스’가 만연한 탓일까. 덩달아 도덕적 불감의 증상도 고황(膏肓·고질병)에 들었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난무한다.
 

조국 혐의 별것 아니라는 주장
바탕엔 무뎌진 집단 범죄 감각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에 공감

국내에서 범죄의 유형이 확 바뀐 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다. 이들을 단죄하려다 보니 이전의 금품 관련 범죄에서 직무범죄로 수사와 재판의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대기업과 정치권의 은밀한 뇌물 거래보다 행정부·사법부 공직자들의 내밀한 협조 관계, 직무 집행의 관행·월권·탈법이 ‘적폐’라는 이름으로 청산 대상이 됐다.
 
도통 쓸모가 없던 ‘직권남용죄’가 현장으로 소환된 배경이다. 이 죄를 자백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렵다. 검찰이 피 나는 수사를 통해 전 정권은 물론, 현 정부 고위 인사들까지 줄줄이 기소했지만 “내 잘못이오”라고 수긍하는 분이 없다. 그동안 관행이었고 죄가 되는 줄 몰랐다는 주장이 많다. 인사 불이익과 감찰 중단 지시가 재량 또는 적법 조치였다거나, 남용할 직권이 없었다는 변소도 나왔다. 얼마나 양태가 다양한지 대법원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7명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기준을 내놨다. 직권 남용죄(형법 123조)는 ①직권을 남용해 ②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적용되며 ‘의무 없는 일’의 판단은 관계 법령에 근거해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2018도 2236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는 것이다.
 
서소문 포럼 2/4

서소문 포럼 2/4

윤석열 검찰총장이 ‘강자의 불법’이라고 규정한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즉 공직선거법 위반죄의 피의자들도 쉽사리 자백하지 않는다. 드루킹 사건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물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13명도 부인 일색이다. 송철호라는 대통령 측근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청와대 참모들과 부처 장관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공정한 경쟁과 정의를 해치는 큰 범죄다. 과거엔 이런 일은 통치 행위의 외양을 띠어 잘 들키지 않았고 처벌 역시 없었다. 지금은 신종 범죄가 된다. 그러다 보니 피의자들이 한술 더 뜬다. 급기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사건의 본질을 “윤석열 총장과 부하 검사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기획한 수사”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얼핏 봐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손수 발탁한 윤 총장이 취임한 지 수개월도 안 지나 뭔 정치적 목적이 생겼다는 건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윤 총장이 특이하고 이상한 주사라도 한 방 맞았다면 모를까. 원래 보수 성향인데 이제서야 본색을 드러내고 야당 편을 든다는 건지, 스스로 대선 후보가 되려고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다는 건지 설명이 없고 근거도 없다. 그러니 수사를 받으라는데 정치의 틀에 가두려는 모순의 전략, 적반하장의 전술로 이해할밖에 도리가 없다.
 
가족 비리 관련 조국 전 장관 기소 건도 그렇다. 청와대는 저인망식 수사하더니 별것 없다고, 변호인단은 ‘인디언 기우제’라고 폄하했다. 법원에서 조 전 장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폐(※조국 폐족) 공사’ 사람들 입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의 죄가 가볍다고? 피의자가 이겼다고? 전국 학부모의 가슴을 후벼 판 자녀 입시비리 하나만으로도 중한 죄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시작도 최순실 모녀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였음을 잊었나. 무리한 별건수사였다고?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범죄에 대한 집단 감각이 무뎌진 계기는 따로 있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분노와 정의감이 앞서 성급하게 감찰·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검찰 돈 봉투 만찬’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김학의 성접대 재수사’ 등은 무혐의나 무죄로 끝났다. 조국 사태는 분수령이 됐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으로 민심이 양분되면서 범죄의 색깔이 탈색됐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진영의 문제로 치환되면서다.
 
지금 상황을 보면 문 대통령에게 “나(살아있는 권력)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자진 요청하길 바라는 건 헛된 꿈일 듯하다. 현 정부 들어 권력기관 힘빼기로 ‘민주화’가 진일보한 건 맞지만 ‘진짜 민주주의’ 착근은 아직 먼 나라 얘기 같다. 도대체 뭣이 중하고 뭣이 경하냐는 아우성도 자주 듣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사무치는 경험, 요즘 처음 해본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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