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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두 동네의 주민자치 이야기

중앙일보 2020.02.03 00:39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오늘은 관악구 두 동네의 주민자치회 얘기로 우리 주민자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볼까 한다. 서울시는 2017년 4개 자치구를 시작으로 전체 25개 자치구, 424개 동을 대상으로 주민자치회 사업을 점진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다. 관악구도 이에 발맞춰 2018년부터 6개 동이 사업에 동참한 바 있다. 주민자치회의 의미는 주민들이 실질적인 예산권과 정책 결정·실행권을 가진다는 데 있다. 과거 주민자치위원회는 25명 정도 동네 유지들의 자문 모임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주민자치회는 연령·성별을 고려해 추첨한 50여 명 위원의 모임이다. 서울시의 동 단위 계획형 주민참여 예산과 주민세 개인균등분 환원 사업예산 등을 기반으로 주민총회에서 결정한 사업을 자치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다.
 

주민자치회는 민주주의 학교
시민적 주체가 주민자치 관건
공적 효능감과 유대감 축적해
선거에서도 시민력 발휘해야

필자는 최근 ○○동과 △△동 주민자치회 당사자와 관련자들을 만나 몇 차례 집중적인 인터뷰와 참여 관찰을 수행한 적이 있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같은 자치구에 서 유사한 조건으로 시작한 두 동 주민자치회의 경험과 결과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두 동 주민자치 사업 성격의 차이였다. 2019년 주민참여예산 사업 의제와 2020년 주민세 지원사업 의제를 보니, ○○동 주민자치회는 주로 지속성·관계형성형 사업을, △△동 주민자치회는 단발성·설치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가령, ○○동은 합창단, 축제 및 장터, ‘마을학교 누구나 강좌’와 같이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전제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유대를 강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반면 △△동 사업은 게시판·의자·화단·무인택배함 설치, 팻말 부착, 벽화 제작 등 일회성 설치·보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의 경우도 숲 정비 활성화, 지하 보도 무한 변신, 깨끗한 골목 만들기 등 설치형 사업이 눈에 띄긴 했으나 이 또한 지역 주민 모두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동네 사업이다 보니 동네마다 특색이 있을 거고, 설치형 사업을 깎아내리거나 관계형 사업이 반드시 더 의미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동에서는 합창단과 ‘누구나 강좌’와 같은 사업을 통해 주민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계 맺기의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자치 실현을 위한 시민력(市民力)이 형성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초기 자치회 구성 후 합류한 일반 주민의 수를 나타내는 주민자치회 분과위원의 수도 2019년 말 현재 ○○동 32명, △△동 10명으로 세 배의 차이를 드러냈다. 인터뷰에서도 ○○동 주민자치회의 경우 확실히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효능감, 만족감, 시민적 유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차이는 어디서 온 걸까? 두 동은 같은 주민자치회 제도, 비슷한 사회경제적 조건, 과거 주민자치위원회의 부정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두 동 담당 행정기관인 주민센터 동장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이르기까지 서로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유사한 제도·구조·역사·상황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동 주민자치회의 경험과 결과에 있어 차이가 생겼다면, 이는 내부 주체의 문제이자 행위자 차원의 전략과 실천의 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인터뷰 결과, ○○동 주민자치회는 소위 ‘6 공주’라는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를 중심으로 형성된 또래 집단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주민자치회의 성패가 주체적 요인에 달려 있다면, △△동 주민자치회라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결과는 행위자 차원의 노력과 실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동도 ○○동의 경험을 나름 학습·응용·혁신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관악구의 두 동네 주민자치 이야기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 주민자치는 과거 행정 주도 주민자치위원회 시대를 지나 주민 주도의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 그 맹아기를 거쳐 현재 곳곳에서 성장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둘째, 주민자치의 실현은 제도 설계, 사회경제적 조건, 역사·문화적 유산의 문제를 넘어 궁극적으로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제도가 미비하면 보완하면 된다. 주민자치는 잘 사는 곳, 많이 배운 곳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고질적으로만 보이는 중앙집권적 정치 문화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관악구 두 동의 사례는 주민자치에 있어 주체의 발굴과 형성, 관계 맺기, 경험과 시민력의 배양, 학습과 전파 등 소위 주의주의(主意主義)적 전략과 실천이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셋째, 주민자치는 작지만 의미 있는 큰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혹시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냐, 보수 제1야당에 대한 심판이냐’를 가늠할 총선을 앞두고 한가하게 동네 주민자치 얘기나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 앞에 섰을 때, 누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주민자치회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관여하면서 공적 관심이 쌓이고 효능감과 유대감을 경험한 유권자가 아닐까? 시민력은 자신이 참여했던 동네에서 투표장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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