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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소통카페] 콧수염과 조선총독부로는 얻을 수 없는 공감

중앙일보 2020.02.03 00:14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혜원 신윤복이 그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여인들은 가체라 불리는 다리(달비)를 넣어서 높이 올린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크고 높을수록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어느 부잣집 열세 살 며느리는 방으로 들어오는 시어머니에게 절을 하려고 일어서다가 경골이 부러져 죽었을 정도였다(『새 근원수필』, 김용준). 비용 마련을 위해 전답과 집칸을 파는 등 무리할 정도가 되자 영조 35년에는 가체를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 그런데도 지켜지지 않아, 30여 년이 지난 정조 12년에 금지 공문을 다시 내렸다. 왕조시대 임금의 명이 무시될 정도니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외모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속성은 천부인권의 수준임을 일러준다.
 

‘북 개별관광, 논의 필요’ 발언에
여당, 조선총독부 들먹이며 비난
논쟁 아닌 상대 비하 공격 행위
일본에 비유말고 논리적 설득해야

『고려사』에 따르면 무신 정중부는 “그대의 수염이 관우와 같으니 참으로 대장감이요”라고 임금 인종이 칭찬한 수염을 문신들이 촛불로 그슬리자 모욕감을 느끼고 반란을 일으켰다. 문신을 살육하고 허수아비 임금을 내세우며 거의 90년 동안 고려를 통치했다. 수염이 문벌 귀족사회인 고려를 뿌리째 뒤흔든 것이다.
 
2003년 미군은 땅속 깊이 숨어 있던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생포한 후에 가장 먼저 그의 수염을 잘랐다. 아랍국가에서 성인 남성의 콧수염은 삶의 방식이고 문화다. 미국의 침공과 후세인의 독재 문제를 떠나 수염을 깎는 행위는 아랍문화의 자존심과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로 비판받았다. 수염은 말이 없지만, 인간의 외모를 구성하는 요인은 그 자체가 문화고 강력한 소통의 의미와 힘을 지니는 것임을 보여준다.
 
지난달 주한 미국대사 해리스의 콧수염이 곤혹을 치렀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이 (유엔과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의 효력을 유지하고 북한의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인) 한·미 워킹그룹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대사의 언급이 부적절한 내정간섭을 넘어 조선총독부의 데자뷔라는 여당의 맹렬한 비난의 여파였다. 대사관 근처에서 열린 데모 퍼포먼스에서 해리스의 콧수염은 뽑히고 참수되었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상대를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일당 독재의 무오류 국가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이므로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과 표현은 합리적인 논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의 유력 신문과 방송이 ‘이상한 행위’로 보도했듯이 대사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혈통까지 들먹이는 건 논쟁은커녕 상대를 비하하는 공격 행위다.
 
논쟁은 이슈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입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공격하여 상처를 주고, 상대방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부재한 존재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조선총독부는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싶지 않은 존재다. 성씨를 바꾸고, 고문과 살상을 일삼고, 무기제조를 위해 제사용 놋그릇마저 수탈하고,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 말살을 획책하고 지휘한 인면수심의 괴물이다. 그러므로 조선총독부를 들먹이는 건 감정적 선동은 가능해도, 주장과 설득을 통한 공감의 과정은 불가능하게 한다. 그런 표현은 일본의 악명 높은 극우단체(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모임)가 재일동포를 공격하는 ‘조선으로 돌아가라’, ‘세금 도둑’ ‘바퀴벌레, 구더기 조선인’ ‘재일 조선·한국인을 이 세상에서 말살하자’는 증오의 혐오 표현과 다를 바 없다.
 
해리스의 언급이 부적절하다면 ‘나쁜 식민 통치자 일본’에 비유나 환유를 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개별관광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옹호하고 설득해야 한다. 개별관광이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와 함께 절대적인 북한의 비핵화 원칙, 남북의 협력과 평화 공존, 미래의 통일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에 대해 열 번, 백 번이라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한 관광은 신념보다 콘텐츠가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는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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