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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효자도 물려줘야 하나" 현직 판사가 촉발한 '유류분 논쟁'

중앙일보 2020.02.03 15:1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의료법 제33조 제8항 이른바 '1인 1개소법'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을 하기 위해 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의료법 제33조 제8항 이른바 '1인 1개소법'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을 하기 위해 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불효자나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자매에게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유산을 상속해줘야 하는 유류분(遺留分) 제도는 정당한가. 유류분 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한 현직 부장판사가 지난달 28일 유류분 제도가 (민법 제1112조 등) 위헌이라며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권순호 부장판사, 유류분 위헌법률심판 제청
국회·법무부도 유류분 개정추진 "시대와 안맞아"

재산 왜 강제로 물려줘야 하나

서울중앙지법의 권순호(50·연수원 26기) 부장판사는 위헌제청 결정문에서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재산형성 과정에 기여가 없고 불효나 불화 등으로 관계가 악화된 자녀들에게 재산이 무조건 귀속되도록 강제한 현행 법률의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권 부장판사는 외국에서 이민 중이던 며느리와 자녀들이 "상속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며 한국 가족을 상대로 낸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맡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번 위헌심판제청이 노노(老老) 상속시대로 접어든 한국 상속문화의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본다. 설령 위헌은 아닐지라도 일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지난해 법무부의 요청으로 '유류분의 입법론적 연구'란 보고서를 작성했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동진(42·연수원 32기) 교수는 "고령화 등 인구 구조의 변화로 현행 유류분 제도의 개정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권 부장판사가 위헌이라 주장한 현행 유류분 제도(민법 제1112조)는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언보다 우선해 보장받도록 했다. 재산 형성 기여가 없더라도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한 것이다. 
 
아파트 한 채 끝까지...1955년생도‘노노 상속’될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파트 한 채 끝까지...1955년생도‘노노 상속’될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977년 유류분이 도입된 이유

불합리한 듯 보이지만 이 제도가 도입됐을 1977년 당시엔 상속에서 배제되던 여성 배우자와 여성 자녀를 보호하려는 양성평등적 입법 취지가 강했다. 이동진 교수는 보고서에서 "여성의 상속분을 인상해 남녀평등을 구현하려는 정당한 요구가 증여나 유언에 의해 좌절될 우려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유류분 제도는 남성과 장남 중심의 상속 문화 속에서 2000년대 초까지 사문화됐었다. 이후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며 소송 건수가 295건(2008년)에서 1371건(2018년)으로 다섯배 가까이 늘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혼외자인 김모씨도 2016년 김 전 대통령에게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법원은 '김영삼 민주센터'가 김모씨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고령화 시대에 상속 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며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와 법적 상속분을 받으려는 자녀간의 소송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권 부장판사는 이 유류분 제도의 입법취지가 시대적 소명을 다 했다고 판단한다. 여성 차별이 만연했던 과거와 달리 전근대적 가족 형태가 변화했고 유류분을 통해 자녀간 양성평등이 보호되는 면도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직계비속과 존속에 대한 과도한 유류분이 배우자의 상속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유류분 사건을 맡았던 한 현직 판사는 "성평등 측면에선 유류분이 필요할 수 있지만 고인이 부양 문제를 두고 특정 자녀에게 유산상속을 완강히 거부했던 경우가 있어 고민이 됐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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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 방지법' 재점화 되나

유류분 제도의 일부 개정 필요성에 대해선 법조계는 물론 법무부와 국회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직계비속의 법정상속분을 3분의 1로 축소하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하며 재산형성에 기여가 없는 직계비속은 5년 이상 연락 단절시 유류분을 상실토록하는 개정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법무부에 제출한 이동진 교수의 용역 보고서 결론과 거의 동일하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유류분 개정안을 내부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권 부장판사의 위헌제청으로 법조계에선 유류분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 관측한다. 상속받은 자녀가 부모의 부양을 외면할 경우 상속 재산을 회수토록 하는 '불효자 방지법'도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위헌 가능성엔 '신중론' 

다만 법조계에선 유류분 제도의 전부 위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2010년 헌법재판소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합헌결정을 내린 적이 있고, 미국과 독일·일본 등에서도 유류분 제도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직 전세계적으로 유류분 제도에 위헌 결정이 나온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일부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헌법불합치 가능성은 제기된다.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는 사회권, 자유권, 재산권 등이 충돌하는 사안으로 변해가는 시대를 고려할 때 위헌 여부를 따져볼만한 사안"이라 말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획일적으로 법정상속분을 정해놓은 현행 유류분 제도는 전근대적 측면이 있다. 헌재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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