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25화. 달과 정월 대보름

중앙일보 2020.02.03 09:00
신비로운 달이시여,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
 
예로부터 달은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졌는데, 보름달을 보고 짖는 늑대의 이미지는 워낙 유명하다.

예로부터 달은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졌는데, 보름달을 보고 짖는 늑대의 이미지는 워낙 유명하다.

설날로부터 보름이 지나면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말하죠. “내 더위 사가라!” 더위팔기는 정월 대보름을 기념하는 놀이입니다. 정월 대보름은 휴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선 설과 추석 다음으로 다양한 전통 행사를 진행하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호두·땅콩·밤·잣 같은 견과류를 깨물어 먹고, 다섯 가지 곡물로 만든 오곡밥과 묵은 나물로 아침 식사를 하죠. 귀밝이술이라고 하여 부럼을 깨는 동시에 찬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귀가 밝아질 뿐만 아니라 귓병도 막아주고 좋은 소식만 들리게 한다고 합니다. 술이지만 어른뿐 아니라 아이에게 권하기도 하죠. 팥죽이라든가 약식도 빠질 수 없고, 쥐불놀이나 다리 밟기 같은 놀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달맞이’입니다.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거예요. 달의 힘을 믿고 달의 신비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예로부터 달은 세계 각지에서 신성한 존재로 믿어 왔습니다. 태양을 낮의 지배자로 인식한 것처럼, 달은 밤을 지배하고 영향을 주는 존재로 봤죠. 해만큼 밝지는 않아도 어두운 밤을 지켜주는 달은 그만큼 믿음직하고 대단한 존재처럼 여긴 겁니다. 물론 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가 보는 달은 해와 크기가 비슷해서 태양과 동격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달은 태양과 함께 신으로 여겨지는데, 이들 신에게는 야생동물과의 관계가 제시되곤 합니다. 가령 그리스의 아르테미스는 사냥과 야생동물의 여신입니다. 백로의 날개를 갖고 고둥모자를 쓴 아스텍의 신 테크시트테카톨(메츠틀리라고도 함)이나 따오기의 머리를 한 이집트의 토트처럼 동물의 모습을 한 예도 있죠.  
 
그래서일까요. 예로부터 달, 특히 보름달은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보름달을 보고 짖는 늑대의 모습은 워낙 유명하며, 보름달이 되면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반대로 행동을 자제하기도 하죠. 보름달과 함께 시작되어 수백만 개의 알이 마치 별처럼 퍼져나가는 산호의 산란은 유명 관광 상품이 될 정도입니다. 이처럼 달은 신비하고도 귀중한 존재지만, 서양에선 달을 신비한 존재로 여기는 동시에 불길한 존재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 보름달을 좋은 시간으로 여기며 즐거워했던 것과 달리, 서양에선 마법이나 악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죠. 보름달이 되면 늑대인간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고 마녀들이 축제를 벌이며 희생자들을 찾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름달의 마력이 사람들을 미치게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달’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중 하나인 루나(Lunar)에서 파생된 루나틱(lunatic)이라는 단어엔 ‘정신이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밝게 빛나는 보름달 아래에서 벌어지는 미치광이들의 축제…. 온갖 이야기 속에서 악당들이 보름에 악마적인 의식을 벌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본래는 고결하고도 신비한 달이 사악한 어둠의 존재로 여겨진 것은 빛과 어둠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저승의 여신이기도 한 헤카테나 보름달에 울부짖는 늑대의 모습, 나아가 연금술이나 마술에서의 달의 이야기 등이 결합하여 달을 무서운 것으로 바꾼 겁니다. 아르테미스 같은 고대신 숭배를 배척했던 기독교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어요. 동양에선 보름달이 풍요와 생명의 상징입니다. 정월 대보름과 추석을 명절로 기념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름달 같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표현이기도 하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보름달에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있다고 보는 우리나라나, 천녀가 산다고 믿는 중국과 달리, 아프리카나 남미에선 흉측한 두꺼비가 유럽에선 무서운 게나 마녀가 보인다고 하죠. 똑같은 보름달인데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역시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요?  
 
과학적으로 보면 달은 지구의 형제이며,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늦춰 24시간을 만든 주인공이며,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생명이 태어나는 데 이바지했던 존재라고 합니다. 나아가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들을 줄여주는 청소부이자, 생명의 수호자이기도 하죠. 다른 무엇보다도 예로부터 빛으로 밤길을 지켜주었던 존재입니다. 달의 마력은 절대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죠. 정월 대보름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잠들면 어른들이 장난삼아 밀가루로 눈썹을 하얗게 칠하곤 했다고 하죠. 어쩌면 이는 밝은 보름달 아래 지난해를 돌아보며 한 해를 새롭게 계획하며 시작하라는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달의 신비한 마력을 받으며 새해를 기념하는 건 어떨까요? 분명 새해엔 좋은 일이 계속될 거예요. 참, 마지막으로… “제 더위 사세요.^^”
 
 
.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