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정근의 이코노믹스] 경기 과열 때 쓰는 정책 써 불황 부채질하고 있다

중앙일보 2020.02.04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문 정부의 ‘경기 안정화 정책’ 역주행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경기는 길게 보면 장기 성장추세를 중심으로 회복→확장→후퇴→수축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두면 시장의 쏠림현상 등으로 과도한 버블이나 불황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불황에 따른 해결책은 경기 활성화 정책이다. 반면에 경기 확장기에는 경기억제 정책을 추진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경기 회복에 발목
올해 성장률 2%대 턱걸이도 힘겨워
우한폐렴 덮쳐 디플레이션 가속화
경기 수축기에 맞는 대책 전환해야

이것이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탄생한 케인스의 ‘일반 이론’(1936년) 이후 자리 잡은 경기 안정화 정책의 요체다. 주로 경기 확장기에는 경기과열 방지를 위해 금리 인상·환율 하락·세금 인상 등의 정책을 사용하고, 경기 수축기에는 경기침체 방지를 위해 금리 인하·환율 상승·세금 인하·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사용한다. 이런 정책은 파급 시차를 고려해 선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이 경기 안정화 정책을 잘 운용해 저물가 속에서 장기간 성장세를 지속하는 현상을 ‘골디락스’라고 한다. 최근 미국은 2009년 6월 이후 2019년 12월까지 126개월 동안 역대 최장 호황을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넘게 추진해온 경기 안정화 정책은 80년 역사의 거시경제학이 가르치고 있는 경기 안정화 정책과는 정반대여서 경제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의 획일적 도입,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획일적 정규직화가 대표적이다.  
 
또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 대책, 금리 인상, 법인세 인상, 상법·공정거래법·유통산업법·하도급법 등 반(反)기업적 규제 강화 정책들이 무더기로 도입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경기 확장기에 도입되는 정책 카드다. 특히 법인세는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는 와중에 한국만 올려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 경제 수축기 2년 넘게 지속
 
그 결과 경기가 위기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 수축기가 2년 넘게 지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낙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경기 수축의 낙폭과 기간을 보면 경기는 이미 위기 수준이다. 투자·수출 증가율은 장기간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고 소비도 낮은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성장률이 2% 턱걸이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총물가지수로 불리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변동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경기가 장기불황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도 창궐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경기 수축기에 맞는 정통 경기 안정화 대책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올바른 경기대책을 추진하려면 먼저 현재의 경기와 다가오는 경기를 어떻게 보는지 올바로 진단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부는 경기진단부터 틀렸다. 경기를 진단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통계청에서 작성하고 있는 경기종합지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다.  
 
경기변동 요인은 추세변동과 순환변동뿐만 아니라 기온 변화,명절 등에 기인하는 계절변동, 천재지변·파업 같은 불규칙 변동을 포함한다. 정확한 경기 동향 분석을 위해서는 적절한 통계분석 기법을 활용해 계절변동, 불규칙변동 및 추세변동을 제거하고 경기와 관련성이 높은 순환변동분만을 추출해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순환변동치가 바로 경기종합지수 순환변동치다. 경기동행을 살펴보는 것이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이고, 6개월 내외 경기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선행지표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다.
 
지금 한국 경제는 장기 대불황에 직면해 경기회복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 이 중대한 시점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경기종합지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지난해 7월 갑자기 개편되면서 기준의 명확성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개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런 결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통계청 역시 잠정적인 개편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통계 기준 바꾼 뒤 경기 낙폭 줄어
 
왜 논란의 소지가 있는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개편 전에는 경기종합지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계속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편 후에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추락을 멈추면서 주춤하고 있고,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반등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여기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수출은 지난달까지 14개월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고, 설비·건설투자도 2년째 마이너스 행진을 벌였다. 또 민간소비 증가율도 고용 악화, 가계부채 증가의 여파로 둔화하고 있다. 경기 안정화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이어지면서 경기 하락 추세를 되돌릴 요인이 없는데 어떻게 경기지수가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수 개편에서 경기 변동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추세치를 개편 전에는 1년 추세치를 사용하다 6개월 추세치로 바꾸었다. 이 부분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경기가 급락하는 상황에서는 추세치를 짧게 잡을수록 추세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순환변동치 낙폭이 적게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수 개편에서 추세치를 짧게 사용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교롭게도 경기가 개편 전에는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과 2017년 9월 같은 수치로 정점을 이룬 뒤 지속해서 하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개편 후에는 경기 정점이 2017년 9월로 변경되었다는 점도 오해를 살 만하다. 경기종합지수 개편과 작성은 경기대책에 기본이 되므로 정확성과 객관성을 몇 번이고 재검토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미국의 골디락스 경제
곰 세 마리가 집을 비운 사이 금발 소녀 ‘골디락스’가 들어와 가장 알맞게 식은 죽을 먹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곰 세 마리가 집을 비운 사이 금발 소녀 ‘골디락스’가 들어와 가장 알맞게 식은 죽을 먹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경제에서 골디락스(Goldilocks)란 너무 뜨거워서 거품이 생기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침체로 추락하지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숲속을 헤매던 금발 머리 소녀 골디락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오두막에 들어가 뜨거운 죽, 미지근한 죽, 차갑게 식은 죽 가운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죽을 먹었다는 동화에서 전래했다. 미국 앤더슨 포캐스트의 선임 경제학자 슐먼은 이 동화를 차용해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큼 과열되지도 않고, 경기 침체를 우려할 만큼 냉각되지도 않은 경제 상태를 골디락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물가상승에 대한 큰 부담 없이도 실업률 하락, 소비 확대, 경제 성장, 주가 상승을 실현할 수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2009년 6월 이후 126개월 동안 지속적인 성장세를 지속해 사상 최장 호황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미국 실업률은 최근 3.5%까지 내려가 선진국에선 완전고용으로 간주하고 있는 4.6~5% 수준을 하회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1.8%를 기록해 미국경제는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장기호황을 지속하는 골디락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정책이 경기순환에 선제적으로 적절히 대응하는 경기 안정화 정책을 잘 운용해 온 데 힘입은 결과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자 미국 연준은 경기의 장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바로 10월부터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돈을 무제한 공급하는 양적 완화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폭락한 자산가격을 회복시켜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민간소비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자산가격이 회복되고 민간소비가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가 회복되자 2005년 12월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9년에 다시 경기 위축이 우려되자 2019년에는 금리를 연이어 인하하는 등 경기 안정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해 다시 경기회복을 견인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등으로 기업투자가 회복되고 생산성이 향상해 물가는 안정된 가운데 성장률은 올라가는 골디락스 달성에 기여하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