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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자랑하는 그 사람, 쓸쓸해서 그런 거죠

중앙일보 2020.02.03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63)

동네약국에서 먼저 온 손님과 약사 사이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아주 입만 열면 자랑이야. 내가 자기 사정 뻔히 다 아는데." 어?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인데? 매일 아파트 노인회관에 나가시는 어머니 말씀과 똑같다. 평소에 남들 자랑 들어주느라 피곤하시단다. 새로울 것 없는 노년의 일상에서 같은 내용을 몇 번씩 듣고 있자면 힘드실 법하다.
 
남 자랑은 듣기 싫고 나는 하고 싶고…. 그러고 보면 자랑은 대표적인 내로남불성 대화다. 그렇다고 해서 자랑은 죄인가? 아니다. 자랑은 나쁜가? 그것도 애매하다. 그저 자랑이 펼쳐지는 상황이 불편할 뿐이다. 확실한 건 자랑 뒤편에는 뒷담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기들에 대한 자랑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흐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즘처럼 출산율이 떨어진 시대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자랑이 된다. [사진 박헌정]

아기들에 대한 자랑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흐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즘처럼 출산율이 떨어진 시대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자랑이 된다. [사진 박헌정]

 
왜 이렇게 자랑은 반감을 불러올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좋아할 말을 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자세인데, 자랑은 정반대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말은 푼수나 주책을 넘어 가끔은 지렁이 몸에 뿌린 소금처럼 연약한 삶의 피부에 독하게 박힌다. 그러니 배려심의 문제다. 무심함을 동반할 때가 많다.
 
입장을 바꿔보면, 빡빡한 삶 속에서 가끔 찾아오는 단비처럼 기쁜 일을 조금 표현했을 뿐인데 그게 자랑이 되어 부러움과 시샘을 유발한다.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의 형편이 똑같을 수 있겠나. 돈, 지위, 건강, 자녀… 심지어 ‘어젯밤에 푹 잤어’, ‘우리 아기 예쁘지?’ 같은 잔잔한 기쁨조차 경우에 따라 남에게 상처가 된다니, 그런 말 한마디 없이 살란 건가. 이 말도 맞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라도 현실의 모습이 똑같을 수는 없다.
 
이렇게 양쪽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데도 자랑을 듣고 축하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순순히 부러움에서 끝나지 않고, 부러우면 약이 오르고, 약이 오르면 뭔가 대상 없는 원망이 생긴다. 뜬금없이 비교 무대로 끌려들어 가 실패와 패배감을 맛보는 과정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원치 않던 승부에 떠밀려 나가서 진 것이 속상하다. 그래서 한때 ‘의문의 1패’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걸 알기에 자랑에도 나름대로 기술이 생겨난다. 노련한 사람들은 먼 곳 이야기부터 살살 하다가 결국 자랑으로 연결하거나 먼저 뭘 묻고 대답 중간에 치고 들어갈 틈을 노리기도 한다. 반면 젊은 층은 SNS에 뭔가 슬쩍 노출시킨다. 명확한 칭찬과 축하는 사양하고 일방적으로 내보이고 끝나는 것이다. 좋은 레스토랑, 항공사 라운지, 명품가방, 해외여행… 자랑을 통해 과감한 소비의 ‘가성비’가 조금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우리집은 단독주택이라 아파트에 비해 춥고 불편도 많지만 누군가는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일상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자랑은 어쩔 수 없이 양면적이다. [사진 pixabay]

우리집은 단독주택이라 아파트에 비해 춥고 불편도 많지만 누군가는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일상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자랑은 어쩔 수 없이 양면적이다. [사진 pixabay]

 
공식적인 자랑 장치도 있다. 모임에선 아예 처음부터 “나 오늘은 자랑 좀 할래.” 신고하고 나중에 "자랑한 값은 내야지."하며 식사비 계산하면 된다. 손주 자랑 공식 협찬금은 5만원이란다.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는 지혜다.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자랑을 해야 할까? 물론이다. 자랑은 참기 힘들다. 주식이 조금 오르거나, 아이가 남들 다 받는 피아노 콩쿠르 트로피만 받아와도 떠들고 싶다. 그만큼 우리는 생기는 것 없이 각박하게 하루하루를 산다. 요즘 같은 때 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을 어딘가에 전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고생을 무엇으로 보상받는다는 말인가.
 
자랑은 결핍과 외로움의 표출이다. 함께 모여 살던 시절에는 이웃에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 함께 좋아해 주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걸음마 시작하고 처음 ‘엄마’ 소리를 한 것…모두에게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면 고마워하면서도 다른 사정이 있는 이웃을 생각해 표현수위를 조절했다. 공동체의 미덕이자 질서다.
 
그런데 시멘트로 차단된 도시에서는 주변에 크고 작은 기쁨을 함께할 사람이 없다. 그런 행동 자체가 침범이다. 그러니 좋은 일을 못 참겠으면 먼저 말할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다가와서 축하해줬다면 자랑이 덜 했을지 모른다. 인터넷 카페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늘 자랑 좀 할게요.”라는 글이 올라는 것을 보면 현대인의 외로움이 살갗으로 느껴진다.
 
호들갑스럽게 내 자랑을 하고 싶은 이유는 아무도 먼저 물어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랑은 쓸쓸하고 외로운 단절사회의 한 현상인 것 같다. [사진 piqsels]

호들갑스럽게 내 자랑을 하고 싶은 이유는 아무도 먼저 물어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랑은 쓸쓸하고 외로운 단절사회의 한 현상인 것 같다. [사진 piqsels]

 
아무리 팩트 그대로 겸손하게 내 소식을 전하더라도 자랑은 자랑이니 가급적 짧게, 끝까지 조심성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노년으로 가면서 젊은 시절에는 않던 행동들이 나오는데 자랑도 그중 하나다. 주변의 찬사가 인사치레일 수 있다는 조심성이 이완되는 것 같다. 대부분 자식 자랑과 돈 자랑인데, 특히 돈 자랑은 아슬아슬하다. 그러다가 누가 꿔달라고 하면 어쩌려는지. 집값 올랐다는 자랑은 또 어떻고. 요즘처럼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높은 시대에 다 같이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내 존재감을 좀 깎아내고 둥글둥글 묻혀가야 할 것 같다.
 
자랑을 들어주는 것은 마음의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누군가의 허황된 자랑까지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성자(聖者)의 인품까지 느껴진다. 자랑도 빚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갚을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해야 하고, 내가 자랑을 했으면 남의 자랑도 실컷 들어주자.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좋은 마음을 지닌다면 자랑 품앗이 역시 외로움을 없애고 덕을 쌓아가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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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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